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참 고왔네. 예쁘다.’
몇 장 안 되는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꽃같이 예뻤던 시절 속에서, 엄마의 하얀 피부와 단아한 이목구비는 새하얀 데이지꽃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도 예뻤던 엄마의 젊은 날은 당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오로지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다 보니, 어느새 팔순이 다 되어 가는 할머니가 되었다. 얼굴에는 주름이 많아지고 몸은 시들었다.
이제 엄마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오고 다리와 허리 통증을 느끼며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오랫동안 걸을 수가 없다. 엄마와 종종 여행을 떠나지만, 기쁨보다 힘듦이 커져가는 여행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를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맞았다. 엄마는 세월이 흐를수록 당신의 젊은 날을 많이 이야기하신다. 상경해 학교에 다니던 때를, 처음 취직했던 때를, 아빠를 만나던 때를,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던 때를, 우리를 낳던 때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던 때를 이야기하신다. 기쁨보다 슬픔이 많고, 힘들었던 게 대부분이었던 삶을 회상하며 덤덤하게 말씀하신다.
엄마도 당신의 젊은 시절이 그리운 거겠지. 데이지꽃처럼 예뻤던 그때가 생각나는 거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그를 많이 의지했던 그때가 그리운 거겠지. 그가 떠나고 혼자 남겨졌지만, 자식들을 보며 버텨낸 자신이 대견한 거겠지. 당신처럼 자식밖에 모르던 당신의 엄마가 그리운 거겠지. 그 향기와 계절이 생각나는 거겠지.
지난날을 추억하고 때로는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삶을, 세월을 보내며 꽃이 지는 날을 겸허히 기다리는 엄마의 시절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힘들었을 엄마의 지난 시절로 돌아가 엄마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때는 너무도 어려서 어떠한 위로도 하지 못했기에, 늘 미안하기만 했던 나의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나는 그늘 없이 행복한 삶을 지나왔다고. 또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배워서 힘들다고 말하는 인생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며, 내 딸에게도 엄마에게서 배운 것들을 전하고 싶었다.
글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엄마의 삶을 적어 내려가며 그때의 어린 나와 언니들, 떠나간 아빠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힘들기도 하고 아빠가 아파서 슬펐지만. 결국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가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잊혀가던 아빠의 얼굴이 또렷해지며 아빠와의 추억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던 그때로 잠시나마 돌아간 것 같아 행복했다. 아등바등 사시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그 무엇이라도 해주려고 하시던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며, 위로받고 있었다. 미처 놓지 못했던 슬픔도 놓아주고.
엄마도 그랬으면, 나처럼 위로받고 마음속에 숨겨 놨던 슬픔을 모두 떠나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고단했던 삶이었어도 그래도 그 속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생각하며, 그래서 다행이었다 여기셨으면 좋겠다. 그 기억들로 엄마의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그게 그동안의 삶에 대한 보상인 것만 같아서.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비, 바람과 꽃샘추위를 이겨내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들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모든 엄마는 활짝 핀 꽃을 뽐낼 새도 없이 희생하며 자식들을 키운다. 그리고 겨우 살만해지면 시들어 결국에는 지고 만다. 하지만 자식들은 기억한다. 예쁘게 피었던 엄마라는 꽃을, 꽃이 활짝 폈던 그 계절을. 또 그 추억은 엄마의 향기로 남아 오래도록 간직된다.
“엄마, 당신의 시절 속에서 내가 자랐습니다. 꽃처럼 예쁘게 자라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엄마, 그리고 희생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모든 엄마께, 엄마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에게, 매번 부족하다 느끼면서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재의 엄마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