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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봉수 Jul 17. 2024

<시집> 슬퍼도 황제처럼(10.끝)  

시 25편:  상도덕은 지켜야 한다 외 24편

36.상도덕은 지켜야 한다 - 오봉수


상도덕은 기본이다


밪줄에 묶여 매질을 당하는 사람에게

군중속에 숨어 있다가 갈라진 등의 상처에

왕소금을 뿌리지 말라

앞에서 뺨을 때리는 사람보다

등 뒤에서 칼을 던지는 사람이 더 잔인하다


차를 타고가다가

죽은 동물을 발견하면

도로 밖으로 치워주지 못 할 망정

재미로 밟고 지나가지 말라

자꾸자꾸 밟히면 영혼까지 아프다


갑질 상사에게 욕을 먹었으면

상사에게 저항하든지 따져야지

그 스테레스를 풀기위해

부하나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 하지 말라 


자식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부모의 공덕을 의심해봐야 한다

타인의 눈물로 쌓아올린 부모의 성공은

자식의 운까지 잘라 먹는다


기본만 지켜져도 세상은 살 만 하다



37.애무는 없고 삽입만 있는 시대 - 오봉수


과정은 중요치 않아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

명문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인성교육보다는 쿠데타 같은 학원이 필요해

취업과 승진을 위해서는

공정의 소총보다는 탱크처럼 딴딴한 인맥이 중요해

실패하면 역적!

성공하면 혁명!

애무는 없고 삽입만 있는 시대는

너무 빡빡하고 건조해!



38.진삼선* 열차는 달리고 싶다 - 오봉수


사라진 것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추억과 애정이 온몸에 묻어있지만

경제적 논리로 사라진 것은

더욱 그러하다

진주에 통학하던 침목처럼 여문 삼촌은

요양병원에 입소했고

삼천포역 개찰구에서 행상을 하던 숙모는

사그라지는 목련꽃처럼 가물가물 하다

삼천포항구 만선의 꿈을 싣고

실안 낙조의 금빛 설레임을 싣고

삼천포대교 상괭이의 은빛 웃음을 싣고

바다케이블카의 초록빛 낭만을 싣고

기적 소릴 되새김질하며

우주항공도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진삼선 열차


<진삼선 열차: 예전 경남 진주시와 경남 삼천포시를 연결한 열차> 



39.경찰시계는 불기소 처분 할 수 없다 / 오봉수

 

인생은 짧고

하루는 고장 난 시계마냥 느리고

예술은 영원하고

밤은 화려하지만 고독하고

112순찰차의 경광등은 쪽잠도 허락되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잠든 시간에도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삶의 좌표를 분실한 길 잃은 어린 양을 태우고

꿈과 희망이 춤추는 보물섬으로 째깍째깍 달려간다


경찰시계는 불기소 처분 할 수 없다




40.압착- 오봉수


그리움을 못 이겨

커피 자판기를 만났다

밀크커피 버튼을 눌렀으나

커피가 나오지 않아 고개를 숙여

종이컵이 나오는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순식간에 나는 자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외로움에 지친 그녀도

커피 자판기를 만났다

밀크커피 버튼을 누르자

드르륵드르륵

자판기 속에서 내 몸이 압착되어 분해되었다


종이컵 바닥에 엎드린 나

그녀는 수줍게 커피를 마신다

그녀의 심장 속에 난 영원히 머무른다




41.반야사장독 - 오봉수 


수국이 탐스럽게 활짝 웃는

반야사에는 장독도 참선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철 정진 중이다


중생들이 흘리고 간

애욕과 물욕을

몰래 주워와


둥그런 뱃속 가득히

발효시키면서

묵언 수행 중이다



*반야사: 수국이 아름다운 경남 사천시 남양동 소재 사찰





42.파쇄기 - 오봉수

 

수치스러웠던 마음

부끄러웠던  마음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

 

머뭇거리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쫙 밀어 넣어 갈아버려라

 

