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 시(詩) (시를 읽기 가장 좋을 때)

(24) 12월의 시, 이해인 수녀

by 예쁨


<12월의 시>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고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 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것을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 이해인 수녀 -





연말연시(年末年始)
: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 해를 잘 보낸 것이 맞는지,

제대로 살아온 건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남겨두었는지 자문하고 스스로 평가한다.

아쉬움과 생각이 겹치는 시간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미뤄둔 목표,

애써 잘해온 날들까지도

후회로 덥쳐와 마음을 어지럽힌다.


시가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외롭지 않게 다독여준다.

이 시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후회 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짐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새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월은 마침의 달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달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연말연, 시(詩)

지금이 시를 읽기 가장 좋은 때다.

시 한 편이면 어지럽던 마음을 정돈하기에 충분하니까.


by. 예쁨



브런치 독자 여러분,
한 해 동안 너무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구독자가 늘어나는 기쁨과 다정한 댓글을 받으며 행복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브런치를 꾸준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작가님들의 생생한 기록과 함께 웃고, 울고, 감탄하며 인생에 큰 배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소통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모두 덕분입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 날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오라, 새 날이여!“


십년 전 딸에게 받은 연하장



이번엔, 정말이니?






못난 나를 이기는 건 완벽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나를 이해하고,

조금씩 다독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이해인 -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

*류귀복 작가님 댓글에서 제목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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