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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유지향 Sep 26. 2022

엄마 경력은 쌓이지 않는다

세 번째 사춘기를 마주하며

회사에서 한 20년쯤 근속했다면 중간간부쯤 될까요?

엄마 경력 20년을 훌쩍 넘겼다고 자만했습니다

세 번째 사춘기이니 호락호락 넘어가겠지 마음 놓았습니다

베짱이처럼 딩가딩가 기타를 치면서 초음파 미인의 사춘기와 마주했지요


그런데 이를 어쩔까요

잠시 주부 경력과 엄마 경력을 호환 가능한, 서로 대체 가능한 경력으로 알고 있었나 봅니다

주부 경력과 엄마 경력은 전혀 다른 분야여서 대체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주부 경력과 엄마 경력 둘 다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차곡차곡 쌓일 거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네요


n개월 차 주부와 n연차 주부가 똑같은 요리를 한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따라 숙련도에 확연한 차이가 나겠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스킬뿐만 아니라 화려한 잔재주도 부릴 줄 아는 경지에 올라있을 테죠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는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주부 경력은 쌓일 겁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개별자인 아이 하나하나에게 매 순간 처음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단 한순간도 처음 아닌 적이 없는 영원한 '을'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엄마 몇 년 차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첫째에게 처음 엄마이듯 둘째에게도 셋째에게도

저는 언제나 신입 엄마였던 것입니다

셋째는 두 번 출산 경험이 있는 제가 낳은 첫 번째 아이였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신입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두 번이나 겪어봤다고 자만하다 그만 코가 제대로 납작하게 눌리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두 번의 사춘기 족보 기출문제집을 갖고 있다고 저 혼자 자만할 일이 절대 아니었던 셈입니다


초음파 미인의 사춘기 앞에서

엄마 경력 운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 경력은 절대 절대 쌓이는 것도 쌓을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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