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이거 천지아니야? 니 돈있다 응,"
금혁이 아빠는 담배를 갑채로 내미는 내 손과 받아든 담배갑을 화등잔 만한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더니 쏟았던 쌈지랑 종이를 다른 한손으로 주머니에 구겨넣으며 말했다.
" 아니오, 내 언제 이런담배 필 수준이요? 아까 낮에 울어머니 가다가 먼 일이 생기면 쓰라고 광숙이네 집에서 써자(외상)처 가져다 준기오."
이렇게 말하는 내 눈앞엔 지금 이순간도 무사히 강을 넘었으려나 맘 졸이시며 잠못 이루고계실 어머니 얼굴이 환한 달빛에 떠오르며 울컥 북받치는 말못할 감정에 눈시울이 확 붉어졌다.
그러는 내 얼굴의 표정변화가 신경씌였는지 금혁이 아빠도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담배한대 꺼내서 제입에 먼저 물고 또 한대 꺼내 나에게 말없이 내밀더니 바람을 피하느라 다시 옷깃을 펼쳐들고 그안에서 칙~칙 라이타를 돌려댔다.
잘 켜지지 않아 한참을 씩~씩 대며 팔을 휘저어 툭,툭 털며
애를 먹다가 겨우 불을 붙히고 한 모금 길게 들이키더니 빨간 불봉오리를 확인하고 입김으로 훅~불고는 담배대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가 내민 담배를 받아 나도 입에 문 담배대에 불을 이어붙혔다.
나도 여태 보기만 했었지 그날 밤 천지담배를 처음 피워봤다.
역시 돈값하는 담배는 달랐다.
은심이,은별이 그리고 준영이 셋은 담배피우는 사람 첨보는 애들처럼 쪼그리고 앉아 빨갛게 타들어가는 나와 금혁이 아빠 담배끝을 초롱,초롱 말없이 쳐다만보고 있었다.
"이제 이거 피우고 내가 앞에서 걷고 뒤에 너네 한줄로 서서 내려갈건데 차 불빛이 보이거나 하면 손짓 할거니까 숲으로 숨어라. 알았지?"
긴장된 몸을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는 애들을 향해 금혁이 아빠가 말했다.
셋은 대답대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타들어 가는 담배가 아까워서인지 한모금 빨고는 담배를 눈앞에 대고 쳐다보고 또 한모금 빨고는 쳐다보며 맛있게 피워대는 그의 행동이 내가 봐도 신기하긴 했다.
한치도 안 남기고 여과봉 끝까지 타들어가게 먼저 피운 그는 돌위에 앉은채로 신발 뒤축을 세워 발앞에 작은 눈구덩이를 만들더니 그안에 꽁초를 던져넣고 다시 신발바닥으로 눈을모아 구덩이를 반듯하게 메우고 천천히 일어섰다.
나도 마저 다 피우지 못한 담배를 눈속에 밀어넣고 꽁초가 안보이게 신발로 눈을 덮었다.
"빨리 걷지는 않겠으니까 뒤쳐지지 말구 따라와야 된다."
"야~알았소, 준영이 너 금혁이 아부지 뒤에서고 그담에 너네 둘이 서고 내 맨 뒤에서 살피면서 따라갈게"
나는 준영이와 은심이네 형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슴다"
셋은 긴장되고 겁에질린 얼굴들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사실 나도 긴장되는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다시 일렬종대로 길위에 올라서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오던방향으로 거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얼음밑을 졸~졸 흘러내리는 강물소리와 며칠전 내린 눈이 아직 단단히 다져지지 않아 밟힐때마다 뽀드득~뽀드득 내는 다섯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강변의 고요를 깨며 울렸다.
강 건너편 우리가 조금전에 뛰여온 그쪽에선 여전히 겨울밤의 적막만 흐를뿐 그어떤 기척도 없었다.
가끔씩 숲속 저 멀리서 "우~~워웡" 하고 이름모를 산짐승 소리가 들렸다.
처음 한 십분정도는 그런대로 한줄 맞춰서 걸어갔지만 준영이가 무서웠는지 금혁이 아빠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다가와 내곁에서 나란히 걷자 은별이도 언니옆에서 걷기 시작하면서 맨 앞엔 금혁이 아빠 혼자만 걷고 그뒤엔 네사람이 둘씩 짝을지어 2열 종대로 걷기 시작했다.
금혁이 아빠도 뒤를 힐끔 한번 쳐다보고는 다른 소리 없이 그냥 앞장서 걸어갔다.
그렇게 한 삼,사십분쯤 내려갔을때였다.
우측으로 완만하게 굽은 커브길을 지나 직선길이 나타날즈음 저 멀리서 전등불빛이 희끗,희끗 보였다.
" 어!~금혁이 아부지, 저기 불빛이 보임매 "
나는 긴장되여 나지막하게 소리쳐 말했다.
" 응, 거의다 왔다. 저기다."
