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임밍아웃의 타이밍이란
좋아하는 노래 중 지금의 타이밍과 잘 맞는 노래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그 후 회복에 시간이 들겠다는 그의 노래가 임신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1만 시간이 필요하단 법칙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대신 새로운 일상을 찾는 로꼬의 가사처럼,
내게 찾아온 천사의 생명을 제대로 확인하는 일에도 시간이 든다.
임신테스트기 2줄 확인 후 기쁜 마음도 잠시, 언제 산부인과를 가야 할지 확인했다.
임신테스트기의 2줄보다 확실한 산부인과의 임신확인서.
이 임신확인서를 받기 위해서 보통 본인의 생리 예정일+1주일 후에 병원을 방문하여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산부인과마다 다른 것이,
아기집만 확인해도 확인서를 주는 곳이 있고
아기의 심장소리까지 들은 후에야 임신 확인서를 주는 곳도 있다.
그 이유는 임신 초기에 생각보다 유산의 확률이 높다는 것.
"모든 임신의 15~20%는 초기에 자연 유산되며, 산부인과 학계도 임신 12주 이전의 유산은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견해다. 또 자연유산의 절반 이상은 태아의 유전자 이상이 원인이라는 것"
- 한경 사회 지면 참조.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02010813161
임신초기 출혈 절반이상 문제없어 .. '유산'에 관해 알아둬야 할 8가지, 사회
www.hankyung.com
아직은 젊다고 장담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건 모름지기 알 수 없고,
인생의 비극은 언제나 나이와 사람을 가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네이버 주수 계산기'로 병원에 갈 날짜를 정하는 일이었다.
생리 예정일 +1주일이 지나면 보통 4~5주로 병원에서 질초음파 진행 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다.
생리 예정일 +2주일이 지나면 보통 5~6주로 아기집 확인+ 잘하면 심장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임신테스트기에 2줄을 확인해도 아기집이 없다면, 화학적 유산
아기집을 봐도 심장 소리를 못 듣는다면, 계류 유산
당장 임신테스트기의 2줄만 봐도 임신했다고 엄마 아빠와 친한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만에 하나라는 의심과 불안 때문에 쉬이 얘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선은 여유롭게 6주 3일을 계산하여 병원에 가려고 계획했고,
쿠팡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여유 있게 추가 구매하여 매일 아침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하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직업 특성상 오래 앉아 있는 데다 월말엔 특히 바쁜데, 오래 앉아있던 탓인지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그날 저녁 내내 아랫배가 극심한 생리통을 하는 것처럼 아팠다.
불안감이 커졌고 결국 다음 날 오전 바로 집 앞의 산부인과를 찾았다.
(쿠팡에서 넉넉히 산 2주 치 임신테스트기는 그대로 화장대에 남아있다..ㅠ)
그날 아기집을 봤고 자궁에 별다른 이상은 없으며, 4주 3일로 예상되고 임신확인서를 바로 발급받았다.
너무나 작고 작은 존재였다. 그래도 아기 천사가 내게 찾아왔다.
난황을 확인하고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2주 후에 정기검진 예약을 했다.
또다시 시간이 드는 일이 시작됐다.
초음파로 확인하고 임신확인서를 쥐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실감이 되지 않았다.
뭐든 최악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대비하는 계획을 하며 살아왔던 인생이다.
임신과 출산은 (나아가 육아까지) 대비는 커녕 예상도 어려우나 온 마음을 다하는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그저 별 일 없이 건강하기만을, 무탈하게 쑥쑥 자라기만을 바랐다.
초음파를 확인하고 1차 임밍아웃은 가족들에게 했다.
친정에 전화를 걸어 장난스럽게 물었다. 요새 뭐 좋은 꿈 꾼 적 없냐고.
눈치 빠른 엄마는 '임신했니'라고 물었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되셨어요'라 답했다.
어리고 고집 셌던 엄마 아빠의 딸이 어느새 다 커서 결혼을 하고 애까지 낳게 되었단 말을 하게 됐다.
기분이 묘하면서도 벅찬 감정이었다. 그리고 시댁에도 얘기를 했다. 배우자의 태명을 따라 아기의 태명을 지었다는 얘기를 듣고 좋아하셨다. 친정에선 축하 꽃을 보냈고 몸보신하도록 추어탕을 사줬다. 시댁에선 장어를 10만 원도 넘게 사주며 몸보신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줬다. 진심 어린 축하를 받자니 뿌듯하면서도 기뻤다.
2차 임밍아웃은 예상치 못하게도 회사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친한 친구들에게 얘기하려고 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기 심장 소리를 듣고서 알려주고 싶어 꾹 참았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는 위드 코로나에 맞추어 회식 약속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임산부임을 얘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난처한 상황이 생겼다. 비행기를 탈 일이 생긴 것.
12주 이내일 경우, 법적으로 단축근무 2시간도 쓸 수 있기 때문에 기왕 이렇게 된 거 빨리 임밍아웃하자 했다.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비행기도 탈 일도 취소되었으며, 술자리도 맘 놓고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임밍아웃 다음 날부터 단축근무와 재택근무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 좀 더 편한 근무 생활을 했다.
잠시나마 '겨우 5주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배려를 받아도 되나'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바보 같단 걸 깨달았다. 5주 밖에 안 된 아주 작고 소중한 아기이기 때문에 조심하고 안정할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게 맞다는 걸.
또한, 아직 닥치지 않은 불안의 가능성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미루며 걱정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앞으로 10달 동안 예측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나와 배우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10달 품을 아기가 3달 만에 나오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 그러면 큰일이지ㅎㅎ)
그저 '또 시간이 들겠지' 란 노래 가사처럼 매일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기며 보내는 게 엄마로서 아기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가장 좋은 태교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급해하지도 너무 불안해하지도 않되, 나름의 애정과 최선으로 매일 행복을 느끼는데 시간을 들여보기로 했다.
그 노력은 아주 작은 실천이었다. 오늘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잊지 않는 것.
그래서 매일 자기 전에, 배우자에게 물어본다. '오늘 가장 행복했던 일 3가지'가 무엇인지.
배우자는 단순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을 때 좋다고 했다.
또, 의외로 놀라웠다. 내가 행복해 보일 때 좋다고 했다.
예를 들어 내가 먹고 싶은 걸 맛있게 잘 먹었을 때 행복했고, 내가 갖고 싶었던 걸 갖고 즐거워할 때의 모습을 보면 좋다고 했다.
나는 배우자와 퇴근 후 저녁 산책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좋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1주일 정도 '오늘 가장 행복했던 일 3가지'를 나누면서 느낀 건,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불안감이 사라졌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이렇게 하루하루 잘 보낸다면, 행복한 하루로 10달을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음의 일은 마음이 해결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한 건, 따뜻한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일 지도.
물론, 그 마음을 잘 달래고 위로하며 10달을 보내는데 시간이 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