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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29. 2021

가끔 엄마도 엄마 하면서 운다

이상한 동창회


올해 들어 다섯 번째 부고였다.


스마트폰 알람이 울려서 광고성 스팸인 줄 알았는데 부고문자였다. 은주는 상주이름을 되뇌어보았다.

박. 민. 경.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턱 언저리가 아파왔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간간히 부고소식이 들려왔지만 올해는 유난했다. 그래도 세 번째까지는 대학선배와 예전 직장상사가 보내온 거였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선배나 상사 모두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였기에 이상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봄이 깊어진 어느 날, 해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해수는 평생지기라고 부를 만큼 어릴 적부터 은주의 절친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친분의 깊이를 따지지 않고 경조사를 챙겨왔던 은주는 그간 자신이 했던 축하나 애도가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고 죽음을 목도한 사람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오년 전쯤인가? 해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결이 다른 감정이었다.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다. 어쩌면 고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는, 그 명료한 사실이 더 슬프고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은주는 연락처 목록을 훑어보았다. 민경과 친했던 친구가 누구였더라? 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은주는 민경과 어울리는 친구가 달랐다. 1학년 때는 꽤 친했던 것 같은데 민경이 미술을 시작하면서 문과반과 예체능반으로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민경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이 반과 저 반을 넘나들었다. 가장 많이 마주쳤던 곳은 매점이었을 것이다. 은주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말수가 적어졌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도 심드렁했고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쉽게 피로해졌다. 혼자 음악을 듣고 혼자 도시락을 먹고 혼자 책상에 엎드려있는 게 편했다.

그때도 민경은 한결같이 밝은 얼굴로 은주를 대했다. 항상 주저하고 망설이는 은주와는 달리 민경은 누구에게나 스스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친구도 있었다. 딱히 잘못이 있다기보다 오지랖이 넓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은주는 거기에 맞장구 치진 않았지만 딱히 변호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난 민경에게 친구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민경과 멀어진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입시준비와 대학생활, 직장업무에 시달리고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잠시 서로를 잊고 지냈을 뿐이었다.


민경을 다시 만난 건 H호텔 결혼식장이었다. 신부는 은주의 대학후배였고 신랑은 민경의 직장동료였다. 둘은 각자의 하객으로 만난 것에 대해 신기해하며 양손을 붙잡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어머! 세상 좁다, 얘!”, “어쩜 넌 예전 그대로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주변 시선도 아랑곳없이. 깔깔, 둘은 열일곱 살 때처럼 웃었다.

삶은 죽지 않는다. 지나간 시절이라 해도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토록 세월 속에 잠복해 있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 정체를 드러내는 걸 보면, 그랬다.

은주와 민경은 명함을 주고받았고 각자의 결혼식에 참석했으며 얼마간 연락을 주고받다가 또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번에는 맞벌이와 육아 때문인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이유였다. 그래도 연락처는 갖고 있었구나, 라고 은주는 생각했다.


은주는 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경과 친하진 않았지만 동창인데다가 은주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슴 떨리는 일이 있을 적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민경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대뜸 말을 하니 해수는 “어머!”하고 놀랐다가 “왜?”하고 물었다. “그것까진 모르겠고 부고 문자를 받았어.”라고 하자 해주는 “음”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제야 은주는 잔잔해진 슬픔에 파장을 일으킨 건 아닌지 걱정 되었다. 괜찮아? 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웠다. 괜찮을 리가 없을 테니.

49재를 잘 치렀냐는 연락에 해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질 않는다고. 입관할 때 엄마 모습과 화장한 유골 색깔, 납골함 온도 같은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다만 계절이 바꿨다는 건 알 수 있겠다고. 그땐 벚꽃잎이 흩날렸는데 어느새 여름비가 쏟아지더라.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 해수의 목소리가 꿈을 꾸듯 몽롱했다.


어디서든 살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허허롭게 웃던 해수는 여전히 애도의 시간을 앓는 듯했다. 어디에도 뿌리 내릴 수 없을 것 같은 상실과 무엇에 상처받더라도 지금보다는 덜 외로울 것 같은, 그 부유하는 마음. 왜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더라고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심연까지는 알 수 없더라도.


