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5
동물병원에서 하는 분양은 정상적인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바로 나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분양받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지만 몰랐다고 하여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야 했다.
병원이라는 곳에 새끼 강아지, 새끼 고양이를 진열해 놨는데도 기시감이 없었다.
그만큼 관심도 없었고 무지했었다.
오히려 병원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했던 것 같다.
돈 주고 데려와놓고도 나는 펫숍에서 사 온 게 아니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돈을 받고 분양하는 곳, 동물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 곳들..
그곳이 동물병원이던지, 펫숍이던지, 가정분양이라는 말로 포장된 곳이라던지, 자기네들은 돈 받고 입양 보내지 않는다고 해놓고 책임비 명목으로 수십만 원씩 요구하는 곳이라던지..
동물의 목숨을 걸어놓고 돈이 오고 가는 모든 곳은 펫숍이다.
로또를 입양하고 기본검진을 하러 병원을 찾았다.
무지했던 나는 동물병원에서 분양받는 것도 펫숍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멘붕에 빠졌다.
보통 펫숍에서 분양받은 경우, 건강상의 문제가 많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병원 예약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그래서 꽤나 긴장하며 병원에 갔다.
그러나 다행히 건강상 문제는 없었다.
귓속도 깨끗했고 체온도 정상이었고 전체적으로 건강한 편이라고 하였다.
그나마 데려왔던 병원에서 기본적인 케어는 하고 있었나 보다.
다행이었다.
다만..
로또의 몸무게 800g
병원에서는 아무리 먼치킨이더라도 4개월이 다 되는데 1kg도 되지 않는 건 드물다며 너무 작아 꽤나 놀란 눈치였다.
육안으로 봐선 3개월도 안되어 보인다고 했다.
하루 사료 급여량, 어른 수저로 한번..
그게 데려올 때 병원에서 알려준 사료 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또를 데려온 병원에서는 아이가 분양되지 않고 시간만 계속 가고 있으니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려 했었나 보다.
정말 죽지 않을 만큼만 사료를 준 것 같았다.
로또를 데리고 온 병원에서 알려준.. 하루에 수저 한 숟갈의 사료양은 아무리 봐도 너무 적어 보였다.
그래서 무시하고 그릇에 낙낙하게 부어주었는데, 그걸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부족한가? 싶어서 조금 더 놔주면 그것도 다 먹었다.
정말 주는 대로 족족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먹어대더니 어느 순간부터 며칠 지나고부터는 양조절을 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다.
보통 길고양이를 처음 집에 데려오면 한동안 이렇게 먹어댄다고 한다.
언제 밥을 또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먹을 수 있을 때 한껏 욱여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밥이 항상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이제 배를 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자신의 양만큼 조절해서 먹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로또도 그랬나 보다...
언제나 배가 고팠으니 눈앞에 보이는 사료를 다 먹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우리 로또는 아직도 삼냥이 중에 유일하게 식탐이 강한 고양이가 되었다.
처음 로또는 방석도 사용할 줄 몰랐다.
이상했다.
내가 생각하는 고양이는 폭신한 쿠션이나 방석에 편하게 누워 골골거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녀석은 차가운 맨바닥에 그냥 드러누울 뿐, 방석이나 이불을 가져다주면 일단 경계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발끝에 닿는 헝겊의 느낌에 질겁을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쿠션으로 된 숨숨집이나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종이집도 모두 무서워했다.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고양이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자꾸만 차가운 바닥에서만 뒹구는 녀석이 안타까워 간식으로 유도하며 숨숨집과 방석을 사용하는 것을 교육시켰고, 사용하는 데까지 한 달이나 걸렸다.
이것도 나중에 깨달았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어미한테서 떨어져 한 달 반을 그 차가운 유리벽 속에 혼자 갇혀 지냈던 녀석이다.
사방뿐만 아니라 바닥, 천정까지 철저하게 투명한 유리벽이었던 차가운 그곳..
따뜻한 방석보다는 차가운 유리가 녀석한테는 더 익숙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도 멋모르던 상태라 그런가 보다 했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어리고 연약한 아기를 어떻게 작은 러그 하나 없이 그런 차가운 유리바닥에 그냥 방치할 수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다.
손바닥만 한 작은 강아지집이 하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너무 안쓰럽고 속상했다.
로또는 스킨십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개냥이와는 거리가 멀다.
처음에 봤을 땐 손가락을 내밀면 놀자고 달려들었지만 그건 어릴 때의 본능적인 놀이 반응이었던 것 같다.
손을 슬쩍 내밀면 화들짝 놀라거나 뒷걸음치는 모습이 더 많았고, 처음엔 그게 너무 서운했었다.
SNS 영상에서 보이는 고양이들은 손만 내밀면 다가와서 얼굴을 비비고 무릎에 앉는 등 애교가 넘치는 모습이 대부분이던데.. 우리 집 고양이는 그래주지 않는 게 처음엔 불만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선 잠투정할 때 가까이 와서 내 손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지만 그것마저도 잠투정 한정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깨달았다.
무려 한 달 반은 숨을 곳 없는 차가운 유리벽 속에서 사람들의 눈길, 손길을 견뎌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리벽 너머의 녀석을 쳐다보고 유리창을 두드렸을까?
예고 없이 불쑥불쑥 들어오는 손가락들이 녀석에게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인지 여전히 삼냥이 중 제일 무뚝뚝하다.
아직도 손을 갑자기 내밀면 깜짝 놀라기 때문에 만지기 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내고 허락을 받아야 손길을 받아준다.
지각과민 증후군
로또를 보고 있으면 때때로 등줄기가 물결치듯이 출렁인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어릴 때는 그 횟수가 너무 잦아 가슴이 철렁하곤 했었다.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려가 물어봤는데 지각과민 증후군 같다고 했다.
보통 스트레스를 받으면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불안한 환경에 노출이 되면 종종 보이는데 정확하게 밝혀진 이유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로또처럼 어린 자묘의 경우 어미묘가 불안한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을 했을 때 그 불안감을 공유하며 태어난 새끼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증상이라고 했다.
이런 게 원인이라면 로또의 등 꿀렁임은 당연할 것이다.
당연히 엄마는 불안한 상태였을 것이며, 태어나 두 달도 되지 않아 강제로 떼어져 차가운 유리벽속에 혼자 갇혀서 진열되었다. 이런 상태의 새끼 고양이에게 정서적 안정은 사치다..
고양이의 사회화는 보통 12주 안에 결정되기 때문에 최소 3개월은 어미와 형제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온기를 나눠 받는 경험을 하고 정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로또는 그 소중한 시기를 혼자 갇혀 있었다.
지각과민증후군에 대해서 몰랐을 때는 로또의 이런 모습도 뭔가 서운했었다.
너를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 해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하고 사랑도 주고 있고, 이제는 충분히 안심해도 되는데 속상하게 왜 자꾸만 놀라고 등을 꿀렁대는 거니.. 하고
하지만 로또의 마음이 아픈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모든 것이 미안해져만 갔다.
늘 조그마한 자극에도 깜짝깜짝 놀라 해서 우리는 늘 발끝으로 조심조심 다녔다.
1년 넘게 보조제(질켄)를 먹이면서 점점 안정을 찾아 지금은 등 꿀렁임이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삼냥이 중에서도 유일하게 가끔 등을 꿀렁거리고 있고 여전히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겁은 제일 많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고 있으니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너는 우리 집 서열 1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