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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시율 Oct 16. 2024

이_ 찬란한 그 이름

_ 온 세상이 가득했으니..


내 생애의 첫 빛을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

나의 생애의 처음들의 많은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

그 순간들로 돌아가서 머물고싶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사계절은 밤뿐이라 생각했으나 돌아보니 그 어둠 속에 가로등도 별빛도 달빛도 있었다는 것이 이제야 보이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나의 모든 달빛 별빛 가로등 의 여러 밝은 빛으로 나의 길을 항상 비춰주던 사무치게 시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빛들이 희미해지고 어둠이 짙어지고 내가 건낼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아져 가는 매일이 이제는 비어가는거 같다.


언제나 나의 세상을 가득채우던 나의 세상이 였던 그래서 항상 믿고 항상 의지하며 항상 찬란한 나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였는데..


그러나 이제는 바꿔야 한다. 하나하나 다 바꿔야겠지.. 나의 습관이 중요하다. 이제는 습관을 바꾸고 그 많이 베어있던 자리를 비우고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뜩 내 머릿 속을 가득 매워서 휘저어갈 땐 그 날의 날씨 온도 습도 공기를 기억하기 보다는 그저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하는 순간들이 되었다.


‘이보다 더 사무칠 수 있을까?’싶은 나날들 속에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나의 어둠에 나의 밤에 나의 꿈에 언제나 다정하고 따스하게 내려앉아 있기를 바란다는 것. 내가 숨쉬고 살아가는 동안 모든 공간에 함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만은 간직 할 수 있게 해주길.


그나마 나로인해 생애가 행복한 공기가 있었기를 바라기도 하는 것.


그러니 부디 미안함으로 부채감을 가지고 있지 않기를…


언제나 이쁜 것 만을 보여주고싶어하고 항상 이쁜 것 만을 알려주고싶어했던 당신의 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오늘 하늘은 어느 날의 하늘 만큼이나 이쁘게 반짝이는 선물같았지. 고맙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아는 듯 괜찮다고 바람이 살랑이고 있어.


이 삶에서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고

더 담아내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는 법을 공부하고 있지.


이렇게 당신은 나에게 또 삶의 하나를 알려주고 있어.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이 아픔만 있지 않게 하기위해서


고요하게 치열하다.














나는 사실, 언제나 듣는 당신들의 그런 사랑이 그저 억압이고 강요라고만 느끼고 난 그 마음을 이해하는 날들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나는 당신의 잘못이라고 확신했지. 그저 평행선을 걷듯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라고 여기며 나에게 강요를 하는 모든 것 들이 나를 죽이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원망으로 가득했을거야. 언제나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없이 살아갔었겠지.


그러나 나는 문득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 바뀌면서 당신의 마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지. 어느 뜬금없는 날 나의 질문에 조용히 나에게 답해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날 마주하며 대답 속 그녀의 마음을 마주 할 수 있었어.


이 아련한 사실이 

나의 삶에 우리사이에 지극히 현실이라는

사실에 참 부끄럽고 스스로에게 너무 민망함이 가득했지.


나는 이 아련한 사실을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였어.

그 속에 살았던 과거를 사랑하게 되었어.이 완벽하다고 기억할 만한 과거의 우리를 그리워 할 거야. 지나가는 이 시간을 소중 하게 생각 할 거야.


“보고싶다”라는 , 지극히도 형식적인 말 속에 그리움을 담아 이야기 해 본적이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정확히 엄마가 왜 보고싶은지는 모르겠어. 아마도 친구이자 언니같았던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였던 든든한 당신이 보고싶은거겠거니, 나이가 먹어갔으면서도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그 품이 그리운거겠거니, 함께 나누던 이야기들이 더 애틋해서 그 일상들이 보고싶은거겠거니, 그저 수없는 이유들이 떠오르지만 그 속에서 고르고 골라 보는 거겠지.


