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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Apr 06. 2024

<김치콩나물국 맛 집>

〔소설〕결국 해피엔딩 1

“여보세요.”

“네, 여보.”

“엄마는 여전하세요. 지금은 손님 밥 먹는 거 보고 계세요.”

“네, 어젯밤에 어떤 손님이 왔어요.”

“당신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중에요. 아버님 건강은 괜찮으시죠? 언제 가 봬야 하는데. 너무 죄송해요.”

텃밭은 꽤 잘되고 있어요.  있다 감자 캐려고요. 상추랑 열무랑 해마다 심던 거 다 심었어요.”

“올해도 경로당에 가져다주고 우리도 조금 먹고 남은 건 팔고 그래야죠.”

“왜요, 당신도 재미있어했잖아요. 나도 재미있어요. 길바닥에 앉아서 사람 구경도 하고. 돈도 벌고.”

“걱정 마세요. 어머니 아버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뵙고 싶은데. 우린 언제 봐요? 그러게요. 당신도 식사 잘 챙겨 드세요. 네 들어가세요, 여보.”


아침나절에 잦아든다 싶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술에 취해 담을 넘어온 미자 씨의 아들은 밥을 먹고 있다. 따끈한 김치콩나물국에 두어 가지 밑반찬에 구운 김도 있다. 아이의 밥상머리에 미자 씨는 고개를 바짝 디밀고 앉아있다.

“맛있어?”

아, 저 목소리. 우리 엄마가 가장 행복할 때 저런 말투였는데.

엄마의 물음에 아련한 추억이 묻어있다. 

근데 애가 대답이 없어. 어른이 물으시면 대답을 해야지.


“물으시잖아요. 대답해 드려요.”

“맛있어요.”

“그런 국 안 좋아하면 안 먹어도 돼요.”

“아니에요 진짜 맛있어요. 시원하고.”


멍이 가득한 눈두덩에 이마는 노래 가지고는 꼴에 맛은 아네.

니가 먹는 그 맛이 우리 엄마 맛 이란다.

말하자면 우리 집이 김치콩나물국 맛집이지.


“많이 먹어, 내 새끼.”


아이의 머릿결을 매만지려는 엄마의 손길에 흠칫 고개를 뺀다.

모야? 엄마를 빤히 보는 눈빛이 그리 말하고 있다.


“미자 씨, 밥 먹고요. 밥이 맛있대요. 밥 먹게 그냥 두세요.”


도대체 여긴 어디야,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난데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집에서,

웬 김칫국에 밥상을 차려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늙은 아줌마와

자꾸 괴상 발칙한 말로 들이대는 더 늙은 할머니가

부담스럽겠지.


뭔 구경 났냐,

고개를 들이밀고 밥을 먹는 걸 빤히 보는 할매들이

니 말대로 이게 모냐 싶지.


세상에 더는 없을 언제 적 진청색 철 대문에

그만큼 낡은 한옥 집에 텃밭은 어떻고.

꽤나 번화한 동네 고층 건물 사이에

깊은 우물 같은 이 집이

무슨 귀곡 산장이냐

그럴 거다.


근데 우리에겐 이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단다.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

시간이 너무 가버린 바람에

우리의 모습이 너무 변해

서로 못 알아보려나

아니면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핏줄이 땡겨 딱 보면 알아지려나,

알 수 없으니

증표가 있어야지.

그게 바로 저 철 대문이란다.


근데 쟤 후루룩후루룩

진짜 맛있는 거처럼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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