정년퇴직 때까지

끝까지 버텼던 당신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고개숙이다  이미지 사진>

43.고개 숙이다 - 오봉수



한가로운 가을 들판

잘 익은 벼가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알곡은

농부의 고독한 눈물을

한가득 품고 있기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농부는 항상 미안했다

벼도 항상 미안했다 



44.파문 - 오봉수

 

 

달수네 횟집에 간밤에 도둑이 왔다 가고

아침부터 경찰들이 와서 현장 사진을 찍고

용의자 상대 탐문수사를 하였다

 

피해품은 강원도에서 군 생활하던 막내아들 휴가를 위하여

수족관에 모셔둔 횟감용 40센티미터 대구 1마리다

달수는 런닝을 뒤집어 입은채 입에 죽창을 물고

도둑놈을 잡으면 요절을 내서 갈아 마시겠다 면서

주변 횟집을 빙빙 돌며 공포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범인은 횟집에 지문과 유류품을 전혀 흘리지 않았고

유일한 단서인 수족관을 비추는 무겁고 지루한

CCTV 분석 작업이 시작되었다

 

범인은 새벽에 홀로 겁도 없이 횟집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전광석화처럼 수족관의 대구를 제압한 후

젖은 양말처럼 축축하게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영상을 확인한 달수와 경찰들은 게슴츠레한 웃음을 지었다

 

낚시바늘에 걸려 물 밖으로 드러나는

감성돔 꼬리지느러미가 그리는 파문처럼

절도범은 인근 방파제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장발장 수달



45.삼포(三抛) 열차- 오봉수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는 청년들은

 

명문대,정규직이란

황금티켓을 예매도 못하고

포기를 등에 메고

삼포 열차에 무임승차한다

 

열차 안은

연애 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로

만석이라 숨쉬기도 빡빡하다

 

승객들의 숨 막히는 항의도 무시한 채

삼포(三抛) 열차는 흔들림 없이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46.우산 수리공 K 씨 - 오봉수

 

요즘 세상에 돈도 안되는

우산을 왜 수리하냐고

남들이 핀잔을 주지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매일 출근한다

 

파독 간호사인 언니가 준 우산

군대에서 의문사한 외아들이

휴가 때 사준 우산

광산에서 매몰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우산

 

K 씨는 우산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고 고장 난 그리움을

말없이 수리한다



47.공존 - 오봉수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

욕심 없는 쪽빛 바다

올망졸망  떠  있는 섬

고기 잡는  어선들

길잡이 하얀 등대

춤추는  갈매기들

함께 있어야 한 폭의 수채화다.



48.맨발 - 오봉수


목련꽃 한 송이

살포시 내려앉는

봄비 오는 날


반쯤 열린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원양어선에 몸을 실은 정든 님이

한 손에 호두과자를 들고

언덕 너머  비를 맞으며

자박자박 걸어오고  있네요


우산을 챙기려다가

모른 척 함께 하고 싶어

맨발로  달려갑니다





49.단장(斷腸) - 오봉수


찬비 오는 날

둥지를 감싸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먹이부족으로


셋째는  실수인 척 밀어버리고

넷째는  밖에 물어다  버렸다


왜가리는

비 오는 날

앙가슴을  부리로 치며

굵은 눈물을 떨군다 





<콘크리트 폭포 사진> 


50.단절 - 오봉수


도심 속

콘크리트 폭포는

철옹성처럼

물고기들의 질주본능을 막고

차디찬 시멘트로

사람들의 심장을 굳게 만든다




51.음주운전이라는 이름의 열차- 오봉수


처음부터 타지 말았어야 했다.

 

자의든 고의든

당신이 만약

음주운전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탔다면

승차권을 환불 받을 수도 없고

중간에 뛰어내릴 수도 없다

 

환승이 불가한

지옥행 음주운전 열차    



52.직장 협의회 - 오봉


직협은

직원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침묵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직협은

과거의 악습을 타파하고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앞장서야 하고

희망찬 내일로 다 함께  발돋움해야 한다


직협이

전투력을  상실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무관심의 늪에 빠지면

동창회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53.동전의 충고 -  오봉수


평생 기부라곤  모르고

스크루지 영감을 닮은 65년생 아저씨가

돼지 저금통에 100원짜리 동전을  가득 채웠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


돼지 저금통에서

1965년 발행  100원짜리 동전이 우측 콧구멍으로 기어 나오더니

" 친구야  좀 베풀고 살아라."

