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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태와 태만 Feb 17. 2023

도구. 그 좁은 문을 지나면 발견하는 생각의 길(11)

미술에 등장한 물리적 현상과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는 미술가들(6)

 뒤샹에 의해 폐기된 형의 근원에 집착하던 수 천년의 미술적 행위가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이는 평면회화에서뿐만이 아니다. 조각에서도 그러했다. 20세기 초반 미술사에 등장하는 조각가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이는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년 생, 프랑스 식 표기) 다. 아직 봉건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브랑쿠시의 유년 시절은 매우 가난했다. 정규 미술 교육은 물론 일련의 다른 정규 교육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생계에 대한 고민이 더 크기 때문이다. 18세가 되어서야 주변의 사물로 바이올린을 만든 그의 재능을 보고 후원하는 이가 생겨 그때부터 미술교육을 받게 되었다.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상위 미술교육의 기회를 얻고, 거기서 만난 해부학 교수와 연을 맺는다. 그리고 조각이 가진 한 특성인 외부를 통해 내부를 이해하려는 통찰이 중요함을 인지한다. 인체 해부를 통해 외부의 형태는 내부의 기능에 의한 작동에 의해 완성된다는 아주 중요한 통찰 말이다. 이런 내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프랑스 유학을 시작한다. 27살이 되던 해 운 좋게 로댕의 수습생이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부를 외부로 드러내는 조각적 시도가 유효함을 깨닫는다. 시기적절하게 파리에서 만난 미술가들은 모두 브랑쿠시의 조각적 관점을 환영할 만한 이들이었다. 특히 파리에서 만난 이 중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이방인이었던 피카소와의 만남이 주효했다. 그리고 당시의 평면을 벗어나 입체의 영역으로 돌진하는 회화적 시도가 가진 미술적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브랑쿠시는 자신이 가진 조각적 관점인 내부를 어떻게 외부로 드러낼지 방향을 찾아 나간다. 브랑쿠시는 회화가 자신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입체적 특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입체라는 넓은 태생적 혜택을 제거하며 회화적 시도를 반영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 생각이 조각이 폐기해야 할 ‘앙시엥 레짐’이라 판단한다. 이런 생각의 첫 시도가 바로 ‘키스(The kiss; Sărutu, 1907-08)’다.


 

The kiss; Sărutul, 1907-08



 이 입체 작품에서 회화적 시도라 느껴지는 부분은 단순하다. 당시의 회화 작품에서 유행하던 형의 소거와 회화가 입체적 시도를 할 때와 조금 다른 선의 사용이 그러하다. 형을 소거한다는 말은 당시의 회화나 입체 작업과정에서 매우 격정적인 말이지만 작업과정의 난이도가 이전보다 떨어진다. 형에 대한 집착은 그만큼의 육체적, 정서적 노동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화 작업 과정에서는 이를 대체할 색이 존재한다. 따라서 색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사용으로 이전과 다른 작업과정의 난이도를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입체 작업과정은 입체가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태생적 환경 때문에 형을 소거한다는 것은 매우 불리한 선택일 수 있다. 입체 작업이 공간에 놓여 있다는 것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분된 관찰의 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과 색이 모두 단조로워질 때 이를 대체할 형식적 재료가 회화작업에서 보다 줄어든다는 의미가 된다. 이 의미가 훗날 브랑쿠시의 조각에서 특별한 의미가 되지만, 그 시작의 선택은 망설여졌을 것이 충분하게 예상된다. 입체주의 회화에서 선은 공간의 경계를 지시하며 회화가 무한한 미시적 공간을 발생시켜 이전보다 무한하게 확장하는 공간을 발생하게 하는 시도라 설명한 바 있다. 이는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특수성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입체 작품은 평면 작품과 같은 이러한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브랑쿠시는 이러한 한계를 입체에 억지로 끼워 넣는다. 바로 입체에 단순한 면을 배치하는 행위가 그렇다. 이는 입체 작품은 원래 공간 속에 있어야 하며 감상의 다채로운 시점을 제공해야 한다는 관점이 구체제인 것처럼 배격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육면체처럼 독자적인 면의 경계를 통해 작위적인 평면을 가지게 되었고 그 면 위에 평면회화처럼 자유로운 선 드로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선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입체적 양을 거의 가공하지 않았다. 이 시도는 그 당시에 매우 파격적인 행위임을 예상할 수 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마지막 작업이 1903년이었으며 입체주의의 신호탄이 된 ‘아비뇽의 처녀들’이 무려 1907년의 작품이란 것을 환기하면 1907-8년의 브랑쿠시의 이 시도 역시 매우 획기적이었을 것이며 당시 예술가들이 환영할 조건을 갖추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도구의 형식적 발생은 지역의 기후와 매우 밀접하다. 흔한 포도나무 가지를 탄화시킨 목탄의 발생도 그러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거세게 이끈 대리석의 발생도 그러하다. 또 북유럽의 추운 기후를 뚫고 더디게 생장한 나무 가구들이 열대지방의 기후 속에서 생장한 나무로 만든 가구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이유 또한 그러하다. 수분에 취약한 재료의 특성상 더디게 생장한 나무가 훨씬 더 조밀한 조직을 가져 수분이 침투할 수 있는 공극을 줄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각의 재료에 대한 선호 역시 그러할 수밖에 없다. 재료가 가진 고유의 경도가 가장 중요하다. 다룰 수 있을 정도의 경도여야 하며 오랜 시간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지역의 기후가 조각적인 양태에 개입하기도 한다. 또 도구의 필요를 제한하기도 한다. 열대 지역인 아프리카 토템의 형태가 단순해야 할 이유는 그만큼 무른 재료이기 때문이다. 또 세밀한 노동을 수반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무른 재료는 다루기 쉽지만 또 쉽게 손상되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경도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작품의 표면적이 넓어야 했다. 철기 문화권의 서구 유럽이 중남미를 수탈할 때 그들이 여전히 청동기 문화권에 있었던 것도 그들의 환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렇게 발생한 아프리카의 도상은 유럽인들에게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리고 브랑쿠시는 이런 이질감을 조각의 재료에 심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브랑쿠시의 조각은 물성을 획득한다. 형이 소거되고 남은 재료 특유의 물성. 그리고 이 물성을 고스란히 남기는 것 역시 브랑쿠시가 가진 조각적 관점인 내부를 드러내는 것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런 초기 작품은 이러한 브랑쿠시의 속내가 작동하며 선의 활용을 필요로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브랑쿠시는 형을 단순화시키고 남은 재료의 물성에 더 주목하게 된다. 브랑쿠시의 초기 조각이 완벽하게 구체제를 배격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로뎅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일명 ‘로뎅의 무용수(로뎅의 문하생)들’을 바라보며 근대조각의 관습에서 벗어날 시도를 했던 것은 틀림이 없다. 생각이 아직 정비되지는 않았지만 로뎅의 흙이 로뎅의 손에서부터 직접 출발하지 않고 여러 다른 ‘로뎅의 손’들을 거쳐 흙 그대로 남지 않고 석고나 청동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각의 재료를 고심한다. 즉 자신의 출생지에서부터 시작한 루마니아 전통 나무 조각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기도 하며, 로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최초의 재료가 최후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직조의 방법을 선택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시대의 조각 관습과 결별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관점이 하나씩 정리되며 브랑쿠시의 조각은 변모한다.


