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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Feb 07. 2023

멋진 신세계

 

"합창단 한 번 같이 하면 어때요?" 지인이 합창단에 가입하기로 했다면서 같이 하자고 권했다. 참 반가웠다. 코로나로 너무 긴 시간 음악과 떨어져 있었다. 노래를 배웠던 시간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한 때 열심히 배웠으니 실력이 성장한 그 자리에 그대로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노래도 하나의 기술이라 쓰지 않으면 후퇴한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여서 그렇다고 하면 핑계일까. 노래 부를 일이 없으니 몸의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호흡도 발성도 모두 잊혔다. 아련했던 선율이 떠오르자 합창단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합창단원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게 음악은 힐링 그 자체였다. 어른이 되어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선율이 주는 감동이 언제나 가슴을 꽉 채웠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음표를 따라 상상의 세상으로 갈 수 있었다.

설레는 맘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20여분이나 빨리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합창단을 소개한 지인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낯선 한 여성이 있다.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기도 뻘중하고 우린 어차피 합창을 하면서 만날 사이니까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는 오늘 처음 왔는데요."  

"저도 처음이에요. 아까는 불도 안 켜져 있어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왔더니 불이 켜져 있어 들어왔네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기 무료해서 뭐라도 해보려고 동네 모임을 검색했었어요. 합창단원 모집 공지가 밴드에 뜨길래 가입하고 왔어요. 오디션 할까요?" 

"글쎄요. 그냥 파트를 정하기 위한 간단한 발성 같은 거 해보라고 하지 않을까요? 단원이 많고 실력이 중요한 합창단이라면 오디션을 하겠지만 단원 충원 중이니까 입단 테스트는 안 할 것 같아요." 

"음정을 잘 못 잡기도 하고 예전에도 소프라노 했으니까 소프라노 하고 싶어요."

"저도 낮은 음정은 소리가 안 나서 소프라노 해야 하는데, 같이 소프라노 하면 좋겠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아 우리는 계속 수다를 떨었다. 

“동네에 등산 모임도 있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저도 산에 가고 싶은데 정보 좀 주세요. 일단 연락처랑 성함 먼저 알려주시고요.”     

모임 시간이 15여분이나 지났는데 단원이 너무 없었다. 유난히 결석이 많은 날이란다. 신규인원이 나까지 네 명이라고 했다. 오디션은 없었다. 어떤 파트를 할지 물어보고 원하는 파트로 배치해 줄것이라는 기대는 엇나갔다. 이 새로운 합창단에서는 원하는 파트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모두 알토를 하란다.       

"저희는 소프라노 하고 싶은데요. 저음은 소리가 안 나요."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프라노 파트는 어렵고 알토가 쉬우니 알토를 하면 돼요. 일단 알토로 적응하도록 하세요. 나중에 소리를 들어볼게요." 지휘자의 말에 나는 하이 소프라노라고, 레슨도 다 받았었다고 단장이 끼어들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낮은 도부터 낮은 라까지 내야 하는 알토, 알토가 두 파트로 나눠질 때 가장 낮은 알토를 하란다.

신규 멤버에게 가혹한 시간이었다. '그래, 이참에 한 번 낮은 저음 연습해 보지 뭐.' 그렇게 시작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리는 나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프로 소프라노도 내기 어려운 저음이었다. 호흡을 받치고 낮은 라음이 멀리서도 들릴 수 있도록 노래할 수 있다면 프로 중 프로였을 것이다. 음악이 스트레스라니 믿을 수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2시간이나 지났어?' 할 만큼 금방 지나갈 노래 시간이 그렇게 더디 갈 수 없었다. 힐링은커녕 지루하고 뭔 노래가 이런가 싶을 만큼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음악이 다 내게 맞는 건 아니구나, 음악도 자기한테 맞는 곡이 있는 거구나. 깨닫고 나니 계속 노래를 하는 게 맞을까 싶기도 하다. 잡념 속에 불협화음을 느끼며 50분쯤 노래를 불렀을까. 내 옆에 앉은 신입 멤버가 어느 순간부터 노래를 안 한다.  

"계속하실 거예요?"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도저히 못하겠어요.”

지휘자가 잠깐 쉬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나가려면 지금이 딱 좋다. 그녀가 짐을 챙겼다. 

“제가 합창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저는 그만 할게요.”

“저도 그만 할게요.” 

기존 단원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이나 한 듯 쉬는 시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저음을 안 내도 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합창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돼 포기하다니, 민망해 죽겠어요. 집에 가서 어떻게 말하죠?"

"합창도 자기한테 맞는 곡이 있고, 회원 분위기도 맞아야 하니까, 여러 군데 가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한숨은 없었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다니, 하면서 얼마나 깔깔거리며 웃었는지 배가 아플 정도였다. 

"이것도 인연인데 차라도 마셔요."     

스트레스를 받은 그녀와 나는 카페로 갔다. 달달한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야밤에 홀짝거리며 굳세게 약속했다. 

"일단 오늘은 먹고 스트레스를 풀어야죠." 

"맞아요. 다이어트도 내일부터 다시 하고, 음악도 포기하지 말고 또 다른 동호회 문을 두드려보자고요."

"우리, 친구 해요."

"좋아요. 카톡방부터 만들어야겠네요."     

 그렇게 죽이 잘 맞을 수 없었다. 음악이 새 친구를 만들어주었다. 불협화음도 멋진 세계가 되었다. 밤이 다 가도록 음악이 제대로 선사한 힐링시간이었다. 음악이여, 고마워요. 

때로 맡겨진 일이 맘에 들지 않아도 이처럼 웃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삶의 노래도 고마우리. 잠깐이면 지나갈 테니. 또 지나고 나면 호탕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길테니. 기대치 않은 좋은 일도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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