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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Oct 08. 2021

롤랑바르트, <애도일기>

<슬픔은 다른 곳에 있다>에 부쳐

모든 이별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영영 보지 못 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별’이라고 명명하지 않는다. 사랑이 미움이나 분노로 바뀌어도 흔적은 남는다. 이별은 새로운 사랑의 에너지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별은 그 자체로 남아 사랑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한다. 가장 뜨겁고 가장 치열했던 순간. 그곳에서 한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사랑이 깊은 채로 헤어졌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사별의 경우는 어떠한가. 잊어야하는 헤어짐이 아니라 간직해야할 기억으므로, 그렇게 살려내야할 수밖에 없으므로, 슬픔은 그동안 경험했던 이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을 차츰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1978. 3. 20)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문학가 롤랑바르트는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부터 <애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폐결핵으로 여러 번 병원 신세를 졌던 바르트는 평생을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는데 그의 삶과 작품활동이 어머니 죽음 전후로 극명하게 나눠질만큼 그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노트를 사등분해서 쪽지에 일기를 써 나갔던 바르트는 사랑을 잃은 주체로써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1977. 11. 9)’의 상태를 상실과 고통의 언어로 기록한다. 그것은 대체할 수 없는 슬픔이므로… 그 슬픔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메모형식의 짤막한 일기보다 더 넓게 차지하고 있는 여백에 시선이 머물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애도: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977. 12. 8)

사랑이 그런 것처럼 애도의 슬픔에게도 세상은 비현실적이고 귀찮은 것일 뿐이다. 나는 세상을 거부하면서,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세상이 나에게 주장하는 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 나의 슬픔을, 나의 삭막함을, 나의 무너진 마음을, 나의 날카로운 신경을 세상은 자꾸만 심해지게 한다. 세상이 나를 점점 더 기운 빠지게 만든다.
(1978. 5. 18)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978. 7. 18)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은 급성의 나르시시즘이 뒤를 잇는다: 일단은 병으로부터, 간호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차츰 빛이 바래고, 절망감이 점점 확산되다가, 나르시시즘은 사라지고 가엾는 에고이즘, 너그러움이 없어진 에고이즘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78. 8. 1)


바르트는 자신의 글이 정신분석학적이거나 문학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애도의 감정을 분석하지 않고 그 어떤 단계도 거치지 않은 채 오직 부재의 고통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1977. 11. 30) 라고 말한다. 가끔은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을 탓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으로 여겨졌던 죽음이 확신으로, 더 나아가 즉물적 실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슬픔을 받아들이려고도 혹은 “정지 상태(정체, 막힘, 똑같은 것의 반복적인 회귀)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유도하여 옮겨가”(1978. 6. 13)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살기 위하여 애를 쓰면 쓸수록 삶은 공허해지고, 마음은 자주 허물어졌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재의 고통은 망각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애도하던 슬픔은 두려움과 비애로움으로, 때론 무기력과 허무로 변하고 뒤엉킬 뿐이었다.  


두려움: 내 마음의 중심에는 두려움이 있다고, 나는 늘 말하고 또 써왔었다. 마망이 죽기 전에 이 두려움은 그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잃어버린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여전히 두려워한다. 그것도 전보다 더 많이. 그러니까 두려움에 대해서 나는 전보다 더 면역력이 약해졌다 (뒤로 물러나려는 생각, 은퇴할 생각을 하는 것도 이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피난처를 찾기 때문이다)
(1978. 10. 6)

이 애도의 메모들을 기록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슬픔. 이 현상은 피할 수 없는 변화일까, 망각의 과정일까? (‘병’이 지나가는 걸까?) 과연 그런 걸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의 텅 빈 바다 위에 떠 있다- 그 바다의 버려진 해안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 나는 더 글을 쓸 수가 없다.
(1978. 11. 4)

1년 반 동안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아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 그동안 나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임무들을 미루기만 하면서, 꼼짝도 않고 아무런 변화도 일이키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슬픔의 자기순환적인 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한 권의 책을 씀으로써 하나의 작별을 마무리짓곤 했었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집요함, 은밀함.
(1979. 3. 15)


일기는 “슬프기만 한 수많은 아침들…”(1979. 9. 15.)이라는 한 줄로 끝이 난다. 하지만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말줄임표 안에 얼마나 숱은 혼란과 번뇌와 고독이 담겨져있는지… 하지만 애초에 바르트가 밝혔듯이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1977. 10. 27)이다.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탓일까? 작은 트럭이 치이는 사고를 당한 바르트는 병원치료를 거부한 채로 1980년 3월 26일에 생을 마감한다. 마치 죽음을 껴안듯이 말이다.  


모든 이별은 유일하고 불완전한 슬픔의 영역이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소용돌이 칠 때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길 바라며…


오늘도 살아내기를.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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