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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Jul 01. 2023

나의 일부가 떠내려가고 있었어

토막 에세이-일상

초상화를 잘 그리시는 예쁜 작가님께 생일날 선물 받은 배쓰밤을, 나는 쓰기 아깝다며 나중에 예쁜 호텔에 놀러 가게 된다면 쓰겠다 했고, 작가님은 그걸 날 위해 쓰라 말씀하셨었어.

참 이상하지, 이별을 한 번 겪은 후에야 선물 받은 배쓰밤을 쓸 수 있더라. 나는 사라지는 것들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녹아내려서 흔적도 없이, 예쁜 거품을 만들며 아름답고 서글프게 사라지는 배쓰밤은 내가 쓰기 가장 어려운 물건 1순위였겠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욕조에 배쓰밤을 넣고, 오랜 시간 동안 뜨뜻한 물을 채우며 끊어지고 있는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욕조 속으로 잠수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물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

욕조나 욕탕에 종종 오래 앉으면 뜨뜻하고 묵직한 물이 가슴을 뻐근하게 누르는 느낌이 나는데, 그런 상태엔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을 흘려보내기 좋더라.


목욕물에선 장미 향이 났고, 사방이 온통 핑크빛 거품이었어, 나는 생각했어. 사라지면서 아름다움을 남기는 것이라면, 의미를 남기는 것이라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하고.

어른이 되어가며 깨닫는 거지만, 점점 만남보다 작별해야 할 일들이 늘어가고. 일을 하는 것에 있어 돈과 자유, 둘 다 취할 순 없더라. 간혹 자유롭게 자기 일을 즐기다가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지. 그건 좋은 케이스이고. 결국 자유 쪽을 선택한다면, 일과 삶을 즐기는 방향으로 가야 해.


책 <멋진 신세계>에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계급이 나와. 물끄러미 책 속 내용을 바라보듯이 떠올리다가, 나는 행복과 자유가 아닌 끔찍하게 좋은 효율과 돈벌이를 1순위로 놓은 세상이 그런 세상이 아닐까 생각했어.

사람을 철저히 목적과 수단으로 바라보는 세상 말이야.


늘 자주 바뀌는 나이기에, 단언할 수 없지만, 나는 새장 속에 갇히듯 살며 많은 돈을 벌 바엔, 적은 돈을 벌어도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쪽을 선택할 거야. 일을 즐기면서 살아가면, 경제적으로 좋은 능력이 따라와  줄 수도 있는 거고. 그게 아니어도 그만이라 생각해.


떠나가면서 너는 말했었어. 나는 널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알 것도 같아, 왜 네가 그렇게 말했는지.

누군가는 그 말을 작별에 대한 핑계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 말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게 존재하니까. 어쨌든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봐 줄 누군가가.


유독 사랑이 끝나고 상대의 단점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그건 아마도 너무 사랑했는데,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사실은 사랑하고 싶었기에 정을 떼려고 그러는 거겠지.

그래서 나는 자주 너의 단점을 찾아. 사랑했기 때문에 그래.


...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인어가 실존했다면 사라질 때 이런 색을 냈을까.


물끄러미 욕조 안을 들여다봤어. 사랑, 아니 사랑이었던 것. 나의 일부가 형체도 없이, 선명한 분홍빛을 띠며 부드럽게 떠내려가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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