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시골 촌놈 공수의 건달이 되다.

by 책한그릇

09.7.23일 그날은 세상이 나를 진정한 남자의 길로 인도하는 날이다. 내 나이 21살 아직 더 즐기고 싶었지만 조국은 나를 원한다고 했고 나는 그런 조국에 보답하기 위해 남자라면 한번쯤 도전하는 특전사에 지원했다. 입대하는 날은 날도 좋았고 나도 좋았고 나를 보내는 부모님 얼굴도 좋아 보였다. 드디어 밥그릇이 줄었다나 뭐라나 입대하는 날에는 항상 낙하산을 탄다고 했고 그날도 입영하는 우리들 머리 위로는 낙하산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낙하산을 보며 내 가슴이 불타는 걸 느꼈고 너무 뜨거워서 조교에게 소화기 위치를 묻다가 교육대 운동장에 묻힐 뻔했다.


입소식 10분 전, 입소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퇴영해야 했기에 나는 부모님께 세상 마지막 인사를 올렸지만 아버지는 화장실을 가시고 엄마는 낙하산 구경만 하다가 나의 인사를 못 본 체 퇴영하셨다. 그때 왜 인사 안 받냐고 소리치면서 엄마손 잡고 같이 나갔어야 했는데...


특전사 부사관이 되는 길은 명절 고속도로를 나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하루는 점심에 물냉면이 나왔는데 면발은 얼마나 탱탱하면 떨어지지 않았고 손으로 뜯어먹어야 했다. 그때는 음식 같이 생긴 모형도 씹어 먹을 수 있는 배고픔의 시절이라 뭐든지 맛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직각식사로 인하여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올 때쯤에는 숟가락의 쇠맛이 나의 미각을 뒤덮었다. 숟가락 맛보는 건 내가 세계제일 미슐랭이다.


훈련은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들었다. 어제의 전우가 내일은 민간인이 되어 " 형씨 나 먼저 나가요. " 라면서

퇴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내 같이 나가고 싶지만 입대 전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진짜 남자가 되어 오겠다 큰소리쳤기 때문에 나갈 수 없었다. 그놈의 허세와 입이 방정이다. 이거 안 해도 여자 안되는데 나갈까 생 각을 매일 수십 번씩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낙하산 훈련이 있는 날 교관은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을 선별했고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근데 선별할 때 하필 뒤에서 졸다가 조교에게 걸려 얼차려를 받다가 선별을 못했고 그날밤 선별되어 심리치료를 받고 온 전우에게 물어보니 밤에 낙하산 모형탑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냥 다섯 번씩 강하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안 가길 잘했다 분명 심리치료를 한다 했는데 특전사는 심리치료도 특전사 했다


시간이 지나고 특전사 부사관 교육이 끝날 때쯤 신종플루 유행으로 인하여 임관(수료)식때 오셔야 할 부모님들을 못 오게 했다고 했다. 부모님께 만나면 왜 그날 나를 기절시키더라도 못 가게 했어야지 하면서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싶었는데 못 오신 다고 하니 전우랑 같이 울었다. 엄마 보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고 울음소리를 들은 조교도 덩달아 엄마보고 싶다고 같이 울다가 교관에게 걸려 셋이서 같이 얼차려를 받았다. 조교도 사람이었다.


더시간이 지나고 이제 모든 교육이 끝나고 자대로 가는 날 나는 운 좋게 서울 부대로 배치되었다. 서울 라이프의 꿈을 안고 부대로 갔지만, 그곳은 괴물소굴이었다. 체력괴물, 사격괴물, 회식괴물, 그냥 괴물, 성격파탄 괴물등 온갖 괴물들이 있었고 나는 그 괴물들에 맞서는 용사인 줄 알았지만, 그 괴물들의 졸개였다. 그리곤 나도 괴물이 돼 가고 있었고, 나는 괴물들 사이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게 나의 군생활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군생활은 아직 끝이 안 났지만, 지금은 괴물대신 착한 악마로 불려지고 있다. 결국.... 악마냐.....

keyword
이전 08화아르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