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때로는 가족이 병.들.게 하곤 해
나의 하루 모든 것이 무척이나 궁금해하던 엄마지만
막상 내 하루를 다 알게 된다 생각하면
결국 엄마가 상처 받을 거라 걱정 되.
나의 하루에는
나를 죽이고 있는 많은 감정들이 표출 되니까.
자식의 독립이 두려워진다면
지금 본인의 걱정을 모두 뒤로 숨긴 채
자식에게 솔직하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대화 해 봐요.
정녕 자식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러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만일 착각이라면 답은 나왔네요.
자식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으세요.
제대로.
가족 사이
서로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자식도 엄마의 아빠의 사랑을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면 안될 일이고
부모는 그 서운한 마음을 다짜고짜
화내는 식으로 표현하면 서로 상처만 남죠.
자식의 독립이 두렵다는 이유로
자식이 본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지 않고
부모의 말 한마디 상처가 짜증난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감정을 무시하지 마세요.
_ 작은 상처들이 모여서
‘말투’를 바꿔보세요.
본인의 말투가 바뀌었을 때
가족들은 생각을 해 볼 꺼예요.
기분이 좋지않아 말이 이쁘게 나가지 않았어도
이제는 내 감정을 차분하게 말하고 대화를 해봐요.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수 없고
서로에게 줄 상처를 줄여 줄 수 있으니까요.
어찌 됐든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간절한 사람이 행동해야 하니까요.
자존심은 쓸모없는 상처를 만든답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주겠지, 가족이니까 이정도는 알겠지
하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란 걸 알잖아요.서로의 존중을 필요로 하는 관계지만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인 우리는 존중보다 상처를 주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언제 마주 할 줄 모르는 이별에 후회만을 남기는 일을 만들거에요.
지금 그 ‘가족’이란 사이는
언제까지나 곁에있을 사이는 아니니까,
지금 그 ‘가족’이란 사이는
수천 년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님을,
결코 잊지 말아요.
“존중”없는 대화는
서로의 마음에 소소했던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의 탓 만을 하는 우울한 사이가 될 테니까요.
_ 언제나 아프더라
엄마 말투가 그러더라,
내가 태어난게 인생에 제일 큰 오점이라고 이야기 하듯,
상처가
나의 낮밤이 셀 수 없이 변해도
내 속에서는 매일 쉴 세 없이 상처가 된다.
나의 낮밤이 매일 바뀌는 시간에도
내 속에서 떠다니며 여기저기 상처가 된다.
지나가는 말들이 상처로 나아 내일 곪아가고 있을 때
내가 나를 위로해 보자.
내가 바라보는 내가
상처에만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상처를 곱씹으며 후벼파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상처로 인해 상대를 원망만 하고 있는건 아닌지 말이야.
설마 그런 나의 모습이라면
그 모습의 스스로를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지마.
_ 제발 그만
책임질 거면
계속 그런 식으로 하고
책임 질수 없다면
적당히 독립하게 둬야한다.
당신들 없는
세상이 온다면 홀로서야하는데
당신들의 부재가
죄책감으로 남고 허무함으로 남으며 마음을 휘저어요.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난다고 고요해지지 않으니.
영원히 책임 질 게
아니라면 독립하게 두세요.
집을 정리하려고
물건들을 다 내놨어.
내 물건은 아니지만
의사도 물어보지 못하고
버려지는 물건들을 보자니
나는 이제야 독립하나 생각이 들었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고
다시 내게 이야기 할 수 없고
저 물건들과 닮아 있었지.
이제는 정말 독립해야 할 텐데.
때때로 내가 원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이별이 있죠.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오래 아파하지 않으려면 홀로설 줄 알아야 해요.
세상이 생각보다 잘 돌아가 듯
나도 세상에서 생각보다 잘 지내야 하니까.
나의 그 그리운 마음 조차
어느 순간은 시간이 지나
익숙해 지는 날이 올거예요.
독립을 할 때,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해서 “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지?”라고 말하지 마세요. 서운함을 내포한 말이라고 해도 듣는 자식은 죄책감으로 또 자책을 하게 되어 끝없는 이별 앞에서 후회만 남아 스스로를 아프게 한답니다.
_알지만 너무 아픈 걸
보고싶다고 볼 수 없고
좋아한다고 말 할 기회도 잃었어요.
다시는 내 곁에 돌아올 수 없지만
나름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홀로 미소짓기도 하고
이제는 그 시간을 마주할 수 없다는
현실에 그리움이 증폭 될 때도 있죠.
그때 상처를 주고받기보다 좀 더 웃을 껄 하는 후회.
지금은 온전한 그리움만 남아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은 사람.
나는 엄마가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지.
잘못했었다고,
왜 그랬었냐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릴 줄 몰랐어.
“보고싶다.”
이제는 공기중에 흩어지는 말,
보고싶을 땐 그냥 커피 한 잔 하러가도 되었던 집.
