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건네는 불빛

(26)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by 예쁨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 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라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시인, 윤동주 -





〈쉽게 쓰여진 시〉는 시인이 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마지막 시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유독 자기반성과 성찰로 가득했던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 중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수감 말기에 원인 불명의 발작과 급격히 쇠약해지는 모습이 반복되며,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옥중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사인(死因)은 일본 인체 실험(약물 주사) 희생설이 있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공식 문서는 없다.

다만 ‘윤동주 시인’은 전쟁과 식민지, 감옥이라는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죽었다는 사실이며,

그의 죽음 자체가 시대가 만든 참혹한 희생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시인은 더 쓰지 못한 시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시 속에서 밝힌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 불빛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윤리로 남아 있다.

그것은 몇 개의 글자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어둠 앞에서 끝내 외면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다짐이며 끝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그대는 등불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동안 <시인의 방은 꺼지지 않는다>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께서 찾아와 주신 덕분에 <시인의 방>의 불빛이 꺼지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있었습니다.

내 하루를 비추는 작은 등불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를,
어둠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 나눌 수 있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 불빛을 이어가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제, 당신의 방으로 이 불빛을 건넵니다.


by. 예쁨




아무리 싫고 자신이 없어도, 어쩌든지 시작해봐야 해요.

그러면 어느 순간 ‘어, 이런 게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해봐야 알아요. 밖에서는 절대 안 보여요.

이런 게 시라는 장르의 특색이고, 시가 모든 ‘예술의 예술’이 되는 이유예요.


- 극지의 시, 이성복 -









*메인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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