금혁이 아빠는 나보다 먼저 보고 오히려 그 불빛이 반가운듯이 소리치듯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발걸음마저도 더 빨라지는듯했다.
위치로 보면 조선쪽 봉수에서 화전 사이 중간쯤 되는것 같았다.
뒤에서 따라가던 우리일행도 모두 금혁이 아빠의 조금 활기찬 얼굴이랑 걸음걸이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오던때와는 달리 직선 길이라 더 빨리 걸음을 재촉하여 점점 다가오는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커브길에서는 멀리서 차 불빛이나 소리가 들리면 바로 숨을수 있지만 직선길에서는 차가 보이기전에 숲으로 뛰여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였다.
첨엔 불빛이 하나만 보여서 길옆에 작은 오두막인줄 알았는데 건물 윤곽이 보일정도로 가까이 가보니 집 여러채가 나졌다.
지그재그로 산등성이를 넓고 반듯하게 깍아 지은 집들이였는데 자정을 금방넘긴 새벽시간이라 다른집들은 모두 잠들고 그중 두번째 집의 창문에서만 유난히 전등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던것이다.
금혁이 아빠는 조금도 긴장되거나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당당하게 마을 입구로 앞장서서 걸어가더니 곧장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을향해 씽~씽 걸어갔다.
우리는 혹시나 다른집에서 대문을 벌컥열고 누군가 나올까봐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금혁이 아빠는 아주 익숙한듯이 무슨 화려한 축등같은 그림이 양쪽으로 붙은 대문앞으로 다가가 주위를 힐끔 한번 살피더니 주먹으로 낮게 쿵~쿵, 쿵~쿵 하고 두번씩 두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대문에서 두세 발자국 뒤로 물러나 기다렸다.
그러자 한1분쯤 지나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대문쪽으로 걸어오는 사람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바로 문뒤에서 멈추더니
"로 추이요?"
하고 중국말인지 아님 무슨 암호인지 모르나 거렁,거렁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야~내요, 넘어왔소"
하고 금혁이 아빠가 답했다.
그러자 절그덩~하고 대문에 매달린 방울소리가 울리며
한쪽문이 열리더니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키도 체격도 우람하고 거기에 발끝까지 드리운 초록색
슈바를 양털목깃까지 세워 걸치고 나온 사람은 잠을 자다가 나온 사람같지 않게 큰눈을 데룩거리며 우리 일행을 쳐다보는 모습이 흡사 동물원의 곰 같았다.
깊은 밤이라 얼굴 자세히는 알수없지만 한 40대 초반같아 보였다.
" 오느라 고생했소 "
그러면서 손을 내밀어 금혁이 아빠한테 악수를 청하며 우리쪽을 다시한번 쳐다보더니
"빨리 들어오오"
하며 다른손으로 문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자"
금혁이 아빠가 안으로 앞장서 걸어들어가며 우리를 재촉했다.
우린 누가 먼저라 할것없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마당에 들어서니 밖에서 볼때보다 엄청 넓었다.
조선족인듯한 그 사람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 한사람,한사람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은심이 은별이가 지나 들어갈때 금혁이 아빠를 향해 "두명이네" 라고 하는 것이였다.
그러자 금혁이 아빠는 "야, 한명 더 데려왔소, 형제요"
"오~그러오? 잘했소"
그는 얼굴에 느끼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아마도 은별이가 언니를 따라나선걸 미리 이야기 못들었었던것 같았다.
우리가 다 들어선걸 확인한 그는
"잠깐 저쪽에 서서 기다리오"
하며 우리를 향해 지시하듯 말하더니 커다란 빗장을 벗기고 대문 통째로 한쪽을 안쪽으로 당겨 열어젖히더니 또 다른쪽 문도 그렇게 당겨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고는 의아해서 쳐다보는 우리 일행은 아랑곳 하지않고 금혁이 아빠를 향해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한쪽으로 데리고가서 우리가 들을수 없는 소리로 소곤소곤 뭐라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에 금혁이 아빠가 먼저 우리쪽을 향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조선족사람이 먼저 앞장서서 마당 한쪽에 세워진 농구방(승합차)을 향해 걸어가더니 옆문을 드르륵~열면서
"타오, 타구 앉아서 좀 기다리오. 인차(금방)나올꺼니까" 하고 말했다.
" 야, 알았소, 자 들어가라, 저기 저 안쪽부터 앉아라."
금혁이 아빠는 맨 앞의 은심이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애들 둘이 맨뒤에 타고 그다음 나, 준영이 그리고
금혁이 아빠가 마지막으로 오르며 앉은다음 문을 닫았다.
조선족 사람은 밖에서 우리일행이 모두 차에 앉은걸 확인하고는 슈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께를 앞으로 쪼그리고 머리를 양털깃 안으로 움츠리며 불켜진 집 출입문을 향해 웅기적 거리며 곰처럼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