머나 먼 훗 날 우리가
만나는 그날이 오면
내가 먼저 엄마에게 말하고 싶어,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잘못했다고.
꼭 다음 생에도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다음 생에는 좀 더 착한 딸이고 싶다.
_ 문득 떠올리기만 해도
잘 지내다가 문득 생각나면
코 끝이 찡 해지는 사람.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찡한 사람이 있나요?
세월이 지나도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됩니다.
지나가 버린 과거와 흘려버린 눈물,
그리고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려놓고 싶어도 돌릴 수 없죠.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깨달음으로 변해 떠다닙니다.
보고싶다는 언어로
수만 번 외쳐보아도
돌아올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그런걸 원하지는 않을 테니,
그저 내가 좀 편해지길 바랄 테니.
떠나간 엄마의 그 미소가 목소리가 다시 나에게 닿기를 ,
엄마가 쓰던 휴대전화를 들어 동영상을 찾고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리고 돌려본다.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잠을 청해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는 잘 간건지 아니면 날 보고싶지 않은건지
보고싶어도 볼 수 없어 문득 미워진다.
그때 내가 먼저 움직였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까?
그 날, 내가 일찍 일어나서
엄마에게 갔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까?
내 죄책감이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내 주위를 떠다니겠지.
가끔은 부정을 해봐도
결국엔 문득 올라오는 기억들과 후회는 죄책감만을 남기네요.
함께 가기로 한 여행지
이제는 갈 수 있는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이
이제는 대화를 할 사람이 없네.
내 나이가 10대 일 때,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들까지 가족이라는 존재는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지 않을 것 이란걸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모르게 준비하고 있었 던 것 같다. 아마도 삶과 죽음을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깝게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듯 한데, 이 나이가 되어 이유를 찾아보려니 잘 기억이 안나.
어떤 날은 엄마를 내 마음에서 죽여본 적도 아빠를 죽여 본 적도 있었지. 그래서 지금의 죄책감이 더 큰지도 몰라. 그런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면 엄마를 죽음에게 이렇게 빨리 빼앗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지금은 드네.
서로 너무나 닮았던 성격, 외모, 습관 때문에일까? 엄마랑 나는 눈을 떠서 마주보지 않을 때 까지 부딫이고 매일 싸우고 울고 화내고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본인들의 주장을 강요하려고 했던 것이 일상이였어. 그러면서도 항상 가족이니까 하는 생각에 희생하는 경우가 많았던걸 엄마는 알까? 우리집의 여왕님이였던 엄마. 그 여왕님이 제일 미워하면서도 제일 아끼던 나.
그 마음을 알아서 였을까? 나는 일찍 독립해서 일찍 자립하고 좀 더 멋있는 안정적인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조급해서 이것저것 많이도 했었지. 하지만 결국 엄마가 가기 전 까지 나는 이 나이를 먹고도 안정되지 못한 체 아직도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 엄마는 그런 날 두고 가는게 불안했던지 눈을 다 감지도 못하고 가버렸어.
이제는 조급함에서 자유로워 질까란 생각도 잠시 나에겐 아직 남은 가족들이 있어서 그럴 수 없었어. 아빠나 동생,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안정적인 모습을 내가 하고싶은 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또 나에게 맴돌고 있네. 가족이라서 이해하지만 가족이라서 짐이 되기 싫은 마음은 내가 가족을 남으로 생각하는 것 일까?
가족이라서 이해해야하고 가족이라서 제일 편해야하고 가족이라서 선을 지키지 않을 때 도 많았어. 난 그게 너무 괴로웠어. 가족이니까 배려해야하고 가족이니까 서로 편하다는 말로 포장해 서로를 상처주지 말아야하며, 그리고 가족이기에 서로의 선은 분명하게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우리 가족이 버거웠어.
살이 찌지 않았을 때도 매번 1키로라도 붙는다 싶으면 몸매지적을 하고 가족이라 이야기 해 주는 거라고 한다. 남들은 입발린 소리를 하는거라 너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거라고 말이다. 친척들이 모이면 제일 많이 들리는 이름은 나와 동생의 이름이다. 다들 가만히 있는 자리에서 무수리 마냥 움직이는 우리는 편해서 그런다고 한다. 자취방은 엄마의 아지트였으며 내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오픈해야했던 것은 나라는 인격이 없는 기분이였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이해해야했고 이해해했어.
이렇게 일찍 떠날 거 란걸 알았다면 좀 더 살갑게 굴걸, 왜 그렇게나 짜증만 내고 승질만 부렸을까 하고, 매일을 그리워하고 혼잣말을 하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왜 그때는 들어주지 않았나 싶어. 허망함에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포기하고 싶어지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면서도, 이 모든 감정을 이겨내고도 남은 가족들을 보며 또 방긋 웃는다.
나를 낳아 가족으로 살아간 시간이 행복했을까.
내가 엄마 딸이여서 엄마는 살만 했을까.
