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회화가 형을 소거하면서 그 빈 부분을 대체하기 위한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이전까지의 글이 형을 회화에서 추방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 등장하는 소재들은 형의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미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현대에 사용하고 있는 미술 용어들 중 비교적 최근에 명명되어 고유 명사가 된 것이 많다. 그런 명사들은 행위나 시도를 시작한 이(들)의 발원지를 주목한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라면 개인적인 추측은 그 단어의 시대적 의미와 기원을 혼동하지 않으려는 역사가들이 미술사를 정리하는 과정에 발생한 명명법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마티에르(matière)와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 단어를 굳이 매터리얼(material)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마티에르의 독립적인 의미’의 시효가 고흐이기 때문에 그를 경의 하거나 그 시기를 특정해서 구분하기 위함이다. 그런 단어가 또 있다. 아방 가르드(avant-garde) 또한 그러하다. 영문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above the guard(방어선 위)’ 쯤 되는 것이다. 이 어구는 프랑스 해병대(전위 부대)의 상륙작전 행위에서 시작한다. 상륙 작전은 적의 영토나 진지 등으로 돌격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 행위는 적에게 거의 대부분 노출된 상태로 진행된다. 이 행위는 미시적인 군인 한 명으로 보면 죽음이 예비된 미친 행위이지만, 거시적인 국가나 부대 전체로 보면 많은 희생을 담보한 성공 확률이 높은 행위일 수도 있다. 이 단어가 미술로 들어와 ‘아방 가르드’가 된다. 그리고 그 의미가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그만 인 행위를 지시하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세계 전쟁을 겪은 유럽의 미술가들에게 이런 용어의 혼동은 그들의 존엄을 종종 무시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패전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을 겪은 독일인 ‘한나 회흐(Joanne Höch)’가 굳이 ‘다다’라는 단어를 도입하며, 스스로를 다다이스트라고 말한 이유도 그것에 기인한 것이다. 아방 가르드라는 단어가 충분히 한나 회흐의 작업을 설명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한나 회흐의 다다이즘과 오스트리아 인과 함께 개발한 ‘포토 몽타주’를 언급할 때도 이 용어를 자제해야 하며, 독일에서 시작한 표현주의자나 신표현주의자들을 언급할 때도 '아방 가르드'를 선택하려면 고민이 필요하다. 만약 한국인이나 중국인 예술가에게 서구의 누군가가 ‘네 그림은 가미카제 같아!’라고 얘기한다면 그 말을 들은 당사자가 느낄 정서적 분노의 당연함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용어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인 이유는 현재 초등학생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회화 기법인 미술 용어의 기원이 되는 단어를 두 개나 가진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이야기를 꺼내려 하기 때문이다. 조르주 브라크는 우리나라에서 낯선 미술가이지만 현대 미술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미술가이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카소의 미술 이론적 토대에 지분이 가장 많으며, 뒤샹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훗날 절대주의와 구성주의에도 연결되어 있다. 또 세잔을 동경하며 동시대의 모네와 어울리는 인상주의자였으며, 마티스와 같이 활동한 야수주의자이기도 했었던 미술가이다. 그가 현대 미술에 찍어 놓은 왕성한 연구와 분석이 담긴 발자취는 매우 활동적이었지만, 성격은 그와 반대로 내향적이라 피카소에 가려져 주목 받지 못했다. 심지어 피카소와 같이 작업했던 기간 브라크의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피카소의 명성 대부분은 그의 것이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상주의와 야수주의를 거친 브라크의 미술은 공간을 향해 관심을 돌린다. 마티스에 대한 서술을 할 때 색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모로우에게 물려받은 마티스의 서사에 대한 내용을 길게 서술한 이유는 브라크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브라크는 마티스의 관념적인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하지만 평면회화가 평면적이지 않기를 바랐다. 평면적인 회화가 실제 공간의 다층적인 공간을 가지길 바랐다. 이런 공간의 연구에 대한 결과가 초등학교 미술 교육의 현장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의 개발이다. 의미와 서사 또는 공간을 가진 평면 한 장. 그리고 그 위에 붙는 또 다른 서사와 공간을 가진 평면 한 장. 이렇게 각각의 평면 한 장은 브라크의 그림에서 개별적인 사건 혹은 개별적인 입체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개별의 입체가 앞 뒤의 서열을 재현하면서 캔버스 전체에 수많은 입체의 서열이 존재하는 무한한 깊이의 공간이 된다. 이 얇은 낱개의 색 면은 훗날 절대주의를 상징하는 기하학적 면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색 면의 활용으로 브라크는 겹쳐진 색 면의 경계를 강조할수록 더욱더 쿵쾅거리는 공간과 입체의 서열이 발생한다는 특성을 찾아내었다. 이 경계를 활용하기 위해 자연 상태에서 공간(입체)에 의해 그림자가 발생한다는 것을 표현하기로 한다. 그리고 더 긴박한 공간 분할의 역할을 그림자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구성주의에 영향을 준다.
