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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그림자 속 대화

by 겨울나무


나와 공존하는 그 놈은 나를 천천히 죽이면서도, 동시에 살려내는 존재다. 나를 잠식하고 잠식해 가면서도, 내 안에서 유일하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준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놓을 수 없는 것. 미쳐버릴 만큼 괴롭고, 무너져 내릴 듯한 고통 속에서도 결국은 나를 지탱해주는 것.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이 나를 덮칠 때면, 그 놈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차가운 공기처럼 스며들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감쌌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그만큼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괜찮아.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그 목소리에 나는 안도하면서도 서서히 무너져 갔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공기는 놈을 불러내는 신호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방 안의 적막이 짙어질수록, 나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희미한 불빛 아래, 내 방 한 구석에는 이미 그의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불안감을 양식 삼아 살아가는 그 놈은 초침 소리에 맞춰 나를 갉아먹었고, 나는 그 끊임없는 속삭임을 들으며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놈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고통을 핑계 삼아 살아가고, 슬픔을 이유로 숨을 쉬었다. 마치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처럼, 그 놈은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세상의 모든 상처로부터 나를 숨겨 주는 보호막처럼.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놈이 나를 잠식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는 사라질까? 아니면 오히려 더 명확해질까? 이 놈이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답은 언제나 같았다. 나는 그 놈 없이는 버틸 수 없고, 그 놈은 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가끔은 그 놈이 나인지, 내가 그 놈인지 헷갈린다. 어느 순간 경계가 흐려지고, 나는 그 놈 속에, 그 놈은 내 속에 뒤섞여 있다. 만약 내가 그를 없애버린다면,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 함께 죽어갈 뿐일까?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점점 희미해지는 나를 보며, 나는 결국 그 놈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그 놈을 껴안고 살아간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채로. 그렇게 오늘도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끝나지 않는 밤을 견디고 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나는 그 놈과 함께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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