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온유 Jul 04. 2023

그러니까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일

아무래도 사랑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유독 다른 영화들을 들고 와서 이입해 적는 이 몹쓸 버릇은 영원히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 그래. 무언가 벅차거나 버거운 일이 생기면, 자동으로 관련된 영화를 머릿속에 그려내니까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글을 안 적을 수가 없더라.


나는 유독 이터널선샤인을 좋아해. 내가 글을 평생 쓸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의 일이야.

철학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영화를 소개하시며 보고 오라는 과제를 내주셨고, 그때는 이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었어. 어렵고 복잡했고, 그때 당시의 나는 많이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았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됐어, 환상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가 이 영화라는 걸.


조엘은 유독 정적이고 보수적이야, 반면에 클레멘타인은 다소 자유분방하고 활기차지.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고, 심하게 싸운 끝에 헤어지는 걸 선택해.

조엘의 머릿속에는 클레멘타인이 각인되어 있어, 사라지는 기억들 사이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손을 붙잡고 계속 도망 다녀. 처음 만났던 그때의 그 바닷가, 서점 한가운데, 마주한 기차 속, 식탁 아래. 조엘은 그녀를 너무 사랑한다는 걸, 기억을 삭제하면서야 알게 돼. 결국,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다시 찾아가고. 삭제된 기억을 뒤로한 채 둘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돼.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항상 생각하곤 해. 다시 사랑에 빠진 둘은 그래서 헤어졌을까, 헤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야.


어쨌든,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이 남아있다는 영화 내용에 따르면, 그만큼 사실, 사람들은 감정에 약하다는 것이 아닐까. 사소한 감정들 앞에 한없이 무너지고, 휩쓸리고, 깨부숴지고 산산조각이 나버릴 만큼, 너무나도 연약하지. 어쩌면, 그래서 사람인 걸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기억을 추려내어 삭제해 주는 곳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야.

사랑을 할 때는 온통 알록달록하던 세상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먹색으로 물들어버리는 과정이 너무 서글퍼서 말야.

내 상태가 어떻든지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진행돼. 웃기게도 작별을 하고 나서야 시작하게 되는 일들이 있고, 보다 명료해지는 일들이 있어. 사실, 우리는 만나는 만큼 헤어지는 일들도 많이 겪곤 해.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작별을 잘할까 고민하는 과정일지도 몰라.


영화 속 클레멘타인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조금 더 조용한 클레멘타인이 있다면, 바로 나일 거라 생각했어.

조엘은 종종 그녀를 지나치게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녀의 진짜 마음이 뭔지 알았을까. 그가 본 건, 자주 소용돌이치는 그녀 감정들의 겉표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야.

클레멘타인은, 반복되는 삶이 얼마나 지치는 건지 잘 알아서, 자신 앞에서는 조엘이 모든 것을 잠시나마 놓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자유분방했을지도 모르는 건데.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한 거지만. 서로 달라서 끌렸던 두 사람이, 서로 달라서 헤어지는 과정이 많이 서글프더라.

내가 기억을 삭제한다면 다시 너를 사랑할까. 상상해 보다가, 그냥 웃고 말았어. 변해버린 감정의 색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야.


우리 사이의 따뜻했던 색깔들이, 홀로 된 나에게는 지나치게 뜨겁게 다가와. 차차 사그라들 거야, 종종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을 나는, 불씨가 꺼질 때까지 글이라는 불꽃으로 사용할 테고.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애석하게도 이건 되돌릴 수 없는 일이야.

이전 06화 나의 일부가 떠내려가고 있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