평소 빨간색을 좋아했던 엄마, 빨간색을 띤 그 무언가를 보면 위아래 빨간색으로 맞춰 입고도 촌스럽지 않았던 엄마의 패션 감각이 떠오르는 그리운 멋쟁이. 요즘 시선 끝에 닿는 빨간색에는 엄마의 웃는 모습이 걸려있어. 그 어려운 화려함의 깔맞춤을 소화해 내는 엄마를 본 기억이 여전히 없어서 마음속으로 뿌듯해지는 미소가 떠오르기도 해.


참 이상하지. 살아가며 그 어느 시점에서는 서로를 원망만하고 각자의 삶을 망치는 원인으로 상처를 주기만 했었는데, 그 기억은 잃어버린다는 게. 시선이 걸리는 모든 것에서 아련하게 엄마가 아른거리며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것을 용서비는 내 모습이.


그래서 말인데, 나는 지금 이순간 당신을 보고싶은 마음으로 숨막혀. 그래도 나는 그동안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서 잘 이기고 있어.
















_오늘도 감사하고 그리워해


많이, 힘들었었던 하루

주저않고 전화하던 곳이 없어.


언제나 어두워진 내 마음을

기꺼이 밝혀주던 그 시간들이


어느 날의 꿈처럼 하늘로 가버렸으니.


요즘처럼 하늘이 퍽 해맑은 날이면, 어딘가를 함께 가고 싶은‘엄마’를 떠올리곤 합니다.


저에게는 치열한 하루하루를 무던하게 함께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랑이는 바람을 함께 느끼며 향긋한 내음의 끄트머리를 잡아 머무르게하며 웃음을 주고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불안한 밤중에 서로의 목소리로 위로를 받으며 다정하게 아침을 맞이 하길 바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원하던 가을 바람이 어느 덧 매섭게 차가워져도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따스한 곳에서 함께 바라보며 나란히 편안한 침묵속에서 책을 읽기바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다 어느 덧 새싹이 올라오는 날이 오면 가고픈 곳 함께 떠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무탈한 곳에서 그 어떤 고민도 없이 그림그리고 책을읽고 노래를하며 시간을 보내고싶던 사람이있었습니다. 무더워지는 날에는 다정하게 시원한 나라로 여행을 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여행 속 투정을 부려도 함께 모르는 길가에 떨어져도 그 또한 낭만이라며 웃으며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싶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만든 돈다발을 건네며 조금은 으쓰대며 “그동안 고생많았어 감사했고 사랑해”라며, 어쩌면 당연한, 쑥스러운 말을 해주고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더럽게 질긴 인연이라 투정도 부리고,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까지 했냐며 화도내고, 지극히 평범하게 모두 그러한 모녀사이처럼, 어쩌면 이게 정말 모녀사인거 아닌가 그 순간 그 시간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주던 사람이 저에게는 있었습니다.


결코 작지 않은 이 마음을 엄마가 당현하다는 듯 알아주었으며 그 마음에 한 마디 다정한 말을 해 줄때에는, 온 세상이 모두 나를 인정하는, 태풍의 눈 속에서 평온하게 느끼는, 세상 모든 불만 또한 긍정적으로 보이는, 기다렸다는 듯 온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함을 만끽하는 것 같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서랍 구석 어딘가 굴러다니던 목걸이 줄처럼 얽히고 엉켜서는, 그 목걸이 줄이 가지런하게 풀려 서로 편하게 웃음만 있는 나날들이 있기를 손 꼽아 기다렸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 이뤄지기를..



누군가 나의 매 시간을 걱정하고 이다는 것은, 꽤나 감사했던 일이었다. 별거 아닌 일로 목소리가 조금만 달라도 얼굴에 뾰로지라도 나는 날은 걱정스래 바라보던, 내가 어쩌다 밥을 거르고 일에 몰두한다면, 나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밥은 꼭 챙겨먹어”라며 말해주던, 그런 나의 하루를 짠해하며 사소한 마음까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그 걱정 말이다.