은주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데 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고 문자 서비스를 이용했나보네. 상조회사에서도 해주는데 직접 상대 전화번호를 고르지 않으면 저장된 사람들 모두에게 문자가 가더라. 별로 친하지 않고 연락도 없던 사람에게 부고 문자를 받게 되면 당황스럽지.” 현실적인 의견이었다. 사내 게시판에 부고알림이 뜨면 짜증부터 났었으니까. 부서별로 조의금을 걷거나 조문을 종용할 때마다 상사의 갑질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십수 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지금도 카카오톡 단톡방에 부고가 뜨면 고민되긴 하지만 은주는 조문을 가지 못하면 조의금이라도 보내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계좌번호를 모르더라도 카카오페이로 보내면 되니 편리해지긴 했다.     

“그래서 넌 언제 갈 거야?” 해수가 물었다. “오늘 저녁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아.” 은주가 대답했다. 해수는 “난 오늘은 힘들 것 같아. 애들 학원 때문에.” 하면서 끝말을 흐렸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은주는 조의금봉투를 들고 빈소 안내가 떠있는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향년 78세

은주는 진저리치듯 몸을 잘게 떨었다. 언제부터인가 고인 나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해도 여든을 넘어가니 흔들다리 건너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위태롭다는 아버지 말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민경이 어머니는 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민경과 사진 찍던 모습이 떠올라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빈소가 있는 지하로 내려갈수록 은주는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수십 번은 족히 왔을 테지만 매번 처음처럼 긴장 됐다. 창문이 없어서일까? 장례식장은 공기의 질감부터 달랐다. 복도를 떠도는 향내음과 푸석한 얼굴의 상주들, 공명처럼 울리는 소리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허둥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은주는 조문만 하고 갈 참이었다. 혼자이기도 했고 어쩐지 민경을 오래 볼 자신이 없었다.


조객록에 서명을하고 빈소에 들어서자 접객실에 앉아있던 민경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상복 입은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어떡해.” 민경이 은주의 양손을 맞잡았다. 웨딩홀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와는 다른 모양새였다. 은주는 흑, 하고 울음을 흘렸다. 누르고 눌렀지만 차가운 체온과 마른 감촉이 전해지는 순간 봉인이 느슨해지면서 슬픔이 조금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은주는 재단 앞으로 걸어가 향을 피우고 영정사진을 향해 국화를 올려놓았다. 자꾸만 손이 떨렸다. 여러 명이 왔다면 은주는 뒤로 물러나 있었을 것이다. 조상을 마치고 상주와 맞절을 했다. 민경이 남편은 결혼식에서 본 이후 처음이었다. 오빠와 동생이 눈빛으로 은주를 알은 체했다. 연년생인데다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 안면이 익숙한 터였다. 그들의 미소를 보고서야 은주는 한숨을 돌렸다.

빈소를 나와 주춤주춤 가방을 집어 들려는데 민경이 팔짱을 꼈다. “배고프지? 밥 먹고 가.”, “어? 아니, 괜찮아.” 은주가 손사래 치자 “그럼 커피라도 마셔. 저기 애들 있어.” 하면서 팔짱을 꼈다.


민경이 데려간 테이블에 동창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은 금방 알아봤지만 한 명은 이름이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모두 민경과 친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은주도 친구들 대화에 빠져들었다. 십대 시절을 공유한 만큼 접점도 많았고 어떤 사람인지 탐색할 필요도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고향 같은 친구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창들이 한 명, 두 명 더 늘어났고 그때마다 “어쩜 넌 예전 그대로니?”라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오갔다. 그럴 리 없다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했다. 살이 찌고 주름과 흰 머리카락이 늘고 성격도 좀 변했겠지만 그 시절에 대한 마음만은 예전 그대로일 것이다.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친구도 계속 보고 있으니 매직아이처럼 그 시절, 그 모습, 그 눈빛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친구들은 해수에 관해서도 물었다. 은주는 그냥 잘 있다고 눙치려다가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연락 좀 하지, 기집애. 힘들었겠네.”, “요즘 우리는 장례식장에서만 만나는 구나.”, “그래도 옛 친구가 좋다.”, “넌 어떻게 사니?” 그런 말들이 참 쓸쓸하고 서글펐다.

한 명, 두 명 자리를 뜨면서 “다음에는 좋은 일로 만나자.”고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여전히 숨 가쁜 일상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 후 민경에게 전화가 왔다. 삼우제까지 잘 마쳤고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했다고. 또 이런 말도 했다. 밤늦게 해수가 다녀갔는데 상주보다 더 울더라고. 그게 참 마음이 아팠고 고마웠다면서 민경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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