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다음 계절에게

자작시, 졸업식

by 예쁨

<졸업식>


오늘은 너의 졸업식.


봄날의 햇살이었고,

찬란한 여름 하늘이었으며,

제 빛을 아는 가을날의 열매처럼

옹골차게 익어가던 너.

매서운 겨울바람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잘 버텨주었지.


이제는 너의 다음 계절이 오겠구나.


어떤 길을 택하든

그 길은 이미

의미를 품고 시작된 것이란다.


서두르지 말고

비교하지도 말고

남을 탓하지 말되

자신을 책망하는 일만큼은 가장 늦게 미루어라.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억지로 밀지 말고

멈추면 멈추는 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네가 서 있는 방향을 믿고 기다려 보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지만

자신에게만큼은 끝까지 사랑받는 사람이기를.

너를 아끼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제법 후한 사람이기를.


엄마는 늘

다음 계절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 스무 살을 맞이한 너에게, 엄마가 -




사실 나는 유명한 졸업식 울보다.

아이들 유치원 졸업식은 물론이고,

큰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통곡 수준으로 우는 바람에,

아들에게 앞으로 있을 모든 졸업식 참석 금지명령을 받은 적도 있다.

결단코 울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자꾸만 눈물이 핑 돌아 불안한 오늘,

손수건을 꼭 쥔 채 결심해 본다.


‘오늘은 절대 안 울 거야!’


그러나 450명이나 되는 수많은 아이들 속에 내 아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순간,

위기가 찾아왔고 다행히 잘 참고 넘겼다.

아이들의 지난 학교생활이 영상으로 흘러나갈 때도 고비가 있었지만 웃으며 넘어갔다.

그러다가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 명 축하 인사를 건넬 때는 단속할 틈 없이 뜨거운 액체가 흐르고 난 뒤였다.


/

내가 기억하는 내 졸업식은 늘 우울함과 함께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겨울에는 아빠의 부고가,

중학교 졸업식을 앞둔 겨울에는 엄마의 부고가 있었다.

다시 3년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조기 취업을 했던 터라 같은 부서 동료분이 오셨고, 짜장면을 사주고 가셨다.

그때의 나는 울보는커녕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씩씩한 아이였다.

물론 웃지도 않았다.

하지만 <졸업식>이라는 세 글자는 여전히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다.

/


졸업식 울보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그러므로 졸업식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할 거다.

(특히 아들, 보아라!)

여기! 여기! 네 엄마가 왔단다!

티도 팍팍 낼 거고,

커다란 꽃다발도 안겨줄 거고,

너의 활짝 웃는 사진도 남길거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맛있는 밥도 사줄 거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계절이 늘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더라.

겨울이 길어질 수도 있고,

느지막이 봄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 딸아,

너의 다음 계절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바라.

그 계절에 언제나 엄마가 함께 할 테니까.




by. 예쁨



졸업식 그 후)

멀리 있어 참석하지 못한 아들은, 의젓한 말로 엄마의 그간 노고를 알아주었고-

(대학 졸업식에 가도 되니?)

동네 이모들에게(?) 예쁨 받는 딸은 여기저기 선물 사례로 기쁨을 누리고 계시다.

예쁨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이로운 일이다.






당신이 할 일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즐거운 여자가 되어줘요.


- 삼체 2부, 류츠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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