그런 조심스럽지만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의 말 보다도 온 마음이 움직이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랑을 하고 받는다는 것. 남 부러울 것 없는 든든한 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애틋한 엄마

말도 안 되게 현명했던 엄마

말도 안 되게 나를 아끼던 엄마


그러나 이제는 같은 시간을 살아 갈 수 없는 엄마,

그래도 언제나 함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조금은 위로가 되겠지.























_사소하더라도 진심을 이야기 했었다면…


마음이 복잡하더라도 마주보게 되던 사이 

집에서 도란도란 다함께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걸 제일 행복으로 느끼던 사이

서로의 지갑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눈치보던 사이


엄마와 나는 그런 사이였었어.

친구이기도하고, 부붕리기도 자매이기도 한 마음에 서운함은 비례하기도해요.


그러니까

엄마의 집착이 심하다해서 너무 힘들어 하지만 하지말고

“아..엄마가 나에게 아직 독립하지 못 했구나..”하고 생각해봐요.


엄마에게 소소한 선물과 함께 편지를 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족간에 ‘편지’란 선물은

몇 번을 줘도 어색하고 쑥스러운 선물이란 것을..

더구나 선물 할 이쁘고 따스한 단어를 고르고 고른다면 더욱.


하지만 그 시간들을 이겨내면

그 알록달록한 단어들이 가족의 마음 속 어딘가에 울림을 줄 때, 쑥스럽게 글을 읽는 얼굴을 보며 하나하나 소화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고민하던 그 시간들이 모두 보상받고 뿌듯해지는 느낌을 느끼기에 어느 순간 또 다시 펜과 종이를 잡고 끙끙거리게 된다.


내 엄마가 모자란 나의 글 솜씨로 위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선물을 주는 기분이 였어, 

계절과 상관없이 단 한 순간 온전하게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핑계 좋은 선물이기 때문이야.


고요하게 평범하던 시간에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자식이란 나는 사소함을 받기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지나가 듯 말한 반찬을 해주시고, 내가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좋지 않으면 종일 걱정하고, 수시로 밥을 챙겼는지 물어보고, 몸은 어떤지 살피고, 나의 하소연에 함께 욕해주고 다독여주던, 맛있다는 것은 매번 해 먹이려는 그런 사소한 말과 행동들을 말이다.


이렇게 

사랑위에 또 사랑이 쌓이며

나의 매일은 충만했었던

모두 매 시간들.


엄마란, 장기 하나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때어줄 수 있는 사람이였다. 그 정도로 나를 애착하던 사람에게 나는 사소함을 알아주지 못했으니.

진정한 가족이란 사소함도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었어야 하는 사이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아픈 몸을 가지고도

매번 내 건강 걱정을 먼저하던 엄마,

나보다 엄마 건강 먼저 챙기지..


아무도 믿지 못한다 한들

언제나 믿음을 주고 받던 우선순위가 일 순위였던

엄마와 나였다. 

좀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좀 더 감사하다고 말하고,

좀 더 든든하다고 건강챙기라고 말하고,

좀 더 이쁘다고 말하는

사소한 진심을 전했더라면 나는 덜 그리워 하고 있었을까..



























_ 내가 태어난게 엄마 딸이라 다행이야.


그립다는 생각 말고는 

그 어떤 마음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

매일.


서로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사랑하던 사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로 일렁이지요.


이건 천륜이라는 것 이지요.


하늘의 전구가 간접등으로 바뀌면

구멍 뚫린 듯 하루 일과가 끝나지 않는 기분이 드는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일기장에 꾹꾹 눌러담는 시간으로

조용히 수다를 떠는 밤인 것을 확인하네요.


이런 내가 밉더라.


있을 때나 잘 할 것이지, 있을 때는 그저 엄마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딸이란게 뭐라고 그렇게 상처를 주고 가슴에 못을 박았는지.그럴 시간에 서로 등을 기대 앉아 도란도란 동생 욕이나 같이 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더 위로였을 텐데.


