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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Apr 04. 2024

<아끼다 똥 된 말>

〔소설〕결국 해피엔딩 1


깊은 우물처럼 아득한 몰골로 곤하게도 주무신다.


저러다 방구들로 꺼지실라.

나는 살금살금 아버지 머리맡에 앉았다.     

산산이 부서진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술과 싸우고 계신다.

술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나는 목숨을 거마.

기껏해야 소주 두 병인데 두어 잔 넘기면 벌써 온몸에 불이 붙는다.


가느다란 몸이 타오르듯 붉어졌다가

실신했다가

작은 아버지가 겁에 질려 한의사 선생님과 함께 오셔서

진맥 짚고 축 늘어진 아버지를 들어 세워 물을 들이붓고

그러다 하루 이틀 지나면 온몸이 노래지고

몇 날 며칠 누워계신다.


아버지가 이렇게 술과 싸우는 동안 엄마는 말리지 않으셨다.

엄마는 여전히 나가서 어디를 돌아다니시다가 저녁이나 밤에 들어오신다.

엄마도 끓어오르는 화닥질을 주체할 수 없어 죽겠는데

누구의 싸움을 말리고 말고 할 겨를이 없는 걸 거다.

어쩌면 엄마도 당신의 목숨을 걸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모두 깨졌고 그런 채로 제각기

살고 있다.


아버지 이마를 짚어본다.

“은아,”

“아, 네, 아버지,”

“엄마는 들어오셨냐?”

“아니요.”

“오늘 날씨는 어떠냐.”

“오늘도 추워요.”


아버지는 꾸역꾸역 일어나 앉으신다.

“약 드세요.”

“니가 달였니?”

“네.”

“그래? 우리 딸이 달여 준 약이구나.”

아버지의 가느다란 목이 울렁거린다.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버지, 이제 그만 마음 추스르면 좋겠어요.”

박하사탕을 까 드렸다.


“미안하다 은아.”

“뭐가요. 아버지가 제게 미안하신 게 뭐가 있어요.”

“아버지가 못난 사람이라. 자식 건사도 제대로 못하고,”

“뭐가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하신 거잖아요. 우리가 죄송해야죠. 오빠랑 제가요. 부모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해 드렸으니 오빠 돌아오면 무궁화나무로 죽도록 때려주세요. 그러니까 이제 술을 그만 드세요. 우리 오빠 기다려요. 올 때까지 기다려요. 엄마랑 아버지가 이렇게 하니까 오빠가 안 올 거 같잖아요. 설마 오빠가 안 올 거라고 정하신 건 아니죠, 아버지? 그래서 이러시는 건 아니죠?”


“나는 우리 아들이 아까웠다. 아까워서 그랬어. 잘나고 번듯한 것이 내 속에서 나온 내 자식이 맞나 벅차고 뿌듯했다. 그래서 두려웠어. 잘난 아들 잘했다 오냐오냐하면 지 잘나 그런 건 줄 알아 버릇없어지고 망가 질 까봐. 아끼고 아낀 거야. 나중에 다 커서 이제 됐다 싶을 때 간직했던 말 다 해주려고 했는데, 우리 아들 장하다. 그동안 힘들었지, 우리 아들 사랑한다.”


화들짝 방문이 열린다.

미친 여자처럼 산발 머리를 하고선 

겨울바람에 시달려 푸르뎅뎅한 엄마의 얼굴에 울음이 가득하다. 

저벅저벅 들어와 아버지 앞에 풀썩 주저앉는다.


“아들이 아까워서 좋은 말을 아꼈다고요? 그게 말이에요? 뭔 소리야, 내 아들이 아까우면 막 퍼줬어야지. 잘났구나, 훌륭하구나, 장하구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공부 좀 못하면 어때, 뭘 그런 걸로 풀이 죽어. 아등바등 죽자 사자 공부하지 마. 우리 아들은 뭐든 잘할 거야. 아버지가 응원할게. 좋아하는 텃밭에서 맘껏 놀아라. 니가 좋아하는 것 실컷 해라.


담배도 그래. 당신도 그 맘 알잖아. 담배 맛 궁금했잖아. 당신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르는 나이에 담배 펴봤잖아. 그러니 내 그 맘 안다고 해줘야지. 그러니 피려면 제대로 펴라. 깊이 마셔봐라. 그래야 안 필수 있게 된다. 이런 말은 부모가 해줘야 하는 말이라고요. 이렇게 좋은 말 힘주는 말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말, 행복한 말, 막 해줬어야죠. 애들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렇게 모질게 매를 대고 그래요. 나는 진짜 내 새끼들 아까워 죽겠는데.

당신, 그까짓 게 뭐라고  아끼고 아끼다 뭐 됐네요.”


엄마는 홀랑 일어나 나가신다.

엄마의 마지막 말은 분명 비수였을 것이다.

예리한 말에 베인 아버지의 마음에 선홍빛 피가 흐르고 있을까.


“은아,”

“네, 아버지.”

“우리 은이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자식으로 받았으니 이 애비가 복 많은 사람이다. 고맙고 고맙다. 이 애비가 아주 많이 사랑해 내 새끼들.”


아끼고 아끼다 좋은 날 좋은 모습으로 주려던 말을 가장 슬플 때 주신다.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완아, 빨랑 와. 빨랑 집으로 와라 오빠야.

아버지가 오빠에게 할 말이 많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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