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은 더 달콤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일단 내가 살던 오피스텔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둘이서 소꿉장난하듯 사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할 엄두조차 못 내는 작은 집에서 계속 지낼 수는 없었다. 네이버 부동산을 켜고 가지고 있는 돈으로 갈 수 있는 동네를 찾아 평일 저녁에 한번 둘러보고 계약을 했다. 집 밖을 나서면 동네 뒷산에서 관악산으로 연결되는, 공기 좋고 언덕 꼭대기 버스 종점에 있는 아파트였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그곳은 복도식 중앙난방이었고 겨울이 오자 거실온도는 18도까지 내려갔다. 꼼꼼하게 조사하지 않고 들어간 그 아파트에서 우리는 많이 싸웠다. 소비성향이 달라서. 생활패턴이 달라서. 저축성향이 달라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편이 새로 시작한 사업이 결혼 전과 다르게 잘 풀리지 않아서. 나는 남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남편은 내 불안 섞인 시선을 외면하기 바빴다. 더 행복해지려고 한 결혼이었는데 성급한 결정을 한 건 아닌지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남편의 성실성과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다.
남편은 사업자 통장에 돈이 마르자 정부대출을 받아서 생활비를 주었다. 매월 생활비를 송금 받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버티고 있는 남편은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면 너무 안쓰러웠다. 남편 기를 꺾는 와이프가 되고 싶지 않아 그 상태로 8개월 이상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남편이 친구랑 술 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되어서 외박한 날 내가 폭발했다. 사무실 접고 취업을 해 달라고. 나중에 아이템이 생기면 그때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금은 네가 가진 능력으로 돈을 벌기 시작해 달라고.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아마도 이 상태를 지속하다 가는 우리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다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몇 군데 지원을 한 후 좋은 조건의 회사와 계약을 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6시면 일어나서 7시면 집 밖으로 나갔다. 배짱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실한 개미의 생활을 시작했다. 저녁에 야식과 술 한잔을 좋아하던 사람이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10시 반이면 소등을 했다.
배짱이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