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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Apr 12. 2024

<0으로 수렴하지 않는 것>

〔소설〕결국 해피엔딩 1


찬란했던 그 봄의

우리 텃밭은 황폐했다.


그저 남은 생명력으로 도라지 싹이 나고

이제는 쓸모가 다한 무궁화의 하얀 가지에  푸른 잎 사이를 비집어 어느 날 꽃도 피울 것이고

작약도 제 모양대로 나오긴 하는데

휑한 엄마의 땅은

속살이 훤히 보이는 늙은 사람의 머릿속처럼

듬성듬성 허술하니 윤기가 없었다.


봄 같은 스무 살의 나는 방에 있었다.

엄마가 주섬주섬 집을 나설 때

오늘은 일찍 오세요 엄마, 하면서 배웅하지 않았고

저녁 무렵 오늘 엄마가 안 오면 어쩌나 무서워하다가

철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후다닥 달려 나가 엄마를 마중하지 않았다.


나도 술 좀 마셔볼까

그 맛이 어쩌 길래 아버지몸에 불을 지르고 노랗게 만들었다가

결국 바삭한 재가되도록 태워버렸을까.

담배 도 좀 피워 볼까

그 불 맛이 어째서 몽롱한 틈에 모두 태워버릴 것 같다고 했던 건지

그걸 피면 무엇을 태울 수 있는지


나에겐 두려움이 도를 넘었고

아픔이 차고 넘쳤고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마음 아픔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런 걸 안 해보려고

두려운 것도, 안타까운 것도, 마음 아픈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이제 그만하려고

소주를 마셨고 담배도 피웠다.

오빠가 앉았던 그 자리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텃밭을 바라보며.


마땅히 아름다워야 할 그 봄의 나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내 방에서

불덩이였다가

노래졌다가

거무스름하게 시들었다.


행방불명으로

최종 처리된 조완


나에게도 세월이 약이 돼 줄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마음에 두텁게 덮이면

안 아프게 기억할 수 있을까


내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진

사랑하는 나의 오빠를

슬퍼하지 않으면서 추억할 수 있을까


0으로 수렴하지 않을 그리움


나는 스무 살 그때  알았다.

끝내 소멸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숨을 거두는 그때에야 비로소

그것도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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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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