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자격

(23) 도둑에게서 배울 점, 랍비 주시아

by 예쁨


<도둑에게서 배울 점>


도둑에게서도 다음의 일곱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는 밤늦도록까지 일한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일을 하룻밤에 끝내지 못하면

다음날 밤에 또다시 도전한다.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모든 행동을

자기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

그는 적은 소득에도 목숨을 건다.

그는 아주 값진 물건도 집착하지 않고

몇 푼의 돈과 바꿀 줄 안다.

그는 시련과 위기를 견뎌낸다. 그런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잘 안다.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옮긴이 : 류시화 / 지은이 : 랍비 주시아 -





배움에도 자격이 있을까?



배움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우리는 배움의 대상을 선별하며 산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사람, 실패하지 않았다고 증명된 사람에게서만 배우려 한다.


딸아이가 다섯 살 무렵, “엄마가 왜 좋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우리 엄마니까 좋지.”

아이는 사랑에 조건을 달지 않았다.

묻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단지 엄마라서 좋다고 말했을 뿐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그 대답이 내겐 오랜 시간 순수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우리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이유를 늘어놓지 않는 그 단순함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도둑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는 실로 아주 중요한 문제다.

부끄러운 마음, 곧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 인식은 인간을 인간답게 붙들어 두는 마지막 경계이기도 하니까.

수치심조차 없다면 자신이 더 이상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게 되므로 결국 행위는 습관이 되고, 악은 생각 없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배움의 대상에 한계를 두는 순간,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나 삶은 종종 어린이의 말 한마디에 방향을 틀고,

도둑이 느끼는 부끄러움에서 인간의 마지막 윤리를 발견하고,

구걸하는 거지의 눈빛에서조차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게 된다.


그들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 말이 옳다는 뜻도, 그들의 삶을 정답으로 삼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그동안 ‘배움’ 앞에 가로막혀있던 우리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사람을 보기 전에 가치를 먼저 재단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믿음은 선택에 가깝다.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배움의 자격은 늘 우리가 정해온 것보다 조금 더 낮은 곳에 있으니까.



by. 예쁨





시는 심상한 것의 심상치 않은 발견이다.

아무 발견도 머금지 못한 시라면 밋밋하고 무의미한 말의 무더기일 테다.

무심히 지나치는 익숙한 것에서 낯선 사유를 끄집어내는 게 시인이다.


-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장석주 -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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