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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Feb 12. 2024

Ep 03 인생을 속도가 아닌 방향으로 바라보기

god-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돌아보면 너무나 아름다웠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인데 (여기서 나이가 나오네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2년을 되돌아보면 이 가삿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수많은 일들과 인연들이 웅이와 나의 인생에 흘러들어온 첫 출발점이 된 해였다. 다가올 2023년의 불꽃이 피어날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장작들을 차곡차곡 모으듯 이런저런 도전과 사건 사고에 더해 부가적으로 잇따라오는 시련과 고민 그리고 웃음, 기쁨, 감동을 다양하게 맛보았다.


2022년은 한 해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보냈고, 그것도 한 국가가 아닌 9개국을 돌아다녔다. 적은 짐도 아니었기에 잦은 이동이 마냥 신나고 흥분되는 여정은 아니었다. 더구나 보통 사람들에 비해 금방 피로해지고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내 몸을 이끌고 이동한다는 건 그만큼 내 몸에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던 2022년 장작의 결실은 2023년으로 이어져 우리만의 작은 불씨를 태워볼 수 있게 해 주었다. 2023년은 ‘불태운’ 한해였다고 말하기에는 우여곡절 역시 많았지만, 우리 둘만이 피워낼 수 있는 불꽃을 본 한 해임에는 확실하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세월이 흘러 2년이 아닌 5년, 10년 뒤에 돌아보아도 2022년은 우리 인생의 ‘하이라이트’ 같은 해로 남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해에 엄청난 성공을 이뤘다거나, 돈을 엄청 벌었다거나 하는 의미의 하이라이트는 아니다. 그 해의 우리는 다양한 사건과 경험들 속에서 매 순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고 그 순간마다 서로의 다름을 맞춰가는 많은 논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들 속에서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합의점을 찾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서로를 더 알게 되고 이해하며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준 해였다.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2024년을 이야기하자면 이 모든 과정들의 선택과 경험으로 우리는 현재 LA의 상징인 야자수들이 창가 너머로 보이는 우리만의 보금자리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와서 잘 살고 있다. 누군가의 물질적인 도움이나 조언 없이 웅이와 나 둘이서 만들어온 여정이다. (물론 어렵고 힘든 상황일 때마다 위로가 되고 도움을 주는 친구와 가족들이 있었지만) 두서없이 마냥 달려오진 않았던 거 같다. 어려웠던 상황의 환경에서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많은 선택지들이 놓여 있었고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지방의 월세집에서 살고 있던 우리가 어떻게 LA 시내 한복판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지 가끔은 현실성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다 연고도 없는 미국이란 땅덩어리에서 둘이서 살게 되었을까?



2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꺼내 곱씹어 본다.


2022년은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갈 인생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가 함께이지 않고, 각자 싱글 라이프를 살아왔을 때도 각자가 한 번쯤은 꿈꿔 왔던 일이었다. 그 일은 바로 외국에서 ‘살기’였다.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외국에서 살아온 각자의 인생이 그전에도 있었지만 우리 ‘둘이서 함께 외국에서 살기’는 우리 만남 초기에는 아예 상상도 못 했던 선택지였다. 그렇지만 그 기회를 현실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에 따른 시간과 에너지, 금전적인 비용도 모두 제 각기 다른 선택지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 이 기회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의 길로 좁혀졌다.



첫 번째 방법은, 최소 1년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언젠가 해결될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나태로운 맘으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이 방법으로 해결되었을 경우 장기적으로는 추후에 많은 선택사항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져갈 수 없다는 점이 동시에 존재했다. 유유자적 순항하는 돛단배에 몸을 맡기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비교적 안정적인 선택지였다.


두 번째 방법은, 베팅이었다. 우리가 가진 실력을 입증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시간을 6개월 혹은 그 미만으로 확 단축시킬 수 있는 길이었다. 실력을 입증받는 길이 당연히 쉽지는 않고, 이 과정이 1년 이상으로 길어질 수도 있기에 첫 번째 방법을 택하는 것보다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 목적지에 도달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적, 금전적으로 많은 노력이 들어갔지만 성과는 그에 못 미치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을 경우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원하는 드림라인에 더 빨리 들어갈 수 있고, 추후 미래에 펼쳐지는 많은 상황들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가 갖고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길이었다. 정말 어떻게 길이 펼쳐질지 모를 완벽한 베팅 같은 선택지였다.



피상적으로 보면 안전한 직장생활을 택할 것인가, 도전적인 사업을 벌여볼 것인가 처럼 단순한 문제였다. 그렇지만 이 방법들의 깊은 고민 이면은 삶의 주도권을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짙고 무거운 주제였다.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카페라테를 마실까. 버스를 타고 갈까 택시를 타고 갈까, 꽃을 선물할까 캔들을 선물할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의 상황에 놓이고 길게는 한 순간의 선택이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순간들을 많이 겪는다.


그때 이 선택을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때 이 사람 말고 저 사람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은 아무리 인생이 좋게 풀려나가도 한 번쯤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의문점들이다.


그때의 웅이와 나는 돛단배에 몸을 맡겼을까? 아님 우리들의 찰나의 젊음을 걸고 베팅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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