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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r 30. 2024

<焚身>

〔소설〕결국 해피엔딩 1


몇 년 동안 한의원은 나 몰라라

작은 아버지에게 떠맡겨놓고

엄마랑 내가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그딴 거 난 모른다 내팽개치고 대한민국 구석구석 이 잡듯이 떠돌아다니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10년은 늙어버린 꼴로 들어오시던 날

소주 두 병을 들고 오셨다.

마치  아침에 나갔다가

늘 같은 시간에 들어온 것처럼 당신 방에 들어가셔서

들고 온 소주를 병째 마셨다.

엄마는 달랑 밥 한 그릇에 김치와 멸치볶음이 놓인 상을 아버지 앞에 내려놓고 나가셨다.

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난생처음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보았다.


언제나 반듯하시던 아버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생기고, 한의사고

점잖으시고

한 번도 술을 드신 적이 없다고 하면 내 친구들이 부러워했는데,

지들 아버지는 술만 먹었다면 행패 부린다면서.


손으로 김치를 집어 드시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도 깨졌구나, 산산이 부서졌구나.

또다시 마음이 아려진다.


소주를 마시면 저렇게  되나,

아버지의 시뻘건 얼굴에 귓불까지 활활 불에 타고 있다.

그렇게 두 병을 채 마시지도 못하고선 일어나시다가

실신하셨다.


아버지,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되시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는데

엄마는 놀라지 않았고 나처럼 무섭지도 않은 것 같았다.

작은집에 전화를 하셨고

사색의 얼굴로 작은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 대신 고용된 한의사 선생님도 함께 오셔서

진맥을 짚고 침도 놓고 물을 드시게 하고 또 어떻게 하셨다.


“형수님, 왜 안 말리셨어요. 소주 두 병이면 형님 잘못될 수도 있어요. 아시잖아요.”

“네.”

“형수님!”

엄마는 대꾸를 남기지 않고 방을 나가신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안 되는 거였구나.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는 거구나.


아버지는 며칠 누워계셨다. 빨갛던 몸은 점점 노래졌다.

작은 아버지가 간을 보하는 거라면서 가져오신 약 첩을 달여 드리면

꾸역꾸역 일어나 받아 드셨다.


그냥 그냥 하는 것들

굳이 뭐 때문도 아니고

살아있으니 사는 우리 세 사람의 일상에

이러쿵저러쿵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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