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영화 주역

천만관객을 이끌다

by 책한그릇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의 데뷔 영화가 떠오른다. 나의 영화데뷔는 중학생 때 아역 배우였고 경쟁률도 무시 못했다. 3:1이라는 힘든 경쟁률을 뚫고 친구와 함께 액션 영화인줄 알았는데 전쟁영화를 찍었다. 처음엔 무슨 내용인지 그리고 누가 주인공 인지도 몰랐다. 다만 영화를 우리 동네에서 찍었고 때마침 배우들이 부족해서 현장 면접으로 뽑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와 영화 촬영장으로 갔고 배우 대기실을 찾았고 내 이름이 적혀있는 의자를 찾았지만 스텝분들이 바빠서 따로 못 챙겼구나라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는 그 의자와 같은 의자만 봐도 PTSD가 올정도의 욕을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아서 훔쳐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와 내 친구는 대기실 없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스텝분이 우리 이름을 부르더니 누런색 옷을 주고는 입고 공터로 가라고 했다. 드디어 영화 데뷔이다. 옷을 입고 공터로 가더니 동네 아는 형부터 옆집 분식집 사장님, 내가 한동안 짝사랑했던 그녀까지 같은 옷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짝사랑 에게 멋지게 인사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 났고 그날 다짐했다. 영화 대박 나면 고백하기로. 시간이 지나고 스텝분이 와서 우리를 집중시켰고 우리의 배역을 불러주었다. 북한군 시체 1, 시체 2, 시체 3, 시체 4

" 응? 이거 좀비영화 인가? " 의심을 했지만 곧 나는 북한군 시체 28번이라는 배역을 받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 영화 찍는다고 인구 3만도 안 되는 동네에 자랑이란 자랑은 다했는데 시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곤 스텝은 우리 좀비부대를 이끌고 분장팀한테 갔고 그곳에서 피보다 진한 가짜피와 흙을 우리 몸에 덕질덕질 칠하고 있었고 나는 절대 안 할 거라고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이거 안 할 거라고 다짐했지만 그 순간 내 눈에 흙이 한 움큼 들어와 눈물을 쏟아내며 해야 했다.


연기코칭도 단순했다. 최대한 시체처럼 누워서 한숨 자라고 했다. 이런 코칭이면 그냥 코칭스텝을 영원히 재우고 싶었다. 그렇게 촬영은 시작되었고 나와 내 친구 분식집 사장님 그리고 나의 짝사랑까지 우리는 시체로 누워 각자 혼신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지금 무슨 기분으로 연기를 할까?, 분식집 사장님은 무슨 레시피를 생각하고 계실까?, 나의 짝사랑은 시체인데도 이쁘구나..... 전쟁영화답게 각종 효과음과 화약냄새 그리고 폭발까지 웅장했고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더 시체연기를 주연급으로 열심히 했다.


감독 아저씨의 컷소리가 들렸고 우리 좀비 군단은 서로 박수를 보내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내 친구는 배우에게 사인받으러 간다고 사라지고 분식집 사장님은 폭탄 떡볶이를 개발하신다고 떠나시고 나의 짝사랑은

몇 번 인지도 모르는 다른 시체의 팔짱을 끼며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나의 짝사랑 시체여 잠시나마 행복했어요. 이렇게 나의 시체씬이 끝나고 여성직원분이 입구에서 출연료 받아가라고 하셨고 출연료를 보고 나는 출연료 협상을 하려다 눈에 흙이 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출연료를 받고 촬영장을 떠났다.


출연료는 시체 역할 치고는 너무 적었고 결국 분장한 피와 눈에 들어간 흙을 지우러 가야 했던 목욕탕 입장료와 바나나우유 그리고 삶은 계란을 사 먹고, 그날저녁 같이 출연한 분식집 사장님 가게에서 라면과 폭탄 떡볶이

2인분을 사 먹고 나니 동결되었다. 그래도 떡볶이 값은 안 받을 줄 알고 2인분 시켰는데... 같은 시체끼리 너무한 거 아니오라고 말하려다 미처 지우지 못한 사장님의 땀보다 진한 가짜피에 마음이 약해져 지불했다.

이후 나는 연기에서 은퇴를 선언했고 몇 년 뒤 나의 데뷔작인 영화가 개봉되었고 그 영화는 대박이 났고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우리 시체 군단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천만관객을 동원한 배우였기 때문에 그 영화에 애착과 연민이 생겼고 가끔씩 다시 보면서 아내와 딸한테 자랑을 하곤 했다. 살면서 천만명이 내가 편집된 영화를 볼 줄이야 나는 천만명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저는 이제 은퇴했으니 기억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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