또 하나의 연구는 지금 우리가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콜라주(collage)’다. 브라크의 콜라주에 사용된 철사와 같은 재료는 훗날 회화 역사에서 ‘오브제(objet)’로 변모한다. 검은 철사의 직접적인 활용은 마네가 입체를 만들 때 활용했던 그림자와 다르지 않다. 그림자는 입체와 입체가 만날 때 존재한다는 속성에 브라크도 집중한 것이다. 즉 그림자 표현은 평면에서 입체적인 서열의 발생이 시작되는 중요한 단서다. 그 중요한 단서를 안료와 다른 물성을 가진 얇은 철사로 강조한 것이다. 게다가 이 철사로 만들어낸 그림자는 공간 속으로 숨지 않고 캔버스 바깥으로 돌출된다. 실제 공간에서 그림자는 튀어나온 입체 뒤로 숨는다. 하지만 브라크의 회화에서 그림자가 돌출된다는 것은 이 그림자를 만들어낸 입체가 캔버스 안으로 새겨지듯 흡수되어 깊은 공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모네가 대상에 구현한 빛의 상감처럼. 이 행위로 대상(입체)은 캔버스 안으로 깊이 박히고 그림자는 캔버스 밖으로 드러나는 낯선 효과를 실험한다. 결과적으로 이 철사 그림자에 의해 평면 캔버스에는 실재하는 여러 공간의 환영이 존재하게 된다고 가정한 것이다. 처음에 브라크는 자연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하지만 브라크의 작위적이며 적극적인 실험을 위해서는 인공 정물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자연의 형태보다 인공물 형태의 분해와 조립과정에 기하학적 형태들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제 브라크의 1910년 그림을 보자.
Georges_Braque, 1910, Portrait of a Woman, Female Figure(Torso Ženy), oil on canvas, 91x61cm
입체주의 초기의 브라크 그림은 자연색을 더 많이 활용한다. 자연색을 활용하는 이유는 자연의 풍경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브라크의 실험이 거듭될수록 무채색화 되어간다. 그리고 그림자를 발생시킬 목적의 공간(입체)의 경계인 그림자 선도 더 많이 발생한다. 그림자 선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캔버스 안에 더 많은 공간이 담긴다는 함의를 가진다. 이 그림은 1912년 제작된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의 구도와 색이 유사하다. 구도와 색만 유사한 것이 아니다. 뒤샹의 회화에서 물리적 속성을 대변하는 시간적 개념의 발생도 브라크의 작품에서 기인한다. 브라크의 분절된 공간(입체)은 각각의 시간도 지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브라크가 시간을 담은 그림을 목적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은 원래 한 쌍이기 때문이다. 브라크의 이 그림도 한순간의 목격을 캔버스에 담은 것이 아니라 여러 순간의 목격을 분절시켜 표현할 때마다 화가의 다른 상태가 자연스럽게 담기기 때문이다. 브라크의 진짜 아방 가르드 한 실험은 이제 20세기 미술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담길 수 있는 도가니로 변모하는 과정에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