_ 받은 건 추억, 배움, 태도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일이야.
나도 정말 많은 사람에게 잊혀졌을 거야.
기억이란
다시 그 시절을 느껴보는거야.
내 마음 속에서 말이지.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그 시절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야.
삶이 해수욕장 모래처럼 그저 작은 틈에도 흘러내리 듯…
눈을 감지 말아요.
가버린 사람을 떠 올리는게 힘들다고
그리움의 마음이 들어도 못본체하는
고개 돌리지 말아요.
그 그리움을 외면하는 일은
스스로 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 모두가
힘겨워지는 일이니까.
그러니
그리울 땐 곱씹어도 될, 그 추억.
그리울 땐 떠 올릴 수 있는, 그 배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으니
이제야 그 마음을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아니,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때의 감정보다 상황을 보게 된거겠지.
너무 늦게 알아버린 그 마음이 이제는 아쉽다. 내가 좀 더 일직 알았다면 이렇게 후회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 아니 후회 안할 수 있었을까 확신은 없네.
이제는 괜찮아지겠지. 이제는 내 곁에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지만 않는 것 이니까. 내가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아픔에만 머무른다면 더욱 힘들어지겠지.슬픔과 그리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지만 말이다.
내 오래된 친구이자 엄마, 만약에 우리가 훗날
서로 마주보고 그 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를 할 날이 온다면
삶의 시간들을 지낸 힘으로 모두 말해주고 싶다.
“나는 어느순간 다 용서했어. 그동안의 상처도 다 좋아졌어.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미안해 하지말고 안타까워 하지마.”라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항상 말했다. 그 “배움”은 삶에 참 유용하다. 사람에게 치이고 버려진다고 한들 그 관계에서 나만큼은 사람된 도리를 해야한다고 그러고 나면 나에게는 또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할 기회가 주어졌고, 확실히 이전에 나에 비해 좀 덜 상처받는 법도 알았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내 마음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은 미숙하는 것. 내가 내밀었던 마음과 상대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관계에는 왜 정답이 없을까. 반복되는 상처에도 나는 사람됨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뿐 정답을 알 수 는 없다. 그래도 힌트는 배울 수 있는거 같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배움’이 있다. 배움 속에는 추억이 있고, 태도가 있다. 뾰족한 말들로 나를 상처 줄 때도 있지만 그 말들 속에 ‘배움’이 있을 때가 많다.
그렇게 좀 더 성장 하는 일을 만들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태도를 알 수 있고, 확실히 무지 할 때 보다는 많은 걸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
하나 슬픈 것은 조금 더 상처주지 않고 알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깊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도 흉터로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낯선 순간 떠오른다.
인생에는 왜 정답지가 없는 걸까. 인생에서 수 많은 관계를 맺고 수많은 행동을 검증받는 듯 소모되는 일생에 길잡이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동생에게
이렇게 전하려니 뭔가 쑥스러운 기분은 내가 너에게 좀 더 다정한 사람이지 않아서 이겠지. 나의 방황으로 좀 더 일찍 철이들고 나의 사정으로 너는 좀 더 일찍 엄마와 멀어진체 생활하는 일들이 익숙한 아이였어. 그래서 잘 참아준건지. 아니면 참는법 말고는 배우지 못해서 매일 속이 문드러 지는지.
너의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더라. 다른 사람 속상한 건 말하지 않아도 눈치가 빠른 나라 알겠던데.. 너가 속상해하고 있으면 나는 왜 속상한지 알수 없어 답답하더라. 그래서 였을까 갑자기 생긴 나의 관심이 불만이였을까. 무심히 던지는 말들이 나는 또 상처받더라고.
그래도 우리는 남매라고 어느세 또 풀어져서 장난친고 그래도 나를 누나로 받아주는 건지 이러이러해서 상처받았으니 사과해줘 라고 말하면 장난식이여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를 해주는 너는 동생이 아니라 내 오빠인가보다.
누나가 너에게 든든한 사람이 아니라 챙겨야 할 사람으로 짐이 된거 같아서 항상 부끄럽고 미안해. 내가 좀 더 누나답고 누나였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 밖에 없네.
그래도 하늘 아래 부모없으면 우리뿐이라는 생각으로 너만이 진정한 내편이라고 믿고 살아.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의 든든한 누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노력할게.
우리가 애틋한 남매라고 하기엔 적당한 거리감을 가져야하는 혼자놀기 장인들 이지만 가끔은 밥도먹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하자 어릴 땐 자주 했던거 같은데 요즘은 그럴 일이 별로 없었네. 언제나 오빠 같아서 고맙고 미안하고 좀 더 끈끈해지자. 누나는 언제나 너가는길이 옳은 길이라 생각해. 뭘 하든 나중에 너가 제일 힘들때 누나가 도울게 그러니 너가 가고싶은 길로 가는걸 망설이지마.
어색하지만 나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동생아. 나는 너가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