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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Aug 29. 2024

검문


그러니 아까 대문을 일부러 활짝 열어 놓은건 차가 나가기 위해서였다.


" 또 한대 피까? "


금혁이 아빠는 자기집 안방에라도 들어온 사람처럼 편안한 표정에 농조가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하며 상의 안주머니 깊숙히 찔러넣었던 천지담배갑을 또 꺼내들었다.


뚜껑을 젖히고 한대 꺼내 이번엔 자기입에 먼저 물고난 다음에 나한테 한대 내미는 것이였다.


그리고는 댐배갑을 다시 밀어넣고 손을 더듬어 라이타를 꺼내들며 차창가에 대고 쳐들어 보면서


" 씨베, 돌이 다슬어서 켜지겠는지 모르겠다,"


라고 투덜대며 칙~칙 돌려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꽃이 겨우 보일듯 말듯 하는 정도의 화력으로는 금혁이 아빠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새어나오는 가스에 불길이  일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보다 불과 한시간반 전에 사생결단 하고 강을 넘어 중국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믿기지가 않았고 꿈만같아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이런 맘인데 여자애들인 은심이와 은별이, 그리고 어린 준영이의 맘은 또 어떻겠는가.


" 어~우, 안되겠다.신경(짜증)이난다. 로반이 나올때까지 기다려야지 "


끝내 불을 붙히지 못하고 투덜대며 금혁이 아빠가 하는 말이다.


불켜진 집안으로 들어갔던 로반인지 하는 조선족 사람은 우리가 걸어오면서 긴장되어 흘린 등뒤의 땀이 다 식어 으시시한 냉기가 찾아들때까지도 안 나오다가 한 오분정도 더 지나서야 문을 열고 나왔는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두사람이였다.


다른사람은 키도 조선족보다 훨씬 더 작고 체격도 왜소한 사람이였다.


차 앞으로 곧장 다가온 두사람은 서로 갈라지더니 작은 사람이 운전석 쪽으로 오고 조선족은 조수석쪽으로 왔다.


아마 작은 사람이 차 주인인것 같았다.


먼저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앉은 그는 주머니에서 키를꺼내 구멍에 맞춰 꽂고 우리쪽을 향해 한번 피끗 돌아보고는 시동을 걸었다.


뒤따라 올라온 조선족사람도 우람한 몸통을  끙~끙 거리며 조수석으로 밀어넣어 앉더니 차문을 쾅 닫고 중국말로 " 조~우바 " 라고 하는것이였다.


중국말은 몰라도 출발하자는 뜻 같았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차는 움직였다. 대문을 열어놓은채로 그냥 가도되나 싶었는데 차가 문밖으로 나와 커브를 돌아 큰길을 향해 나올때 뒤돌아보니 또 한사람이 대문을 닫고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봐서 그런지 그도 여자가 아닌 남자 같았다.


" 로반, 라이타 있음 좀 주오."


금혁이 아빠가 조선족 사람을 향해 말했다.


로반이라 불리운 사람은 뒤돌아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금속으로된 라이타를 꺼내 어께너머로 건넸다.


금혁이 아빠는   꽤 고급스러워보이는 그의 라이타를 받아들고 잠깐 살펴보다가 뚜껑을 딸~깍 열어 불을켜고 담배에 붙혔다.


그리고  라이타를 다시 돌려준 금혁이 아빠는 아까 강건너에서 처럼 길게 두세모금 빨고는 또 나한테 담배대를 내밀었다.


나는 피우고 싶지 않다는 표시로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머리를 저었다.


로반인지 하는 사람  눈치도 보였고 사방이 막힌 차안엔 벌써 금혁이 아빠가 내뿜은 담배연기가 뽀얗게 차기 시작했기때문이였다.


라이타를 다시 받아든 조선족은 운전하고 있는 기사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데 중국어라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둘은 뒤좌석에 꿔온 보리자루 처럼 쪼그리고 앉아 말한마디 없이 숨죽이고 있는  우리 일행은 의식조차 하지 않는듯 열심히 중국말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차는 우리가 몇시간을 불안과 긴장속에 걸어서 올라온 압록강 너머 북한땅이 바라 보이는 강기슭의 관광도로를 타고 반대방향으로 차가운 겨울밤의 얼음같은 대기를 가르며 미끄러지듯 가고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이 밤에 아빠몰래 도망치듯 나와 문밖에서 눈물로 옷고름 적시며 바래주시던 어머니의 배웅만 받으며 떠나온 울집이 있는 압록강너머 혜산시가 바라보이는 장백현 시내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지 한 이십분쯤 지나자 저 멀리 산넘어 겨울밤의 오로라마냥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색깔들을 밤하늘 높이 뿜어내며 시가지가 멀지 않음을 알렸다.


우리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그 불빛을 향해 눈 덥힌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한,두 굽이만 더 돌아가면 시내가 나질듯하게 가까이 가는듯 하더니 우측으로 뻗은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쪽 방향으로 가기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차가 움찔하면서 멈추기에 앞을보니 그리 멀지않은 앞에서 갑자기 경찰차가 보이는것이였다.


처음엔 오고 가는 자동차 전조등 불빛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빨간색,파란색의 엇바뀌며 번쩍거리는 경찰차 경광등이 분명했다.


움직이지 않는걸 보니 마주오거나 하는것이 아니라 길 한켠에 서있는것같았다.


불빛이 여러개인걸 봐서 그 주변으로 승용차랑 몇대 더 있는듯 했다.


운전기사와 조선족사람은 몇마디 주고받더니 급하게 차를 돌리기 시작했다.



양쪽으로는 눈이 쌓여있어 도로폭이 좁은탓에 한번에 유턴을 못하고 두세번 전,후진을 해서야 돌아섰다.


그런데 아뿔사,


경찰차가 있는쪽에서 무슨 눈치를 챘는지 바로 " 애~~앵, 애~~앵 " 하고 산골짜기를 통째로 찢어발길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눈이 부실정도의 밝은빛을 내며 오토바이 한대가 우리를 향해 오는것이였다.


나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것 같았다.


온 몸이 쪼그라들고 머리카락과 몸의 솜털마저 일어서는 느낌이였다.


" 에구, 어쩝니까? 어쩝니까? "


은심이가 동생 은별이를 꼭 껴안으며 첨으로 금혁이 아빠 얼굴 쳐다보며 불안에 떨며 말했다.


운전석 앞쪽에서도 추격을 눈치챘는지 서로 중국말로 톤을높여 고함치듯 말하더니 운전기사도 차를 전속력으로 몰기 시작했다.


" 쟤네 우리 오는거 알구 길목 지키던거 아니오?"


금혁이 아빠도 아까 태연하던 자세는 온데간데 없고 낯빛이 파랗게 질려 조선족 한테 물어봤다.


" 아니오, 야 말하는기 무슨 일이 생긴것 같다오, 누가 살인이나 강도치구 도망쳤다든가 아님 조선에서 사람이 넘어와서 물건 훔쳐갔다든가 그럼 저런다오. 여기 국경이라서 자주 저런다오."


운전석의 한족을 보고 하는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재수없이 하필 우리가 넘어온날에 먼 일이 생겨 검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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