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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작가 Nov 27. 2021

그래서 뭘 먹어야 좋다고?!

4. 커피와 죄책감 사이

아래와 같은 검색 시, 유머스러운 자동완성을 볼 수 있다.

뭐든지 먹어서 해결하려는, 음식에 진심인 마음을 닮은 자동완성 검색어.!

심지어 아플 때도 말이다, 뭘 먹어야 좋을지 검색해본다 :)

사실 우리 집 가훈도 '잘 먹고 잘 살자'인 걸 보면, 나 역시도 먹을 것엔 진심이 되었다.!

임신 전에는 식탐은 전혀 없는 입 짧은 이 중 한 명이었다. 그저 삼시세끼 때 맞춰 배가 차는 식사만 하면 된다 여겼다. 어차피 입이 짧아서 음식을 많이 먹지도 못했고, 딱히 먹고 싶단 생각이 드는 음식도 얼마 없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나니 그날 하루의 기분이 매 끼니 음식에 달리게 되었다.ㅠ

입덧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극심한 입덧이나 토덧, 체덧은 아니었다. 기름지거나 느끼한 음식 냄새를 맡으면 울렁이는 정도.

또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도 금방 울렁였다. 공복엔 배가 찢어질 듯이, 배가 아플 정도로 허기졌다.

막상 음식을 먹으면 몇 숟갈 뜨지 못한다. 입은 짧지만 공복은 못 견뎠기에...

위가 빌 틈 없이 자주 음식을 먹었고, 먹고 나면 잠들기 일쑤였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위가 더부룩하니 안 좋아지는 기분이었고 체력도 떨어지는 듯했다.


아기에게 영양분이 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프라이팬에 기름만 둘러도 곧 토할 듯 울렁였다. 대신에 반찬가게에 가서 녹색 나물과 두부 등 반찬도 사다 놓았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 뱃속의 아기가 원치 않는 듯했다. 심지어 평소엔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들만 당기기 시작했다.

'매콤한 죠스 떡볶이와 마라탕, 신라면. 시원 깔끔한 물냉면과 오독오독 씹히는 크런키 초콜릿'


우리 집 대표 맵찔이가 매운 걸 원한다니...

항상 음식점에만 가면 이렇게 질문하고는 했는데 말이다.

"신라면보다 맵나요? 그거보다 매우면 다른 메뉴로 주문할게요!"

이렇게 맵기 조절부터 주문하던 사람이었는데, 또 매운 걸 먹고 속 쓰려서 뒹굴대다 다시 매운 걸 먹는다!


보통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 좋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내 몸도 금방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한 끼 밥상을 잘 챙겨 먹을 때면 내가 내 몸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신경 써준 기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맵고 자극적이고 밀가루 음식을 먹다 보니 묘한(?) 죄책감에 우울해지게 된다. 그날 기분이 음식 하나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비참하기도 했다. 특히, 매일 한 잔씩 즐겨 마시던 커피의 향긋함과 퇴근 후 맥주 한 잔의 시원함을 1년 넘게 미루는 것도 괴로웠다.

월요일 아침 나른한 출근길과 배부른 점심 이후 텁텁한 입안을 달래 줄 커피 한 잔이 아찔하게 고프다.

고단한 일상을 마무리하는 늦은 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벌컥벌컥 마시는 맥주 한 잔에 위로받는 시간도 아찔하게 아쉬웠다.ㅠ

'술은 안되지만 커피 한 잔은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카페 카운터 앞에서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메뉴판을 보다가도 결국엔 루이보스 차 한 잔을 주문하게 된다. 디카페인 커피 한 잔에도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아기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멍한 일상에 우울하기도 했다.

임신 초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기에 저녁 퇴근을 하고 나서도 활동적인 행동보다는 천천히 움직이고 30분 정도 산책하고 누워 있길 반복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게을렀던 일상이 없었다. 미리 한 달과 일주일의 할 일을 계획해서 행동하며 24시간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게 최우선 과제로 중요한 INTJ가 그저 울렁이는 입덧과 맘대로 되지 않는 식사를 하고 쪽잠을 자다 깨서 멍하니 누워있길 반복했기에. 모든 계획과 일상은 무너졌다. 퇴근하고 필라테스나 러닝을 하고, 자격증 공부와 글쓰기 취미를 갖던 바쁜 퇴근 후 라이프는 사라졌다. 그냥 하루를 천천히 보낼 뿐이었다. 더부룩한 잠꾸러기 일상에 지치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2주마다 쑥쑥 크는 아기 초음파를 보며, 작게 움직이는 아기의 움직임을 보며 느낀 벅찬 감정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잊게 해 줬다.

작은 아기집에서 난황과 작은 아기, 손과 발이 생겨서 꼼지락대기까지 성장한 아기의 모습


인간의 가장 솔직한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맘껏 누리지 못한다는 것.

이는 어쩌면 지독한 엄마의 내리사랑을 미리 수련하는 건 아닐지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닌 아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먹고, 아기를 위해 건강한 음식을 찾고, 아기를 위해 해로운 음식을 피하고. 나는 사회와 가족 안에서는 보호받는 임산부이지만, 내 몸 안에서는 한 몸을 나눠 쓰는 아기의 보호자로서 절대적으로 아기의 모든 걸 맞춰줘야 한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은 남은 평생 겪어야 하는 엄마로서의 숙명을 미리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10달간 훈련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지독한 내리사랑...

대부분 부모와 자식 관계는 지독한 내리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엄마는 평생 아이의 먹을 것과 입힐 것, 아이가 건강히 숨 쉬고 살아내며 아기의 남은 인생까지 평안을 지켜내고자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애쓸 것이다. 나 역시도 엄마로서 내리사랑의 준비를 하고 있단 깨달음이 들었다.

내 자식이 행복하게 잘 크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아기의 팔다리가 나오는 게 보이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단백질이 함유된 요플레와 건강한 샐러드를 사 온 나처럼.

당장 울렁이고 못 먹겠더라도 초음파 속 아기 팔다리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건강하게 잘 크도록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튼튼하고 무탈하게 잘 크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로서의 수련을 하는 중이다. 먹는 것에 진심으로 노력하며 계획하지 않는 일상을 찬찬히 음미하고,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한 하루에 아쉬워하기보단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련을 8주째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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