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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있는 삶, 고양이가 없는 삶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6

by 김이집사



우리는 신혼부부 맞벌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함께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그렇게 함께 잠든다.

그리곤 다시 아침에 일어나 각자의 공간으로 떠난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로또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나는 원래 일 외에 주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무언가에 빠지면 완전히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받고 승진도 빠른 편이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회사와 나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타입..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에는 완전히 녹초상태였다. 퇴근 후 약손을 잡거나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나에겐 사치였다. 그럴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퇴근 후의 일상은 바로 집으로 쉬면서 책을 읽거나 하는 등 조용조용하고 평화롭게 하루를 정리하는 것.. 내겐 그게 최고였다.


그나마 결혼 후 취미가 생긴 게 있었는데, 바로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초록이들에게 관심이 생겨 토분을 사고 흙을 사고 분갈이도 하며 화분 개수를 늘려가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조용히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완벽한 취미..

연둣빛 작은 이파리가 올라올 때마다의 기쁨.. 녹색이 주는 안정감.. 이런 것들이 좋았다.


휴무일 때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일도 많았다.

어떠 날은 남편 출근 후 한마디도 하지 않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인사를 건네는 내 목소리가 생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가능하면 약속을 최대한 만들지 않고 집에서 청소하고 책을 보고 화분을 돌보고.. 이런 조용한 시간들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 내겐 최고의 휴일이었고 절대 이 틀을 깨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취미도 없다.

일 외에는 건조하지만 그 건조함이 주는 평화로움..

내가 지향하는 삶이자 최고의 휴식 방법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인생에 쿵! 하고 들어왔다.


그 어떤 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고 돌보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내게 말이다.





로또가 온 첫날,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냥 "귀엽다"라고 키우기엔 난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다. 아니, 좀 과도한 편이다.

이 작은 고양이를 위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고양이는 몇 살까지 살더라..

고양이는 뭘 먹여야 하는 거지?

고양이는 뭘 해줘야 하는 거지?

뭘 더 사줘야 하나?

뭘 더 해줘야 하나?


쟤는 말도 못 하는데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야??



로또를 처음 데려온 다음 날..

우린 둘 다 출근이었다.


아직도 집이 어색한지 새벽부터 일어나 온 집안의 냄새를 맡으며 뽈뽈뽈 돌아다니는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는데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앞으로 어떡하지..

우리 둘 다 출근하면 쟤는 집에 혼자 있는 건가?

아직 너무 어린데 혼자 둬도 되는 건가?

아무도 없는데 어디 구석에 잘못 들어가서 못 나오면 어떡하지?

혼자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리긴 하던데.. 진짜 혼자 둬도 되는 거 맞나?

안방 문을 닫아놓을까? 열어놓을까?

화장실 문은 닫아야 하나? 열어도 되나?

옷방문은 닫을까? 열어둘까?

아니다.. 옷방에 짐도 많은데 길 잃어버리는 거 아니야?

우리가 없으면 얘는 집에서 종일 뭐 하면서 지내려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결국 그날..

난 처음으로 반차라는 걸 쓰고 조퇴했다.

아파도 회사에서 쓰러져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일에 대해 집착하던 내가 고양이 때문에 조퇴라니..

스스로도 충격이었다.





솔직히 나는 사람 아기도 좋아하지 않고 동물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에게서 오는 성가심.. 그런 것들을 귀찮아한다는 것이 옳은 표현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 이런 존재들이 들어오는걸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원하지도 않았다.


반려동물..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본인을 엄마, 아빠라고 칭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쟤네는 동물인데 어떻게 사람인 그들이 엄마, 아빠가 된다는 것인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반려동물이 예쁠 수도 있지만 그걸 부둥켜안고 털털 날려대는 털을 뒤집어써가며 뽀뽀를 해대는 모습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불결하다고도 생각했었다.

그 작은 사고뭉치들이 집에서 벌이는 수많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말썽들도 모두 감내하며 말 못 하는 동물이니 어쩔 수 없다며 웃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동물단체들의 눈물 섞인 호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식용개, 나비탕.. 들으면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나에게는 그저 한낱 동물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보다 생명주기가 짧은 동물을 키우며 매달 수십만 원씩 지출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나보다 빨리 죽을 건데 대체 왜 쟤네를 데리고 와서 저렇게 돈을 써가며 시간 쓰고 돈 쓰고.. 불편함을 자처하는 거지?

대체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싶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결근을 하거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었다.


고작 강아지일 뿐인데..

고작 고양이일 뿐인데...


그랬던 내가 고작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반차를 쓰고 이른 퇴근을 선택했다.


오, 마이 갓..



SE-95466d1b-4d71-49e6-8c57-6a5a7866ae7a.jpg?type=w773 800그람 시절의 김로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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