누군가는 “엄마랑 안보고 살거야, 너무 힘들어”라고 이야기 한다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래도 엄만데?”라고 말 할 수 있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다투더라도, 혼이 나더라도, 서운해 지더라도 엄마가 나에게 왜 저렇게 말하는지 화법이 왜 저러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엄마의 잘못이여도 그저 내가 사과하게 되던 사이.


처음 시작은 의무적인 ‘엄마니까’였지만, 무조건 미워하기 보다는 엄마의 살아온 삶을 듣고 그 속에서 어떤 심리적 학대들이 존재했는지 생각해 보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갔던 그런 사이.


나와 엄마는 그런 사이였던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엄마도 그렇게 해 주었던 것 같다.















_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날씨가 맑아도 날씨가 울어도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가기싫다.


오늘은 몸을 감싸는 바람이 산들하다.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나무들의 낙엽처럼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는데도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눈이 부시고 아직은 더운 날이 짜증난는 것 인지

엄마에게 가야하는 길이 짜증나는 것 인지.


그러다 그 곳에 도착하면 짜증은 사라지고

변덕스러운 내 마음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엄마의 뼈그릇을 바라본다.그러면서도 나는 한 문장은 떠 올린다,‘나 여기 왜 왔지’.


생각이 흩어질 때쯤 내려오면서

그저 뼈가루뿐인 이 곳에 오는 것은 역시 짜증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을 일렁인다.


처음부터 이랬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내 주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불필요한 방문인거 같다.


항상 그곳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일이

나는 받아 들이기 어렵다.

산소에 모셨다면 그 곳이 엄마의 집이구나 했겠지만

그저 육신을 태우고 갈아버려 그 작은 그릇은

엄마의 집이라는 생각도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타인들의 시선들 때문에

남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 엄마의 말을 기억하면서 남은 아버지를 

욕먹이지 않기위해 난 엄마에게 간다.

옷을 골라 입고 단정해 보이는 복장으로 

엄마가 있다고 이야기 하는 그 곳을 간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가던 날 울지 않았던 나를

엄마를 보내던 날 울지 않았던 나를

엄마 짐을 정리하며 울지 않았던 나를

엄마가 없어도 잘 지내고 있는 나를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저 냅두는 아버지가 참 좋아.

















_사랑이란, 가족이란.



가족이라는 건 역시


힘든 하루를 터놓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내편이겠지”라며 든든하게 지켜 줄 거라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들 인 것.


때로는 친구보다 더 편한 모습으로 이야기하거나

서로의 드러운 모습을 보아도 그저 놀리고 지나가는 것.


같이 살고 있지 않아도

밥은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는,

몇일 연락이 없으면 무슨 일 있나 궁금해지는 것.


어쩌다 심하게 다퉈서 안좋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언제 그랬는지 그냥 구렁이 담넘어 가듯 넘어가며

“그래..핏줄인데 어쩌겠어”하는 사람.


서로가 서로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주는 사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건

참 복잡하고 이상한 관계인 것 같아.“


                               “왜 복잡하고 이상해?”


“봐봐, 분명 서로 제일 밀접한 사이인데 

자식이 자랄 수록 사이가 점점 힘들어져.

그리고 또 항상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하는

부모들도 있어서 상처받는 자식들도 많고,

결국에는 가족이 제일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될 때가 있지“


우리는 결국 천륜이라는 말로 묶여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성장해 가고 있어.


지금 당신이 하는 사랑,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


그 사랑이 ‘가족’이 된 거예요.


우리

앞으로는 다정하기로

서로를 좀 더 배려하기로

웃으면서 마주 보기로

상처주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후회 없이 이야기하기로


영원히 함께 일 수 없으니까.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 한거야?”


“몰라, 왜 그랬지?”


“그래서 후회해?”


