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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Aug 25. 2024

 담배 [천지]


" 우리쪽은 경비대 애들이 수시로 걸어서 순찰하지만 얘네는 밤에는 거의 순찰 안한다. 가끔씩 차 타구 순찰다니기 때문에 멀리서 차 불빛이 보이거나 소리 들리면 숨으면 된다. 자 ~ 아직 시간있으니까 담배한대 피우고 가자."

금혁이 아빠는 아까와는 달리 아주 자신있는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은심이네를 손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좀 더 큰소리로 " 너네도 힘들지 ? 거기 어디 앉아 쪼꼼 쉬어라 " 하고 조금 더 톤을 높이며 말했다.


불과 몇분전 강 저켠에서 출발전에 우리한테 주의를 주며 조용하나 엄숙하게 말하던 그때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근심없고 편한 사람같이 보였다.



자정도 넘은 깊은 밤이라지만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들을 모두 셀수있을 정도로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 덕분에 수십미터 거리의 사람 형체도 알아볼수 있을 정도였다.


시내에 첨 나온 촌닭들처럼 두리번거리며 아직도 겁에 질려있던 우리는 금혁이 아빠의 말에 조금 진정되는듯 싶었다. 하지만 여기가 중국땅, 바로 남의나라 땅이라는게 실감나지 않았다.


" 그런데 금혁이 아버지는 어떻게 실정 그렇게 잘 아오?"


나는 아까부터 궁금하던것을 그에게 물었다.


내가 알기엔 그가 중국에 왔다갔다 한것은 두번 정도다.그것도 그가 우리집에 와서 이야기 해서야 알았었다. 그 사이에 그많은 정보를 다 알아냈다는게 놀라웠다.


" 뭐~나도 더러는( 일부는) 따라다니면서 들은 소리두 있구..."


내 속생각을 알아챘는지 금혁이 아빠는 말끝을 흐리며 대충 넘기는 것이였다.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나랑 단둘이 있는것도 아니구 해서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 절도있게 자른 노동신문 속지위에 일명《되초》라고 불리는 마라초 담배를 툭~툭 털어 쏟아 말면서 나한테 물었다.


" 너 라이타 가져와?"


" 못 가져왔소, 자다 깨나서 급하게 나오다 보니까 까먹었소."


그랬다.아빠가 잠드신 다음 몰래 나오려고 누워서 아빠 잠드시기를 기다린다는게 내가 먼저 잠들어 버렸었다.


금혁이 아빠가 울집 문앞에 와서 문을 두드리고 어머니가 나를 깨워서야 부랴부랴 옷을 주워입고 나오다 보니 저녁먹고 밖에서 담배한대 피우고 들어오면서 창문턱에 놓은 라이타를 깜빡 했던것이다.


그때도 그렇고 이후에 중국에서도 나는 한 17년 정도 담배를 피웠다.


보통때는 한갑, 어떤 날을 한갑 반을 피웠을 정도로 고질이였다.


한국에 와서 하나원때 담배를 끊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누구나 같겠지만 나는 담배를 정말 힘들게 끊었다.


 하지만 목숨도 걸고 넘어왔는데 담배 끊는게 대수냐 하는 생각에 결심이  더 굳어졌고 내 자신이 나와의 약속을 하고 습관이 이기는지 의지가 이기는지 스스로 내기를 했다. 만약 의지가 패하면 낯 설은 한국에서의 홀로서기도 패할것이임에 였기때문이다.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담배생각이날때 있다.


그래서 담배는 끊는것이 아니라 참는것이라 했나부다.


그러니 아직도 완전히 끊은것은 아니다.


이후에 저녁마다 퇴근후 꼭꼭 소주 한병반씩 마시던 술도 화물운송을 시작 하면서 운전직이라 술 마저도 끊었다.


좋아 하던걸 다 끊고 혼자 사는게 뭔 재미에 사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 그 라이타를 덤비며 못가져온것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아니 평생을 두고 후회할것이다.


" 금혁이 아버지두 없소?"


" 아니. 있다. 그런데 씨베(한국의 ㅆㅂ 욕하는 말과 같음.) 돌이 다슬었는지 불이 잘 안켜진다."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를 뒤져 낡은 가스라이타를 꺼내 칙~칙 돌렸다.


그의 말대로 돌이 다슬었는지 아님 로라가 나쁜지 밤인데도 불꽃이 잘 안 튕겼다.


나는 주머니에서 문밖을 나올때 만약의 경우에 쓰라며 어머니가 넣어 준 [ 천지 ]담배를 꺼내 포장을 떼면서 그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만약의 경우란 북한쪽에서 생길수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신것이다.


이제는 무사히 강을 넘었으니 그럴 상황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 담배를 개봉한것이였다.


[ 천지 ] 담배는 그때까지만 해도 시중에서 유통되는 담배들중에서도 그중 고가에 가격에 속했다


당시 북한에서는 [천지],[고양이],[선봉] 순으로 일러주는 담배들이였다.


당.정권기관 또는 사법기관의 힘있고 권세있는 사람들이나 무역회사 간부들, 그리고 큰 밀수꾼들이나 차판 장사꾼들 처럼 돈 많은 사람들이나 피울수 있었고 보따리 장사나 해서 근근히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대다수의 주민들은 남녀노소가 증명서 대신으로 혹은 차표대신으로 한두갑씩 품속에 넣고 다니면서도 비싼 가격때문에 정작 본인들은  피워볼수 없었다.


연유가 부족해 불을피워 검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끄으렁~끄으렁 늙은이 가래끓는 소리같은걸 내면서 힘겹게 굴러다니는 목탄차 마저도 길에나가면 손가락으로 셀수 있을정도로 대중교통이 최악인 탓에 걸어서 갈수없는 거리거나 짐이있어서 차를 타야 되는 상황이면 시,군 또는 마을 경계마다 적어도 반드시 세워져있는 검열초소 옆이나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트럭이 지나가면 담배를 꺼내 흔들어 < 차표 >가 있음을 알리고 차가 멈추면 담배를 내고 행선지까지 가는것이다.


기차를 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급하게 어딜 가야되는데 보안서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했거나 시간이 늦어 차표를 떼지 못하고 올랐어도 열차보안원이나 여객전무한테 고급담배 한두갑을 찔러넣어주면 통과되였다.


웃기는것은 담배를 받은 그들도 거의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라 나름 여건이 되어 피우는 사람은 피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 가져가서 와이프한테 주면 뇌물로 받은 그 담배를 아내들은 다시 시장에 내다가 담배 장사꾼한테 넘기고 돈을 받는다.


그러면 그걸 넘겨받은 장사꾼은 다시 제값에 팔고 누군가는 어딜 가거거나 필요로 또 그 담배를 사서 상납하고 받은 사람들은 다시 시장에 내다 넘기고...그렇게 (유통)되는 것이다.



가다가 경비대나 보안원들을 마주쳐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주라고 어머니가 출입문 나서기전에 내 품에 넣어주신 것이였다.


아마도 뒷집 광숙이 엄마한테 사정해서 이것도 외상값에 가져오셨을 것이다.


우리 동네 여과담배 장사를 하는집이 그집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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