1980년 발행  100원짜리 동전이 좌측 콧구멍으로 기어 나오더니

"아저씨  기부 좀 하세요."

1950년 발행 100원짜리 동전이  등짝으로 기어 나오더니

" 젊은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기부 좀 해라."


때로는  힘없고 약한 자의 충고도  삶에 도움이 된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65년생  아저씨는  저금통의 18.200원을 

불우이웃 돕기 하라며 은행에  기부했다 


참고: 특별하게 65년생 아저씨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를 만들다 보니  65년생을 끌어 온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54.강제 징용 소년의 일기 - 오봉수

 

뼈도 살도 여물지 않은 나이에

밥도 주고 돈도 준다는 당근과

가족들을 거머리처럼 괴롭히겠다는 채찍에

벙어리 짐승처럼 끌려갔던  지옥의 군함도

 

목숨 걸고 밤낮으로 노역을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굶주림과

갱도 속에 산 채로 묻힐 수 있다는 두려움

 

집단 수용소 밤하늘 별도 반짝이길 포기하고

꿈속의 고향과 부모님은 점점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갱도 속의 검은 흙은 입속으로 떨어져 숨구멍을 막지만

 

명분 없는 침략전쟁의 끝은 존재할 것이고

노역으로 다치거나 병든 사람들의

피고름과 눈물을 닦아주어야겠다

 

대한 독립은 머지않아 올 것이고

고향땅의 흙을 다시 밟을 것을  꿈꾸면서 힘을 내야겠다

살아남아서 강제징용의 참혹성과 전쟁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경계를 삼을 것이다



55.꽃이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 - 오봉수


꽃이 휘청거린다

하루 종일 비틀거린다


봄 냄새가 아닌

사람 향기가 아닌

술에 취한 것이다


꽃이나 사람이나

만취하면 아스팔트의 무법자

술 냄새가 나는 꽃은

이미 꽃이 아니다


꽃이라도 음주 운전은

용서받을 수 없다



 56.반대로 살기  - 오봉수


산책을 할 땐  뒤로 걸어가기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글 쓰기

왼손으로 야구공 던지기

가슴이 아닌 등으로 선풍기 바람세기 


사람의 근육은 골고루 사용해야 

안정되고 건강하다


내가  짝사랑 하던 사람도

반대로  살면 

참 좋을 텐데.



57.태풍- 오봉수


난리 통에

큰 아들은 인민군에

작은 아들은 국군에


모진 목숨을 녹슨 손수레에 싣고

경로당을 찾은 박 씨 할머니


국회의원 공천 뉴스에

양파를 다듬으며 독한 소리를 내뱉는다


좌파든

우파든

한 번 야무지게

싹 쓸어버려라


58.태풍이 올라오면 - 오봉수


태풍이 올라오면 

고독을 즐긴다면서  혼자서 갯바위에서 낚시하거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며 지리산 계곡에서 야영하거나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이라며 골프를 치지 맙시다


당신들을 구조한다고 공무원들이 너무 힘들고

국가적인 인력 및 예산 낭비입니다


한 번쯤은 가족들과 함께 모여 앉아

자연의 위대함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가슴속에 찐하게 느껴 봅시다. 


59.호로새끼 - 오봉수

 

뻐꾸기 핏줄이지만

뱁새 둥지에 숨어 들어와

뱁새의 알보다 먼저 태어나

둥지 밖으로 알들을 밀어낸 후

어미 뱁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본능에 충실한 뻐꾸기 새끼




60.연필깎이 - 오봉수


갑자기 힘을  빡 주면  부러지기 쉽다


부패의 흑심은 청렴의 연필깎이로

음주 운전의 유혹은 가족 사랑의 연필깎이로 

금품 수수의  손길은 초심의 연필깎이로


사부작사부작

한 번씩 점검하듯이

조금씩 깎고 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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