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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Sep 01. 2024

새해


확실히 경사진  능선쪽은 눈이 많이 쌓여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급경사도  아니다.


아마 양지라서 해빛을 많이받아 녹았나보다.


눈 깊이가 무릎 반정도다.


그닥 높지않은 경사를 따라올라 산등성이까지 올라서니 쭉~뻗은 평야지대가 나졌다.


금혁이 아빠는 잠깐 멈춰서 앞을 주시하더니 다시 뒤돌아와서 우리가 올라온 아래쪽을 내려다 보는것이였다.


" 아무래도 발자국땜에 안되겠다. 갈라져서 가자.  나는 따로 가고 너는 꼬매(꼬맹이)를 데리구, 여자둘은 따로 저 앞에 보이는 숲이 있지?, 거기까지만 서로 갈라져 간다. 거기서  만나서 다시 같이 가자." 그는 나와 일행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우리 발자국을 따라 추격해올 경우 혼돈을 주기 위해서였다.


역시 소부대(특수부대) 출신이 다르다.


우리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금혁이 아빠 지시대로 여자애들은 직진, 나와 준영이는 오른쪽으로 에돌아 가고 금혁이 아빠는 왼쪽으로 돌아 한 100여 미터 앞에 보이는 큰 나무숲으로 다시 눈길을 헤쳐갔다.


준영이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거의 내 발자국을 따라 뒤축을 밟을 정도로 따라 붙헜다.


한참을 서로 갈라져서 마주보이는 숲에 도착하니 오히려 여자애들인 은심이와 은별이가 먼저 와있었고  나랑 준영이가 그다음,금혁이아빠는 맨 나중에야 도착했다.


다시만난 우리는 거기서  만약에 있을 추격을 피해 경사지와 능선, 골짜기를 번갈아 타고, 또 오르고 내리며 한시간 넘게 어딘지 모를 중국땅 깊은 산속으로 눈길을 헤치며 가고 또 갔다.


 씩~씩거리며 몰아쉰 입김때문에 일행 모두의 얼굴은 온통 성에와 고드름 범벅이되어버렸다.


그렇게 점점 국경과 멀리 들어와 아름드리 이깔나무, 분비나무, 가분비나무, 자작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깊고 어두운 숲이시작되는 곳, 끝없는 백두의 밀림속으로 깊이,깊이 들어왔다.


얼마나 멀리 도망쳐 왔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서야 금혁이 아빠는 앞에서 씽~씽 눈길을 헤치며 걷던 걸음을 조금씩 늦췄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멀어지지 않으려고 바싹 따랐다.


이제는 웬만큼 추격을 피했다고 생각됬을즈음 금혁이 아빠는 한숨 쉬자고 했다.


키 낮은 잡관목 숲의 눈을 파헤치고 그안에 여럿이 앉을만하게 두께가 가는 나무들을 발로 밀어 넘기고 짓밟아 대충 자리를 만들더니 은심이와 은별이보고 그 위에 먼저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래도 여자애들이라 차가운 눈위에 그냥 앉히는것이 맘에 걸렸어나보다.


우리가 다 앉자마자 금혁이 아빠는 무릎을 세워앉으며


" 쉿~조용해라.  함 들어보자."


하고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모두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나 말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기울였다.


십여분 넘게 그러구 있어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첨부터 아예 추격 안하는걸 노루 제 방귀에 놀라 여기까지 정신없이 눈길을 헤집고 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금혁이아빠를 비롯해 일행 모두가 같은 생각이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좀 더 시간이 흘렀으나 우리를 추격해오는 낌새는 없는것 같았다.


아님 쫓아오다가 도중에 포기했을수도 있다.


워낙 먼거리를 도망쳐 온데다가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먹이를 찾는 산짐승들이 무리지어 파헤쳐 놓았는지 눈이 거의 없고 낙엽만 쌓여있는곳도 여러군데 지나다보니 발자국도 생겼다 없어졌다 했을것이기때문이였다.


어찌됬든 아직은 안전했다.


나는 그제서야 숨이 턱에 닿을듯 줄행랑을 치느라 정신없던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땅으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새해다.


새해 첫날밤을 어딘지도 모를 타국의 수림속에서 경찰의 추격을 피해 추위에 떨며 숨어있어야 되다니...


그때까지만해도 북한은 음력설보다 양력설을 명절로

쇠고있었다.


날이 밝으면 직장,기업소 또는 조직별로 혜산시 시내 중심가에 있는 보천보전투승리 기념탑에 가서 참배를

할것이다.


그리고는 맛집이나 식당이 거의 없다시피한 북한 상황

때문에 친구들끼리나 동료들끼리 집집마다 돌며 술한잔씩도 걸치고 빠듯한 식량을 줄이고 털어 성의껏 준비한 명절음식도 먹으며 서로,서로 새해를 축하해주며 설을 즐길것이다.


 우리는  금혁이아빠 의견대로  명절 전날밤이라 차례상을 비롯해 명절준비땜에 길에 다니는 사람도 적고 우리쪽 국경경비가 소흘한 틈을 이용해 도강을 했던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룻밤만에 해를 넘기며 수십리길을 걸어 도강을 하고 또 공안에 쫓겨 어딘지도 모를 중국땅 깊은 산속에 들어와있는것이다.


 때로는 허리까지 치는 눈길을 헤치며 있는힘을 다해 도망쳐 오다보니 일행모두는 이미 기운들이 빠져서 마치 데쳐놓은 시래기같이  되였다.


나는  떠나온 우리집 따뜻한 아래목이 그리워졌다.


눈썹엔 하얗게 성에가 끼여 에스키모인같았고 눈초리에 얼어붙은 고드름은 눈을 깜빡일때마다 서로 아래,위에서 들어붙어 줄다리기를 하고있었다.


추격은 피했을지 모르나 이번엔 백두산의 매서운 추위가 찾아들었다.


 시간이 한 삼십분쯤 지나니 온 몸의 땀이 식으면서 선뜩~선뜩 얼음같은 냉기가 온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12월의 백두산  한낮의 기온은 보통 영하20°~30°다.


더우기 지금은 제일 추운 새벽시간이다.


옆에서 준영이는 벌써 덜~덜~덜 이발 마주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너네 여기 잠깐 있어라. 내 저기 언덕에  올라가서 다시한번 보구 올게."


금혁이아빠는 우리가 조금전에 지나 내려온 골짜기 능선을따라 다시 올라갔다가 금방 다시 내려왔다.


" 쫓아오는것 같진않다. 쪼꼼만 더 쉬면서 동태를 보구 움직이자. 가만히 있음 추워서 안된다."


그리고는 쓰고있던 목도리를 벗어 성에랑 얼음조각들을 무릎에 대고 탁~탁 털어 추위에 쪼그리고 앉아 오돌,오돌 떨고있는 준영이한테 내미는것이였다.


" 이거 써라,"


준영이는 얼떨결에 목도리를 받아들고 바로 쓰지는 못하고


" 일없슴다. 삼촌은 안 춥습니까?"


하며 미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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