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녀가 찾아왔다.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 무언가 이상했다.
그녀는 나에게 안아 달라고 졸랐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캐물었다.
그녀는 울며 이야기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 교제를 반대한다고 하였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연신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면서도 나의 상황과 처지가
너무 초라하고 한탄스러웠다.
그녀를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혼자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녀를 놓아주는 것이 그녀가 가장 행복해지는 길은 아닐까?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만남을 이어가는 게 맞는 것일까?
그녀의 아버지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나고 있었고 나이도 이십 대의 후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가진 것도 없고 앞날도 불투명한 서글픈 청춘이었고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만남을 반대할 이유가 충분했다.
세상의 계산으로는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사랑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싫어져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끝까지 가보자고 말했다.
끝이 어떻게 되든 처음으로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