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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Sep 26. 2024

산마루에서 ~


오르다 말고 잠깐씩 허리를 굽힌채로 멈춰선 준영이는 목이 마른지 아님 배가 고파서인지 뻣뻣하게 얼은  장갑안에서 손은 펴지 못한채 양손을 모아 한웅큼씩  장갑위에 눈을 퍼먹는다.


아니 분명 배고파서 눈이라도 먹는것일것이다.


나도 그러는 준영이를 따라 허기를 달래보려고 나무 검불같은것을 장갑 모서리로 쓸어내고 깨끗한 눈을 입에 한가득 넣어 녹여보았다.


이가 시려오고 입안에서 녹은 눈물을 삼키니 비여있는 장을타고 슬라이드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가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기가 배꼽까지 전해진다.


더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장까지 얼어붙을것 같았다.


밤새 한숨도 못자고 예까지 오느라 몰렸던 졸음도 싹 도망쳤다.


일행은 서로 밀어주고 당기며 한 삼사십분 정도 걸려서 드디어 가까스로 능선에 올랐다.


위에서 보니 밑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평평하게 넓었고 반대쪽도 우리가 올라온쪽보다 경사가 더 완만했다.


금방 지나간것처럼 선명한 산토끼 발자국이랑 노루발자국 같은 산짐승 발자국들도 어지럽게 나있었다.


우리가 올라오는동안 해는 완전히 솟아 올랐다.


능선에서 보니 반대쪽으로는 침엽수 나무보다 자작나무나 고로쇠나무, 황철나무,참나무같은 활엽수 나무가 더 많았고 키낮은 잡관목들도 많았다.


" 너네 올라오느라 힘들었지?"


맨 먼저 올라서서 이리저리 지형을 살펴보던 금혁이 아빠가 우리 네명 모두 가까이 다가가니 하는 말이다.


" 네~~"


은심이가 코등까지 덮힌 수건을 손으로 내리더니 긴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저기 위에 해빛이 잘 들어오는데 가서 쫌만 쉬자."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살짝 언덕진 곳에 나무 한그루도 없이 해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곳이 보였다.


거기에다 산짐승들이 쉬고 가려고 그랬는지 눈을 파헤쳐 놓아 가랑잎들도 보였다.


우리는 더이상 한발자국 내딛기도 힘들었지만 누구하나 군말없이  또 그곳까지 금혁이아빠를 따라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신기하게도 우리가 올라온 방향과 앞쪽으로 키큰나무들이 병풍처럼 빼곡히 막아서서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고 반대쪽은 굵은 잡관목 숲이 있는 공터같은 곳이였다.


이런곳이여서 짐승들도 쉬고가려고 자리를 만든것같았다.


" 와~! 금혁이아부지는 여기 이런데 있는건 어떻게 알았소?"


" 흐흐, 내 어떻게 알구 왔겠니, 짐승들이 다닐만한 곳을 찾아보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지, "


" 짐승들이 다니는곳?"


" 어~너네 밤새 뛰구 걷구 하느라 힘든거 알면서두 여기 산으로 올라온건 다 이유가 있다. 첫째루 높은데 올라서서 봐야 공안이나 뭐이 우리를 뒤쫓아 오는지 내려다 보구 어느쪽이든 반대 방향으로 빨리 도망칠수 있구 둘째는 사람사는데를 찾자면 연기나는곳을 찾아야되는데 높은데 올라와야 보이지, 그리구 마지막으로는 지금 모두 배고픈데 산짐승들이 다닐만한 곳을 찾아야 도토리나 마가목이나 그것들이 먹은주위에 흘린거나 남긴거라도 찾아서 먹으려구 한거지, 알만하니? "


" 아~! 그래서 ~~ 역시 공산군(인민군) 출신이 다르구만."


나는 엄지척을 해보이며 농담식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바람이 점점 쎄게 불어오니 등지려고 산을 타는줄로만생각했었던것이다.


" 너네 셋은 아직 앉지말구 쫌 기다려라, 경호야, 저 아래 마른나무 가지 좀 많이 꺽어오자, 얘네랑 깔구앉게~"


금혁이 아빠는 여자애들과 어린 준영이는 잠깐 기다리게 하고 나를 데리고 십여미터 아래 잡관목 숲으로 내려갔다.


우리 두사람은 일행이 다 앉을수 있게 가을에 떨어지다만 단풍잎이 몇잎씩 붙어있는 나무가지들로 한아름씩 꺽었다.


처음엔 얼어있는 손이 펴지지 않아 애를 먹다가 조금씩 일을하니 괜찮아졌다.


그렇게 꽤 많은 나무가지들을 꺽어 안구 다시 올라서니 애들도 그사이 발로 눈을 쳐서 한옆으로 밀어내고 자리를 만들어 놓구 있었다.


우리는 다섯명이 앉을수 있게 안고 온 나무가지들을 골고루 펴놓구 삥 둘러앉았다.


그런데 앉으면서 보니 준영이 인상이 영 말이아니다.


" 꼬매야, 힘들지? 춥구 졸리구 배두 고프구 "


금혁이 아빠도 찌그린 준영이의 인상을 봤는지 그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 네~~"


쪼그리고 앉은 준영이는 모지름을 쓰듯 겨우 대답한다.


" 너 어디 아프니?"


내가 다시 물어보는 말이다.


" 네, ~~ 아까부터 배 쌀쌀합니다."


" 참, 그거봐라, 니 아까 올라오면서 눈 정신없이 퍼먹더니...이그~ 빨리 저아래 내려가서 똥 싸구오라,"


" 네~그런데...음~"


" 그런데 뭘? 아~~휴지 없겠구나, 어쩌지? 나두 옆차개(주머니) 종이같은게 없는데 "


준영이는 양손을 배아래 가져다 대고 고통에 괴로워 하면서도 휴지가 없어 망설이고 있었던것이다.


그때 앞에 앉아 그를 보던 은심이가 은별이보구 소곤소곤 뭐라 이야기 하더니 동복 주머니에서 비닐주머니를 꺼내들고 그안에서 네모나게 접은 거즈천 한장을 내밀었다.


" 었소, 삼춘. 이거라도 쓰오. 급한데~"


" 그건 무슨 천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물어보는 말이다.


" 그게~~ 은별이 이제 이틀있으면 생리하는 날이라 혹시나 몰라서 가지구 온깁니다."


은심이는 동생 은별이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창피한듯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북한은 장마당에서 비싸게 파는 중국산 위생대외에는 여자들의 위생용품이 따로 없다.


집집마다 거즈천이나 흰 면천을 가위로 잘라서 쓰는데 그것도 일회용으로 쓰는게 아니고 쓰고 다시 빨아서 말려쓰고 또 쓰고 빨아 쓰고 한다.


내 여동생도 그랬다.


우리 어머니도 시집올때 장만해오셨던 이불중에 집에서 제일 낡은 이불을 뜯어 그 안의 솜싸개 거즈천과 가운데 면천을 떼내서 가위로 잘라 삶아서 빤 다음 말려서 위생대로 사용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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