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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Aug 07. 2021

왜 K-장녀인가

<장녀 팔자는 따로 있나>에 부쳐

자녀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자녀 양육만큼 부양이 필요한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어렵고 힘들고 슬픈 일일 것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이 중시되는 시대로 변화했지만 ‘자식  도리 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무를 떠나 본능과도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쉽지 않은, 어쩔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빠른 보폭으로 초고령사회로 다가서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도 반드시 생각해봐야  문제이다.  


일본은 이미 2010년부터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노인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 쏟아져 나왔으며 그중 <개호소설>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개호’란 돌봄노동, 즉 간병을 뜻하는 일본어로 비단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대한 개인적인 고충에 그치지 않고 비혼, 이혼에 따른 1인 가구의 증가, 복지 사각지대, 노인사기, 고독사, 빈곤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비판적으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020년 한국에 소개된 시노다 세츠코의 <장녀들>은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장녀 이야기를 세 편의 중편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장녀들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시에 차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원망하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로 묘사된다. 그래서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한다는 채무감과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 돌봄의 부담과 감정착취를 서슴치 않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해방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나오미가 생각지 못한 것은 어머니가 자립하지 않고 늙어갔다는 점이다. 나오미는 어머니가 나이 아흔에 가까워져도 마음만은 정정하게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고 바자회나 자선 콘서트에 참여 하느라 분주한 지인의 어머니들처럼 늙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친구 같은 어머니에게 진짜 친구는 없었다. 늙고 병든 어머니는 나오미의 딸이 되었고, 모녀 관계가 역전된 상태에서 더더욱 친구 같은 관계를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19p)

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울어주면 된다. 싫어하면서도 돌본 사람과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과 동정을 보내주다가 죽고 나면 펑펑 울어줄 사람, 노인에게는 분명 그 둘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24p)

중편소설, <집 지키는 딸> 중에서


과연 장녀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남 또는 며느리 몫이었던 간병이 이제는 딸에게 돌아가고 있다. ‘남아선호사상’이나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은 구시대 유물이 되었고 부모의 선택이 점차 ‘어려운 며느리’보다 ‘친구 같은 딸’에게 향한다. 권위적이지 않고 살뜰하게 들리는 이 말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K-장녀’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비혼이나 이혼 같은 1인 가구를 앞세웠던 일본과는 다르게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를 그 특징으로 꼽고 있다. 어쩌면 7, 80년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라난 모든 세대들에게 통용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K-장녀’는 일종의 상징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태어나 높은 학력과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부모시대 만큼 안정된 노후를 장담할 수 없는 불안이나 부양으로 흔들리는 경제적, 육체적 부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마나카 아키의 장편소설 <로스트 케어>에서는 이러한 간병과 계층의 문제를 좀 더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호 대상 노인 연쇄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일본의 개호보험법과 콤슨 사태 등 실제 사건과 여러 사례로 증명된 현실을 모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섬뜩함을 더한다.

또한 인간의 선악과 ‘존엄’이라는 외면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 존엄이 훼손되는 상태가 된다면” (340p) 당신은 상상해본 적 있는가? 한국에서도 간병보험이나 장례서비스는 물론 유료 실버타운과 같은 노인 관련 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 체계나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서는 끼니를 걱정하는 노인들이 있고 무료 급식이나 간병을 돕는 직원의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노후를 낭만적으로 즐길 수는 없을까? “돈만 있으면 유료 실버타운이 최고다”라고 말하던 사쿠마는 노인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사기를 치면서도 노인들의 죽은 돈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라 생각한다.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건, 그래도 돈인가? 선뜻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즐겁다고 할 수야 없었지만 일종의 충족감을 느꼈다. 평일에는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스낵바에서 술꾼들을 상대했다. 가끔 쉬는 날이면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소타와 함께 주변을 산책했다. 요코는 삭신이 쑤셨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서 가족을 위해 애쓰는 자기 모습에 묘한 기쁨을 느꼈다. 끈, 가족이라는 끈. 그런 아름다운 표현이 요코를 움직이는 듯했다. (36p)

장편소설, <로스트 케어> 중에서


분명 간병은 힘든 일이다. 개인이나 가족이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가 앞장서서 그것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하고 실천하고 법제화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에 앞서 힘이 되는 말 한마디나 위로도 괜찮다. 요코처럼… 누군가 가족을 위해 애 쓰고 있다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고단한 일상도 효도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질 수 있으니까. 부모의 노환으로 더욱 결속하는 가족이 있는 반면 불필요한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유산 갈등을 겪는가족도 적지 않다.


자녀로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건 또 다른 빛깔의 경험일 것이다. 마음 졸이고 눈물 흘릴 일이 훨씬 더 많겠지만 따뜻한 격려와 응원으로 외롭지 않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기댄다면 그 시간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 믿는다. 그보다 더 값진 유산이 있을까? 고맙다는 말… 나는 그 말이 참 고맙고 애틋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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