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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태와 태만 Nov 01. 2022

도구. 그 좁은 문을 지나면 발견하는 생각의 길.(8)

미술에 등장한 물리적 현상과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는 미술가들.(3)

 낭만주의자들도 신고전주의자들도 미술은 ‘형(形)과 색(色)’에 충실하게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은 단순하게 외관으로 드러나는 모양이고, 색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이다. 말은 단순하지만 이 것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길은 충분히 정말 매우 충분히 지난하다. 형을 결정하는 최종 값인 꼭지점도 미분의 지속이 무한대이며 색의 최종 값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더 작은 면과 이에 의한 더 많은 꼭지점의 변화는 미시적 관찰이 깊게 진행되면 될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색의 분화도 마찬가지다. 빨강과 노랑의 중간색은 주황이라는 관념적인 산수에 의한 결과적 명명도 역시 하나가 아님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빨강, 노랑이라 명명한 관념이 생각보다 무한하게 넓고, 이 두 색의 혼색 범위는 무한한 빨강과 노랑의 곱셈 값으로 더 증가한 주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형의 꼭지점과 색의 분화를 아주 오랜 시간 쫓아 모방하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미술 범위가 수천 년 동안 해왔던 전통이었다. 전통적인 아카데미에서 이것에 대한 배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가의 자기부정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형의 정교함과 색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이 충분했어야 했다. 그러한 충분함이 담겨야 미술이 추구하던 원론적인 숭고함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숭고미가 작품에 담기려면 미술가가 작품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이는 미술가가 작품에 들인 시간(완성도)이 느껴지는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그림은 정교한 인체의 다양한 형태가 캔버스 안에 수없이 과잉되고,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매우 넓게 과장하는 것으로 충족시켰고, 로코코 시대의 그림은 바로크 시대의 그것보다 더 깨알 같은 디테일로 그것을 충분하게 충족시켰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 이후의 작품들도 그 전통을 외면하지 않았고 현실에서 목격하는 장면보다 훨씬 더 극명한 대비와 과장된 서사들로 기록하거나 선동했다. 앙시엥 레짐을 폐기하려는 시대정신을 얻고, 후원자를 잃고, 혁명을 맞이한 대 변혁기였던 이 시기에 미술가들은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관점은 전통과 멀어지기를 바랐고 형과 색의 깊이를 바라는 전통적인 재현의 굴레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한다. 또 때마침 이런 변화를 반기는 미술가들도 나타난다.




 언급하려는 미술가는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이다. 느지막이 시작된 마티스 그림의 서사는 귀스타브 모로우(Guastave Moreau)에 의해 발탁되고, 그 이후의 시간에 크게 영향받는다. 모로우는 서구 역사 중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미시 세계를 탐구했던 미술가이다. 그의 소재는 단테의 ‘신곡’ 중 연옥과 지옥 편의 깨알 같은 디테일에서 영향받았다. 신곡의 묘사는 매우 낯설지만 화끈했다. 그 글은 성상 금지령 이후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뜨거운 기폭제였고, 그 묘사의 현장감은 기독교를 절대 신봉해야 할 만큼 손에 잡힐 듯 뜨거웠다. 모로우는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성경의 각 장면에 관심을 가졌다. 상징과 은유로 남은 문자의 세계는 매우 헐겁기 때문에 그것을 나름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시도가 담긴 작업을 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교회는 교리를 은폐하려 하고, 예술가는 드러내려 한다. 모든 이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모든 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되어 버린다. 교회는 성상이 아닌 이 작품들에 눈을 감는다. 모로우의 변태 한 상징주의자로서의 행태는 마티스에게 큰 영감이 된다. 마티스는 미술적 생애에 마침내 형을 추방해 버린다. 모로우의 표현에서 모로우가 인식한 형태를 대중이 낯설어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렇다면 미술에서 형태는 인식을 가둘 뿐 정서와 감정은 그 형 안에 담기지 않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후 마티스는 형의 정교함을 폐기한다. 그렇다고 형 전체를 버리지는 않는다. 형의 환각이 남는다. 이 형의 환각이 색으로 치환되어 형의 잔상보다 더 깊은 잔상이 되어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형이 폐기된 마티스의 그림에서 무엇이 남는지 살펴보자.