Sleeping Muse, 1910

 

Prometheus, 1911

 


 바로 대리석으로 조각된 1910년의 ‘Sleeping Muse’를 필두로 1911년의 ‘Prometheus’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 시작일 것이다. 이렇게 브랑쿠시는 석조작업을 맨 앞으로 내세워 조각의 변모한 시대를 견인한다. 그것도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이 되는 재료인 돌을 활용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형을 소거하며, 로뎅의 재료와도 다르고 제작의 과정과 방법도 다른 재료를 선택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작업의 재료를 달리하며 브랑쿠시는 형을 소거하며 생기는 조각의 빈자리에 ‘물성’을 채워 넣는다.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법은 작품의 재료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과정과 같다. 이 과정은 정교한 꼭짓점을 가진 형을 드러내는 것만큼 지난하다. 형을 소거한 풍선 같은 유체의 대리석은 자연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난 돌에 정을 대고 최대한 많은 횟수의 망치질을 해야 한다. 또 그렇게 최대한 정교해진 유체의 형태에 거친 사포로부터 시작해 점점 더 고운 사포로 다듬어야 브랑쿠시가 원하는 물성이 투명하게 드러 난다. 이 과정은 수도자의 수도 과정과 비슷하다. 이 때부터 브랑쿠시는 구도자처럼 자신만의 흰 가운과 단화를 신고 해부학 의사처럼 작업에 몰두한다. 마치 구도자처럼 강박적 행위를 추구하듯 이 과정에 충실한다. 이 과정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브랑쿠시의 형을 소거한 돌에 들러붙는다. 이러한 형태의 양상은 뒤샹과 만난 후 더욱 진화하기 시작한다. 뒤샹이 가진 산업화의 결과물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보태 브랑쿠시는 자기 복제를 시도하며 자신의 작품을 산업화의 형식에 던져 넣기도 한다. 또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최후의 내부’ 형태라 여겨 1928년 이후에는 더 이상의 형태를 양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산업의 최첨단에 있던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이 등장하자 이 재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말이다. 대리석 작업을 브론즈화 시키거나(Sleeping Muse), 그 유명한 ‘공간 속의 새(L'Oiseau dans l'espace; Bird in space)”를 45.7m로 만들기 위해 건축가에게 위탁하는 과정이 ‘그런 예’ 들이다.


L'Oiseau dans l'espace; Bird in space, 1927


 혹자는 브랑쿠시의 형태가 남성과 여성을 모두 지시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하다 하고, 작품의 형태와 그것을 비추는 좌대를 통해 이데아를 실현했기에 완벽하다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형태가 진보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하지만 결과적 형태의 완성도를 떠나 이 글에서 브랑쿠시의 조각이 얼마나 시대에 잘 부응했는지 고민하고 싶었다. 로뎅이 질감을 고민하며 생동감을 조각에 부여했다면 이제 그것을 넘어 물성을 투명하게 강조해 조각적 대상의 내부를 외형화하는 데까지 조각은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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