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의 봄

1996년

by 상승추세

1996년은 김주찬이 대학교에 입학했던 해였다.


그리고 그 해는 분당 아파트들의 입주가 마무리가 되던 해이기도 했다. 1991년 시범단지를 시작으로 위로는 이매동으로 아래로는 수내동으로 그렇게 입주하는 아파트가 늘어가다, 1996년도 무지개 마을을 마지막으로 분당의 빈자리는 그렇게 채워져 갔다.


3월의 봄날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선주찬은 집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나섰다. 친구들과 같이 당구장을 가기 위해 몇몇이 모이고 있었고, 주찬은 먼저 급하게 나가는 친구를 보고 외쳤다.


"원택아 같이 당구장 가자."


하지만 그 친구는 먼저 가야 한다며, 눈인사만 하고 학교를 떠났고, 다른 친구가 대신 설명을 해주었다.


"저 놈 며칠 전에 분당으로 이사 갔데. 그래서 신촌까지 왕복하는데 4시간은 걸린다고 하더라."

"원택이 강남 산다고 하지 않았어? 강남에서 왜 굳이 분당으로 이사 간 거야?"

"글쎄 요새 내 고등학교 친구들도 분당으로 이사 많이들 가던데, 내 생각에는 아직은 불편할 거 같던데..."

대신 설명을 해준 친구 역시, 강남에 살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시범단지가 분당에 처음으로 들어섰던 1991년도만 해도 교통의 불편함은 컸고, 편의시설도 없는 허허벌판에 누가 가겠냐고 했지만, 1994년도 분당선이 개통하면서 그런 불편함은 조금씩 해소가 되어갔다. 그리고 불편함이 조금씩 옅어짐에 따라, 부족했던 것들이 계획에 맞춰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그런 시각은 변하게 되었고, 1996년은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많이 발생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당에서는 미분양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기 시작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미 분당은 매매가가 분양가보다 2배 이상 치솟던 그런 시기가 되었다. 당시 7천만 원대였던 분양가는 이미 1.5억 원 이상으로 가격이 올라있었으니, 인기가 얼만큼이었는지, 천당보다 약간 덜 좋은 분당이 누구에게나 상상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서울 토박이기는 하지만, 강북의 주택가에서만 20년을 살고 대학교에 입학했던 주찬은 아파트를 살아본 적이 없어서 다른 집에 가봤던 기억을 기반으로, 분당의 이미지를 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동네에 살다가 잠실 주공 아파트로 이사 갔던 친구의 동네에서 수십 개의 똑같은 아파트 건물들을 바라보며, 미로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과 너무나 춥던 자신의 집과 달리 반팔을 입어도 하나도 안 추울 것 같았던 아파트의 실내 온도. 어찌 되었건 주찬의 마음속에는 강남에서 부유하게 살았을 것 같은 친구가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니, 그곳은 강남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 같지는 않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주찬이 대학교에 들어갔던 그 해에, 주찬의 친구만 분당으로 이사를 갔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주찬의 고모 역시 분당으로 이사를 가시게 되었는데, 사시던 집이 안 팔렸지만 아파트 입주는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고모집에 주찬의 가족이 들어가서 살고, 대신 고모가 모시던 할머니를 주찬의 부모님이 모시면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주택이 보통 그런 형태이기는 했으나, 그 집 또한 거실이 난방이 안 되는 마룻바닥에 창틀이 나무로 되어 있어, 겨울이면 거실의 온도가 외부의 온도와 크게 별 다를 게 없는 그런 집이었다. 부모님의 가정 형편상 이사 오게 되었지만, 주찬은 너무 춥기만 한 그 집이 너무 싫었다.


'그래도,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은 나무 창틀은 아니어서 이렇게 추운 집은 아니었는데...'

그에게 겨울은 너무 길고 지겨운 계절이었다. 그에게 그 오래된 집에서의 기억나는 계절은 오직 겨울 하나였다.


다음날,

주찬은 원택이가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지나가면서 듣게 되었다.


"어제 아빠가 운전 연수 시켜줬는데, 신호가 걸려서 정지를 했는데 아니 그 앞에 바로 벤츠가 있는 거야. 아빠가 멀리 떨어지라고 저 차 뒤에서 밖았다가는 아빠 큰 일 난다고 소리 지르고 난리였어."


주찬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도 사업 망하지만 않았으면 나도 아빠 차 몰아봤을 텐데 아쉽다. 역시 분당 사는 놈이라 아빠가 운전도 연습시켜 주고 부유하구나. 그리고 벤츠는 우리 동네 중곡동에서 코빼기도 안보이던데 분당에는 벤츠도 즐비한가 보네.'


주찬은 직접 분당을 가본 적은 없었지만, TV 드라마에서 보이던 깔끔한 아파트들,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깔끔한, 그리고 따뜻해 보이는 주택들이 나오면 분명 분당이나 일산 같은 신도시에 있는 집일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강남에 살았던 친구들이 지금 살고 있는 동네, TV에서도 뭔가 정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중산층 느낌 나는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동네, 그런 이미지가 주찬에게 새겨진 분당의 실루엣이었다.


'별은 내 가슴에'에, '해피투게더'에, '첫사랑'에 아파트 집안 장면들이 나올 때면, 그곳은 분당의 아파트일 것이라고, '사랑이 뭐 길레'에 나오는 대발이 집을 보면서는 우리 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80년대 초반부터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 중산층에 대해서라면 빨리 터뜨린 샴페인이라고 뉴스에서 비꼬던 이미지 말고는 없던 주찬에게 분당 아파트가 나오는 TV 화면을 보면서 중산층이라는 느낌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갈 수 있게 되었다.


강남이 확장해 가던 80년대, 개도 포니 타는 동네라 불리던 개포동도 처음에는 미분양이 나던 곳이었다. 하지만 명문고들이 이전을 하고 지하철이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비인기 지역에서 인기 지역으로 그리고 가격도 인기에 비례해서 같이 올라가게 되었다. 분당으로 이사를 갔던 중산층에게는 그런 학습 효과가 이미 있었기에, 장화 신고 들어가서 구두 신고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인프라가 아직은 부족하지만 신데렐라처럼 변신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분당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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