Henri Émile-Benoit Matisse LE BONHEUR DE VIVRE

 ‘삶의 기쁨’에서 마티스는 17개의 인체를 캔버스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당신은 아마 손가락으로 인체의 수를 헤아리고 있을 수 있겠다. 마티스는 인체의 숭고한 해부와 해석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삶의 스펙트럼에는 다양한 삶의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네,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자들이 열어젖힌 형의 소거를 마티스는 매우 격정적으로 환영한다. 마티스의 인체 형태는 자유롭고 자유롭다. 그리고 그 형태는 마네의 형태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면의 형태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고, 모네의 빛에 의한 상감을 허용한 형태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빛을 받은 인체의 반사된 빛을 기록하기보다, 유동적인 인체 형태의 경계를 인위적인 검정으로 기록하기보다, 자연의 발색과 가까운 원색을 활용하려 노력한다. 이제 그 수를 다 세어 봤으니 하나의 인체는 어디에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 나머지 인체는 바로 배경이다. 모로우가 미시적으로 살펴보았던 서사에 대한 질문과 해답에 의한 상상력이 마티스까지 연결된다. 인체를 그리지 않아도 인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상상력. 이 상상력은 훗날 미술의 품을 거대하게 만든다. 마티스는 실질적인 현장에서 느껴지는 기쁨을 표현하려 들지 않는다. 미술이 관념 안으로 들어와 버렸으니 관념 안의 상상을 표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다. 관념 안에서는 모든 상황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도 된다. 그러니 관념 안의 모든 상상력에 의한 현실의 표본은 자의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원근법도 잊고 한 캔버스라는 공간 안에 여러 독립적인 서사가 혼재되어도 그만이다. 형의 근원을 뒤흔드니 마티스의 색은 발산하기 시작한다. 미술에서 형을 소거하면서 얻게 된 내적 공간을 보라. 이제 미술가(마티스)에게 현실과 현장은 필요하지 않다. 미술은 현실과 현장의 재현에서 벗어나 내적 감정과 상상의 영역으로 달려갈 준비를 한다. 자, 이제 형의 공백이 생겼다. 이 시대에 이 공백은 아직도 메워야 하는 강박으로 남아 숭고미 지향에 대한 여전한 압박으로 존재한다. 미술가는 이 형의 공백을 색 활용의 극대화로 메우려 한다. 단순해진 형은 이미 신 문물이다. 신 문물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개척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개척의 활로는 색 활용의 다른 방향으로 열린다. 이전의 색 표현은 과장된 명도의 수밀도로 형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채웠다면, 이제 형의 꼼꼼함에 복무하던 명도의 과장된 단계를 버리고 색의 다른 조건을 통해 그 필요를 채우려 한다. 그렇다. 색의 다른 구분에 의한 또 다른 대비를 활용하면 된다. 이제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보자. 삶의 기쁨에서 눈에 띄게 반짝이던 색의 대비인 빨강과 초록의 색상 대비이다. 게다가 심심치 않게 파랑도 단순화한 인체의 선 주변에 끼워 넣는다. 빨강과 초록, 그리고 파랑은 빛의 삼원색에 속하는 색이며 이 색만으로 그림을 채웠다는 것은 색의 충돌로 만들어질 충격을 완화할 중간색의 부재를 의미한다. 각 색상의 채도 대비가 넓다는 의미이다. 이는 색의 베리에이션(여러 안료의 중첩으로 만들어질 기술적 표현이거나 그 표현을 위한 시간)을 버리겠다는 의미이다. 각 색상이 어떻게든 충돌하면 그 색상으로 구성된 그림은 시끄러운 소리(정서)를 가진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결국 앙시앙 레짐을 배격하면서 여전히 전통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마티스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이어질 미술의 역사에서 '뭐 그러면 어때?'를 통해 크게 달라지게 할 또 하나의 징검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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