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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봉수 Jul 17. 2024

<시집> 슬퍼도 황제처럼(5)

시 3편: 뻐꾸기 삼촌, 우체통, 고장 난 아내

13. 뻐꾸기 삼촌 - 오봉수


한국전쟁 때

인민군  총알받이로 끌려가서

오른팔을 잃은 달수 삼촌은


뱃가죽이 달라붙은 가난과

아들 없는 형수의 부탁으로

막내아들을  큰집으로  보냈다


탁란 한 뻐꾸기가

우는 계절에는


하루 종일

앞 산을 보면서

왼손만 말아쥐면서 불러본다


"뻐꾹, 뻐꾹, 뻐꾹"



14. 우체통 - 오봉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숨이 끊어질 때까지

팽목항 방파제에서

착호갑사처럼 기다릴 것이다

 

진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해풍에  잊혀지고 

살갗이 벗겨져도 

피눈물을 흘리면서

진실의 손편지를



15. 고장 난 아내 - 오봉수

 

아내 고향은 붉은 비가 곡괭이처럼 내렸던 광주

 

전라도에서 군복무한 경상도 남자와 결혼해서

시험관 시술로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녀 오빠는 전남도청 앞에서 금기된 이름 석 자 외쳤다가

강철로 만든 늑대거미의 바퀴에 깔려 죽었다

 

오빠를 죽인 늑대거미는 동굴로 돌아가지 않고

구경하고 있던 그녀의 놀란 입으로 들어갔다

거미는 굶주린 이빨로 줄담배 최루탄을 쏘면서

겁에 질린 심장을 포승줄로 묶고 간을 갉아먹었다

 

가족의 죽음에 침묵한 대가로

그녀는 학창 시절 계절마다 새 운동화와 장학금을 받았으며

장모는 편육(片肉)처럼 죽은 아들 못 잊어

세상 모든 거미를 죽이기 위해 모기약을 뿌리며 산과 들로 헤매다가

마을 이장의 신고로 정신병원에 응급입원 조치되었다

 

그녀는 오빠의 죽음에

끈적끈적한 죄책감을 숨긴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매년 5월이 되면

그녀는 마룻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주위를 경계하면서

그날의 두려움과 침묵을 토해내려고 물구나무서기를 반복하면서

가랑가랑 헛구역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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