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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Oct 17. 2024

나는,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좀, 예민... 아니, 이 단어 말고 좀 더 좋은 단어가 있을 텐데? 뭐가 있지?”


카페와 바를 겸하는, 이천터미널의 힙한 플레이스, ‘도깨(DoKKaE)’에서 밀키언니가 깔루아밀크를 사이에 두고 내게 말했다.


“민감하다?”


나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녀에게 반문하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거야, 민감하다! 그 표현 좋다 응. 민감해서, 나랑은 다르지.”


민감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를 위해, 열심히 단어를 골라 더 나은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그녀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마침 나와 그녀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던 참이었고, 나는 나에게 민감하다는 표현을 써 정확하게 나를 알아봐 주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민감하다, 그것은 적확하게 나를 정의하는 단어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대화를 하면서도 자주 사람들의 눈빛을 관찰하고, 사람에게서 ‘싸한 느낌’을 잘 느끼곤 했다. 이상하게, 내가 쎄한 느낌을 느낀 사람들 중 20퍼센트 정도를 제외하면 관계에서 끝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 쎄한 느낌이라는 게 뭘까? 나도 좀 알고 싶다 온유야. 우리 앞으로 이상한 것 같은 사람 있으면 온유한테 물어보자. 뭔가 잘 아는 것 같아.”


최근, 표지도, 내용도 예쁜 에세이집 ‘문밖을 나서는 순간’을 집필한 로다언니도 하니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서로 진솔한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나눴던 그날 밤,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생각해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 ‘촉’이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발달해 있었던 것 같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초민감자, 엠파스이다. ‘엠파스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다음 문항 중에 11개 이상 15개 이하를 체크한다면, 당신은 초민감자 성향이 강하며, 답한 문장이 15개 이상이라면, 당신은 명백한 엠파스이다. 만약, 이 문항을 체크한 당신이 엠파스라면, 당신은 엠파스가 아닌 사람들과 같은 경험을 해도,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며 그러기에 엠파스가 아닌 사람들에 비해 쉽게 피로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이란 존재에게 있어 당연한 사실이 된다.


1. 어느 모임을 가도 혼자 일찍 나오고 싶을 때가 있다.

2. 카페인이나 약물에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3. 자연 속에서 재충전하는 것을 즐긴다.

4. 화학물질에 민감해 원단 질이 안 좋은 옷은 입기 힘들다.

5. 지나치게 소심하고 내성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6. 말싸움이나 고함을 들으면 극도로 불편해진다.

7. 멀티태스킹에 서툴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좋다.

8. 친밀한 관계 때문에 오히려 숨이 막힐까 봐 두렵다.

9. 무리에 섞이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10. 군중 속에 있으면 녹초가 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기분을 회복해야 한다.

11. 껄끄러운 사람과 어울린 후에 기분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12. 작은 고통도 견디기 힘들다

13. 여러 명보다 일대일이나 소수 인원과 교류하는 게 편하다

14. 타인의 감정이나 스트레스, 신체 증상을 흡수한다

15.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

16. 사회적 고립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17.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식으로 이어진다

18. 유독 깜짝깜짝 잘 놀라는 편이다

19. 소음, 냄새, 시끄러운 사람이 있는 곳은 견디기 힘들다

20  대도시보다 소도시나 시골을 좋아한다



민감하고, 차분하다. 밀키언니가 나를 위해 정의 내려준 나의 성격들이다.


“엄마. 오빠는 가는 곳마다 분위기를 잡고 사람들을 웃겨서 사람들이 빵빵 터지고, 엄청 활발하고 그러는데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만 가면 왜 이렇게 조용하고 재미가 없을까? 진짜 이게 같은 배에서 나온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달라.”


나의 그 말에 엄마가 이야기해 주었다.


“넌 어릴 때부터 순했어. 잠자리에서도 애가 까탈스럽지가 않고, 그래서 키우기 편했지, 너는. 그냥 네가 그렇게 타고난 거야.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크면서 점점 성격이 확고해져서 갈수록 조용해진 거지. 그게 네 성격이야. 아빠랑 성격이 판박이야, 너는.”

그랬구나. 엄마의 말들을 들으니, 내 성격이 조금은 이해가 가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하고 재미가 없는 대신에,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편이며, 독특하고, 배려심이 있다. 이게 타인에게 들은 ‘나’에 대한 평가와 내가 느낀 나에 대한 평가를 종합하여 내린 내 성격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기왕, 민감하게 태어난 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위의 문장에서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편이며, 독특하고 배려심이 있다’ 쪽을 더 자주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 안 그래도, 나에게 세상은 충분히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 내가 많이 좋아하는 책이 있다. 바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나 같은,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말들을 적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솔루션을 내려주고 스스로 적합한 꿈을 찾는 방법까지 소개해놓았다. 심지어, 이 책 또한 민감한, 그래서 유년 시절이 힘들었던 사람이 집필한 책이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해 보자면, 민감한 사람들은 민감한 대신, 세상을 더욱 섬세하게 느낀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달리, 민감한 사람들은 햇살이 비칠 때의 달라진 나뭇잎의 결을 하나하나 느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공기의 냄새를 쉽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또한, 언제쯤 비나 눈이 내릴지 알아차릴 정도로 몸이 예민하기도 하다.

때문에, 민감한 사람 중에는 작가, 상담사, 음악가 같은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많다. 민감함은 곧 섬세함으로 바꿔 말할 수 있어, 그들은 그들만의 타고난 섬세함으로 미묘하게 변한 상황들을 쉽게 알아차리고, 그들이 가진 재능을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하는데 아낌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것에는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이 그들 또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타인보다 민감한 탓에, 쉽게 피곤해지고 지나치게 시끄러운 공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때문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민감한 사람들을 종종 이해하기 어려워하곤 한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은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민감한 사람들의 감정을 모두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들이 그만큼 섬세하기 때문이다.


나는 민감한 사람들이 각자만의 세상을 존중받고 역량을 제한 없이 펼치는 꿈을 꾼다. 민감한 정도가 높아서, 공황장애, 우울증,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세계, 나의 세계가 모여 우리의 세계가 마음껏 펼쳐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의 벽과 천장, 문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칠하고 붓을 쥐고 그것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것처럼, 제한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꿈을 꾼다. 아직 많이 어렵고, 고민 단계에 있지만. 미약한 나의 노력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더해지고, 모이고 쌓여서 서서히 나의 세상, 그들의 세상, 우리의 세상이 함께 조금씩 커지길 바란다.


끝으로 존경하는 래연 작가님의 책, ‘앙리 4세의 눈썹을 가진 고양이’ 중 한 구절을 인용하여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어디선가 귤빛 사탕 냄새가 난다. 머지않아 섬세한 사람들의 세기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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