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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Sep 22. 2024

산 중턱에서~

그닥 경사가 급하지는 않았지만 지칠대로 지친탓이라 비내린 다음날 밭갈이 끌려가는 황소마냥 씩~씩 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우리모두의 입에서 새어나온 입김은 그대로 눈썹이며 머리카락이며 옷깃에 성에가 되고 얼음이 되어 엉겨붙헜다.


나무숲이라 바람은 조금 덜했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전이라 여전히 추위는 맵짰다.


잡관목을 헤치고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들을 타고 넘으며 산 중턱쯤 올라섰을때 일행은 또 한번 멈춰섰다.


기운이 없어 휘청거리는 준영의 허리를 잡고 뒤에서 밀다싶이 오르던 나는 잠깐 쉬어가려나보다 하고 머리를들어 윗쪽을 보았다.


그런데 맨 앞의 금혁이 아빠가 장갑을 벗고 지시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뒤쪽을 향해 쉿~하고 있는것이다.


나는 순간 섬찍했다.


무의식적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 엉? 뭐야. 설마 공안원들이 밤새도록 우리를 쫓아온거야?)


그러고 보니 정말 와작~와자작 하고 얼음밟는 소린지 낙엽밟는 소린지 뒤쪽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것이다.


나는 겁에질려 겨우 머리를 돌려 우리가 지나온쪽을 내려다보았다.


방금전 올라온 산 기슭 조금 위쪽에서 망두석처럼 서있는 우리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어발자국 떨어진 고로쇠나무 뒤로 성큼 뛰어가 키를 낮추고 소리나는쪽을 주시했다.


이어서 준영이도 내려서서는 내뒤에 몸을 숨긴다.


윗쪽을 보니 금혁이아빠랑 은심이네는 그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니, 그 먼길을 쫓아온다고? 발자국이 아직 저 아래 그대로 찍혀 있을텐데 올라다보고 총이라도 쏘면...)


나는 겁에 질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였다.


 밤을 새며 죽기살기로 도망쳐온것이 여기서 잡히고 마는것인가 하는 생각에 절망감이 사지를 뻣뻣하게 한다.


제발 그냥 지나쳐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뿐이다.


그런데 한 오십여미터 정도 가까이 왔다고 생각될즈음


 에~엥?


귀에익은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부엌 널마루 안에서 봄부터 한해여름 한식솔로 살아온 온 집안의 희망이였던 그 소리,


학교갔다가 집에 오면서 출입문 열면 젤 먼저 코끝에 진동했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포크레인 바가지처럼 억센 주둥이로 널마루를 들어올리고 콘크리트벽 마저도 파헤치던 미워하면서도 정들었던 그소리가 바로 저 밑에서 들리는것이다.


꿀~꿀, 꿀~꾸굴  하면서 한무리의 메돼지가 먹이를 찾아 헤메는지 우리가 방금 올라온 산 기슭의 잡관목 숲을 헤치며 지나가고 있는것이다.


나는 휴~~하고 놀란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놈들을 보니 하나의 큰 가족인듯 열마리도 넘는다.


제일 큰 놈은 백키로도 훨씬 넘을듯 덩치가 크고 중간 중간과 맨 뒤쪽으로는 태어난지 얼마 안돼보이는 새끼 돼지들도 있다.


웟쪽을 쳐다보니 금혁이 아빠랑 은심이네도 이미 긴장이 풀린듯듯 일어서서 지나가는 멧돼지 행렬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금혁이 아빠는 다시 장갑낀 손바닥을 펴보이며 움직이지 말라는 싸인을 보냈다.


괜히 놀래워서 혹여 달려들기라도 하면 큰일이기때문이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리는 산 위에서 내려다 보기때문에 보이지만 깊은 눈 때문에 키를 넘는 눈을 주둥이로 열심히 파헤치며 가느라 안보이는지 다행히 멧돼지 대가족은 우리를 보지못하고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한 십여분을 선자리에서 움지이지를 못하고 메돼지 가족을 조용히 바래주며 지나보내다 보니  나무 사이 사이로 불어드는 눈보라에 그대로 노출되어 또다시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제일먼저 손과 발이 얼어든다.


준영이도 발이 시린지 인상을 찌그리고 선자리에서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장갑낀 손도 펴지를 못하고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우리는 메돼지 무리가 멀리 사라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에 가려 어디쯤인지는 보이지 않지만 능선까지 아직 한참 더 올라가야 했다.


산을 타고 넘으려는건지 아님 능선을 타고 가려는건지 금혁이 아빠의 의도를 알수 없었지만 그를 따라야겠기에 일단은 올라서서 물어보기로 하고 또 준영이의 어께와 등허리를 잡고 밀며 오르기 시작했다.


준영이의 어께 너머로 보니 은심이도 뒤에서 동생 은별이의 등을 잠깐 잠깐 밀어 올리며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여자애들은 두께도 조금 두껍고 허리도 긴데다가 모자까지 달린 겨울동복들을 입었지만 준영이는 허리도 짧고 그닥 두껍지도 않은 낡은 군대동복을 입고있어 허리며 목덜미로 찬바람이 그대로 스며들고 있는것이다.


그러니 속에는 어떤 내의를 입었는지 몰라도 나어린 그가 지금 얼마나 추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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