“후회 했었는데, 너랑 네 동생은 아빠를 만나서 만날 수 있었던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후회 안해”


“날 낳은거 후회 한다며..”


“그땐 힘들어서 그랬어, 미안해 널 낳은거 후회하지 않아”

어떤 말이 진심일까?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 한거야?”


“이뻐서”


“엄마가 좀 이쁘긴 하지”


“한 날 비가오는데 우산을 들고 와 씌워주는데 너무 이뻤어”


“아빠는 엄마랑 살았던거 후회 안해?”


“내가 선택한 여자니까 괜찮아”


둘은 서로를 선택해서 가족이 되었지만

나는 선택할 수 없이 가족이 되었지.


그래서 였을까?

집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이유가.


하지만 지금은 가족으로 남은거

후회하지 않아. 서로의 상처를 알았으니까.










_ 나도 나이가 먹으니까.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훨씬 더 빨리 엄마를 바라봤더라면..’이란

원망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멍청하기도 한 생각.


나는 가족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 예민했고, 그 얼굴들로 나를 찌르고 베고 자르는 왠지 모를 상처들로 항상 외로워했는데, 그 말들 중에는 공격이 아닌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닌 날 위한 말이 존재했다는 것을 멍청하게 몰라던 거야.


 그래서 그 말들이 모두 상처였고 모든게 흉터로 남아버렸지, 그래도 어느 날 부터는 그 말들이 나에게 상처도 아니고 아픈 흉기도 아니였어. 서운해서 하는 말이고 나를 배려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행동이고 내가 조금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던 모습이였던거야. 살아가면서 조금 덜 상처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 하던 말이였던거야.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는데, 더 이상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해주지 않아.알아서 할 나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듣고 있다.

“너 이렇게 하면 될거라고 생각하냐?”라고.


가족이 이야기 해 주는 

조언에 있어서 자존심만 부리진 말자.


믿지만 걱정되는 마음을

무시하고 귀를 닫지 말아야지.


허나,

하나 주의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보다는 내가 느끼는 것을 솔직하지만 차분하게 

말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은 연습해야 한다는 것. 


좋은 가족은

각자의 생각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나 거리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알려고 하나 배려가 있어합니다.\


슬픈 일을 공유 할 때 위로가 되어주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땐 같이 화내주고

기쁜일엔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것.


손가락질 하는 사람 투성인 세상에서

서로에게‘조용한 등대 같은 내 편’이 되어주는 것.


그게 서로 진짜 위하는 가족이지 않을까요?
















#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 그 어떤 아버지들 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거 같은 그 어떤 아버지가 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아빠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딸바보 아빠. 언제나 일이 1순위이던 아빠지만 그 위 0순위로 나를 생각해 주던 아빠, 순위 밖인 ‘엄마가 없으면 너희도 없어’라던 사랑꾼 아빠입니다.


 언제나 내 편이고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친구처럼 대하면서도 사람이 지져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사람의 예의가 무엇이며 어른들을 대하는 방식을 알려주던 사람이 아빠였습니다.


 어디가서 항상 어른들께 이쁨받는 사람으로 자란 나의 모습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른들 앞에서 하지 말아야하는 예의와 사람이 사람이기에 지켜야하는 예의를 꾸준히 알려주었던 아빠의 가르침 덕분이지 않을까요?


 이제는 다 자라서 독립해야할 나이의 딸래미지만, 그 딸이 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면 서도 어디서든 공주대접 받기를 원해 집에서 공주대접 해주는 우리 아빠는 아닌척 여전히 딸바보입니다. 


 장난끼도 많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제 성격은 참 아빠를 많이 닮아있어 매일을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노력에 많은 도움이 되는 영혼의 한 조각, 그 조각은 제가 살아가는데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 준답니다.


 내가 날 사랑하고 내가 날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상처가 나도 잘 일어나는 사람으로 크도록 사랑해준 아빠, 더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할게요! 매일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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