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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봉수 11시간전

<시집> 슬퍼도 황제처럼(10.끝)  

시 15편:  상도덕은 지켜야 한다 외 14편

36.상도덕은 지켜야 한다 - 오봉수


상도덕은 기본이다


밪줄에 묶여 매질을 당하는 사람에게

군중속에 숨어 있다가 갈라진 등의 상처에

왕소금을 뿌리지 말라

앞에서 뺨을 때리는 사람보다

등 뒤에서 칼을 던지는 사람이 더 잔인하다


차를 타고가다가

죽은 동물을 발견하면

도로 밖으로 치워주지 못 할 망정

재미로 밟고 지나가지 말라

자꾸자꾸 밟히면 영혼까지 아프다


갑질 상사에게 욕을 먹었으면

상사에게 저항하든지 따져야지

그 스테레스를 풀기위해

부하나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 하지 말라 


자식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부모의 공덕을 의심해봐야 한다

타인의 눈물로 쌓아올린 부모의 성공은

자식의 운까지 잘라 먹는다


기본만 지켜져도 세상은 살 만 하다



37.애무는 없고 삽입만 있는 시대 - 오봉수


과정은 중요치 않아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

명문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인성교육보다는 쿠데타 같은 학원이 필요해

취업과 승진을 위해서는

공정의 소총보다는 탱크처럼 딴딴한 인맥이 중요해

실패하면 역적!

성공하면 혁명!

애무는 없고 삽입만 있는 시대는

너무 빡빡하고 건조해!



38.진삼선* 열차는 달리고 싶다 - 오봉수


사라진 것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추억과 애정이 온몸에 묻어있지만

경제적 논리로 사라진 것은

더욱 그러하다

진주에 통학하던 침목처럼 여문 삼촌은

요양병원에 입소했고

삼천포역 개찰구에서 행상을 하던 숙모는

사그라지는 목련꽃처럼 가물가물 하다

삼천포항구 만선의 꿈을 싣고

실안 낙조의 금빛 설레임을 싣고

삼천포대교 상괭이의 은빛 웃음을 싣고

바다케이블카의 초록빛 낭만을 싣고

기적 소릴 되새김질하며

우주항공도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진삼선 열차


<진삼선 열차: 예전 경남 진주시와 경남 삼천포시를 연결한 열차> 



39.경찰시계는 불기소 처분 할 수 없다 / 오봉수

 

인생은 짧고

하루는 고장 난 시계마냥 느리고

예술은 영원하고

밤은 화려하지만 고독하고

112순찰차의 경광등은 쪽잠도 허락되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잠든 시간에도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삶의 좌표를 분실한 길 잃은 어린 양을 태우고

꿈과 희망이 춤추는 보물섬으로 째깍째깍 달려간다


경찰시계는 불기소 처분 할 수 없다




40.압착- 오봉수


그리움을 못 이겨

커피 자판기를 만났다

밀크커피 버튼을 눌렀으나

커피가 나오지 않아 고개를 숙여

종이컵이 나오는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순식간에 나는 자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외로움에 지친 그녀도

커피 자판기를 만났다

밀크커피 버튼을 누르자

드르륵드르륵

자판기 속에서 내 몸이 압착되어 분해되었다


종이컵 바닥에 엎드린 나

그녀는 수줍게 커피를 마신다

그녀의 심장 속에 난 영원히 머무른다




41.반야사장독 - 오봉수 


수국이 탐스럽게 활짝 웃는

반야사에는 장독도 참선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철 정진 중이다


중생들이 흘리고 간

애욕과 물욕을

몰래 주워와


둥그런 뱃속 가득히

발효시키면서

묵언 수행 중이다



*반야사: 수국이 아름다운 경남 사천시 남양동 소재 사찰





42.파쇄기 - 오봉수

 

수치스러웠던 마음

부끄러웠던  마음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

 

머뭇거리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쫙 밀어 넣어 갈아버려라

 

정년퇴직 때까지

끝까지 버텼던 당신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고개숙이다  이미지 사진>

43.고개 숙이다 - 오봉수



한가로운 가을 들판

잘 익은 벼가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알곡은

농부의 고독한 눈물을

한가득 품고 있기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농부는 항상 미안했다

벼도 항상 미안했다 



44.파문 - 오봉수

 

 

달수네 횟집에 간밤에 도둑이 왔다 가고

아침부터 경찰들이 와서 현장 사진을 찍고

용의자 상대 탐문수사를 하였다

 

피해품은 강원도에서 군 생활하던 막내아들 휴가를 위하여

수족관에 모셔둔 횟감용 40센티미터 대구 1마리다

달수는 런닝을 뒤집어 입은채 입에 죽창을 물고

도둑놈을 잡으면 요절을 내서 갈아 마시겠다 면서

주변 횟집을 빙빙 돌며 공포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범인은 횟집에 지문과 유류품을 전혀 흘리지 않았고

유일한 단서인 수족관을 비추는 무겁고 지루한

CCTV 분석 작업이 시작되었다

 

범인은 새벽에 홀로 겁도 없이 횟집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전광석화처럼 수족관의 대구를 제압한 후

젖은 양말처럼 축축하게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영상을 확인한 달수와 경찰들은 게슴츠레한 웃음을 지었다

 

낚시바늘에 걸려 물 밖으로 드러나는

감성돔 꼬리지느러미가 그리는 파문처럼

절도범은 인근 방파제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장발장 수달



45.삼포(三抛) 열차- 오봉수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는 청년들은

 

명문대,정규직이란

황금티켓을 예매도 못하고

포기를 등에 메고

삼포 열차에 무임승차한다

 

열차 안은

연애 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로

만석이라 숨쉬기도 빡빡하다

 

승객들의 숨 막히는 항의도 무시한 채

삼포(三抛) 열차는 흔들림 없이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46.우산 수리공 K 씨 - 오봉수

 

요즘 세상에 돈도 안되는

우산을 왜 수리하냐고

남들이 핀잔을 주지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매일 출근한다

 

파독 간호사인 언니가 준 우산

군대에서 의문사한 외아들이

휴가 때 사준 우산

광산에서 매몰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우산

 

K 씨는 우산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고 고장 난 그리움을

말없이 수리한다



47.공존 - 오봉수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

욕심 없는 쪽빛 바다

올망졸망  떠  있는 섬

고기 잡는  어선들

길잡이 하얀 등대

춤추는  갈매기들

함께 있어야 한 폭의 수채화다.



48.맨발 - 오봉수


목련꽃 한 송이

살포시 내려앉는

봄비 오는 날


반쯤 열린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원양어선에 몸을 실은 정든 님이

한 손에 호두과자를 들고

언덕 너머  비를 맞으며

자박자박 걸어오고  있네요


우산을 챙기려다가

모른 척 함께 하고 싶어

맨발로  달려갑니다





49.단장(斷腸) - 오봉수


찬비 오는 날

둥지를 감싸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먹이부족으로


셋째는  실수인 척 밀어버리고

넷째는  밖에 물어다  버렸다


왜가리는

비 오는 날

앙가슴을  부리로 치며

굵은 눈물을 떨군다 






50.단절 - 오봉수


도심 속

콘크리트 폭포는

철옹성처럼

물고기들의 질주본능을 막고

차디찬 시멘트로

사람들의 심장을 굳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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