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편: 골무꽃, 은행나무, 꿈꾸는 자전거
4.골무꽃 - 오봉수
치매로 요양원 가는 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모든 것을 내어주던
등 굽은 엄마의 자리
낡은 골무가 웅크리고 있었다
골무 끼고 꿰매 주던 양말도 울고
창피하다던 양말 주인도 울었다
골무 머리맡에 두고
달빛과 더불어 뒤척이다가
늦게 잠들었다
바늘 끝 같은 서러움
새벽잠 깨어보니
온 방 가득 골무꽃 따끔따끔 피어 있었다
5.은행나무 - 오봉수
내 나이를 나도 정확히 모른다
사람들은 대충 천년을 살았다고 한다
매년 영양제와 외과수술로 생명을 연장하지만
솔직히 나는 순리대로 살고 싶다
나도 이젠 누군가의 나무의자가 되면서
한 줌의 흙처럼 잊혀지고 싶다
폐경에 가까운 몸으로
매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난 매일 밤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새가
가을 냄새처럼 그리운 첫사랑을
데려와 앉았다가 사라지는 꿈을 꾼다
6.꿈꾸는 자전거 - 오봉수
주공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
고장 난 늙은 자전거가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계속된 야근과 불면으로 전조등은 희미해지고
아파트 대출금과 학자금 상환에 밤낮없이 뛰어다닌 결과
앞바퀴는 닳아서 펑크가 나고
기름칠 덜 된 핸들은 관절염으로 방향감각을 잃었다
씽씽 달리고 어깨에 힘이 있을 때는
가보(家寶)처럼 집 안에 있었지만
몸통에 하얀 꽃이 피자 명예 퇴직자처럼 집 밖으로 밀려났다
자물쇠가 없어도 도난 걱정은 없으며
아파트 꼬맹이들이 막대기로 펑크 난 바퀴를 찌르고
돌멩이를 던져도 경음기조차 울리지 않는다
밤이면 밤마다
깐깐한 아파트 관리소장이 민원을 핑계 삼아
고물상에 팔아 버릴까 봐 두렵지만
살얼음이 녹고 봄바람을 만나면
별을 싣고 들꽃향기 맡으며
비포장 자갈길을 흙먼지 날리며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