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이승우, 단편소설

by 조이스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1.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결국 죽는다. 나는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지만 확실히 얼마나 살지는 모른다.

2. 사람의 형상은 무엇일까. 나무의 형상을 생각하며 나는 목수교실을 다니며 뭔가를 만든다.

3. 하루아침에 회사를 뺏기고 악덕 경영자라는 모욕을 받았다.

4. 딸과 아내는 내가 뭔가 해보길, 두문불출하지 않길 바란다.

5. 목공도 배우고 여행도 하고 그러면 불면증도 사라지지 않을까.

6. 호텔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나를 딸 선영이 불안해한다.

7. 아내를 따라 여행길에 나섰던 나는 동굴에서 잠을 잔다.

8. 기철이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벽장 뒤주 속에 숨었다.

9. 뒤주에서 무사했던 기철은 가장 편안하게 뒤주에서 지낸다.

10. 나는 1년밖에 못 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확실하지는 않다.


소재 : 목수학교, 널, 뒤주, 여행, 동굴, 딸, 아내, 엄마, 돈, 무릎꿇기, 악덕 경영인, 빵집, 형사, 암자, 잠, 불면증, 오래 산다는 것, 죽음, 나무, 본형, 형상...


기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사이에서 생긴 트라우마. 기철이 동굴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이유였다.

목수 학교에서 목공을 배운 기철이 두문불출하며 만든 정체 모를 직육면체는 널. 뒤주처럼 편안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기철의 아내와 딸 선영이 놀란 것은 기철이, 자신이 만든 그 널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겐 원형, 본형이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고,

그건 어떤 불안, 트라우마와 연관 있을 것이다.

스스로 편안하고 안도하고 가장 쉴 수 있는 곳.

불면증으로 삐쩍 말라가던 기철이 뒤주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잠을 잔다.


나를 가장 숨 쉬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곳. 그건 도서관이고, 책이다.

나는 책이 가장 편안하다. 기철처럼, 나는 책으로 도망친다.

집에 있는 것보다 공부를 핑계로 밤늦도록 도서관에 남았다. 가능하면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아들은 저렇게 자기 방에서 힘들어하는데, 엄마라는 나는 이렇게 데스크톱에서 긁적이고 있다니, 이것도 어린 시절의 본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지금 아주 피곤하지만, 스스로 만든 숙제를 끝내고 하루를 마감하려는 이유도, 나의 오래된 습관,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들아, 나는 네가 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 그깟 공부가 뭐라고...

흥미 없는 공부하느라 종일 앉아 있을 너. 이 년만 참아라.

네가 진짜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날아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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