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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봉수 Jul 17. 2024

시집<슬퍼도 황제처럼>(4)

시 3편: 장날의 시내버스, 삼천포 폐역, 용주사 백일장

10.장날의 시내버스 - 오봉수

 

승객보다 손수레가 더 많은

장날의 시내버스는 항상 시끌벅적하다

할머니들의 웃음소리에 정차 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도

승객들은 목적지에 감각으로 잘 내리고

등교하던 학생들은 소금끼로 바닥이 미끄러워도

조심조심 걸어가면서 버스 손잡이를 잘 잡고

기사 아저씨는 느릿느릿 할머니들이 내려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중학생들은 할머니들의 짐과 손수레 내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도와주고

마스크를 깜빡한 사람이 타면 마스크도 빌려주고

장날의 시내버스는 조급함과 욕심이 없다

배려심과 인정으로 항상 만원


11.삼천포 폐역 - 오봉수

 

1990년 1월 20일

진삼선 종착 삼천포역은

노산공원 앞 갯벌에 노을처럼 전역하였다

 

벙어리 짐승처럼 기적소리 도둑맞은 열차는

생의 추억과 웃음을 잃고

역사가 있었던 자리

복싱체육관의 구멍 난 샌드백만 임대로 들어 앉았다

발길 뜸한 시어머니 같은 섬이 되어버렸다

 

갈매기도 찾아오지 않는 플랫폼

옛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철로가 있었던 건너편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

눈빛을 철로 쪽으로만 두고 하얗게 피었다

 

기다림에 지친

수절한 늙은 모과나무

말라붙은 잎을 빈 플랫폼에 떨어뜨린다


<진삼선: 예전 경남 진주시와 경남 삼천포시를 운행하던 열차>




12.용주사 백일장 - 오봉수


용주사* 작은 폭포 아래

물웅덩이가  왁자지껄하다


아기 물방개들은

바위틈에서 쉴 새 없이

원고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목어(木魚)는 물웅덩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탁, 탁, 탁

주지스님이 죽비로 시제를 발표했다


공양간에 세 들어 사는 고양이는

간식으로 쑥절편을 준비하고

눈치 빠른 난 물웅덩이에 뛰어들어

연필이 되었다 



*용주사: 경남 사천시 남양동에 소재한  작은 폭포가 아름다운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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