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작가 Sep 02. 2022

경우의 수

14. [6-8주 차] 자식이 아플 때

수학에서는 이런 내용이 있다.

경우의 수

'어떤 시행에서 특정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가짓수'를 뜻한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주사위를 던져서 짝수의 눈이 나올 경우는 2, 4, 6 세 가지이므로, 

이때 경우의 수는 3이다.


| 비단 수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경우의 수는 다양하게 활용된다.

첫째는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

최대 이익과 최소의 기회비용을 따져가며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을 고른다.

둘째는 의심스러운 현상을 직면할 때.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의 정보만 가지고 여러 경우의 가짓수를 고심한다.

최악의 상황까지 두루 살피며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하며 현실을 마주한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경우의 수를 따지며 역경을 대비한다.



육아 역시 만에 하나 일어날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게 된다.

특히나 아기가 아프거나 불편한 증상을 보일 때,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검색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어떤 병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될 만한 병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유사한 병의 증상은 어떻게 되는지

어쩌다 이런 증상이 생겼을지

어디가 얼마나 아플지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또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우리 아기는 태어난 지 47일 만에 감기에 걸렸다.

보통 신생아는 엄마의 면역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잘 아프지 않는다고 하지만, 병이 옮는 경우는 다르다.


배우자가 감기에 걸리고 1주일 만에 다 나으면서 아기가 바통을 이어받듯이 감기에 걸렸다.

그렁그렁하다 간혹 쌕쌕 대는 숨소리, 가래 끓는 기침, 재채기할 때마다 나오는 콧물을 보자 아연실색했다.

배우자가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1주일 동안 나도 아기도 증상이 없었기에 옮지 않고 지나갈 줄 알았다.

설령 감기가 옮더라도 내가 걸릴 줄만 알았지, 하필 작고 연약한 아기가 아플 줄은..


심지어 증상은 주말에 시작되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수시로 열을 체크하며 응급실을 가야 할지 말지 고심했다. 생후 3개월 미만의 영아의 체온이 38도가 넘는다면 당장 응급실을 가야 한다. 만약 열이 떨어지더라도, 열이 난 원인을 찾아야 하므로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나는 불침번을 서며 37.4도인 아기의 열이 더 오를지 틈틈이 확인했다.

미리 아기가 갈 수 있는 응급실과 병원을 알아보며 아기의 증상을 검색해봤다.


'만에 하나'로 시작된 경우의 수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처럼 경우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별일 없다면 감기. 다른 경우의 수로는 폐렴과 모세기관지염, 최악의 경우 백일해까지..

다행히 응급실에 갈 정도로 열이 나지 않아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소아과를 방문했다.

다급한 기분을 숨기지 못하는 내게 평온한 의사는 한 마디만 던졌다.

"감기예요."

아기의 감기는 낫는데 1-2주 정도 걸리며 약을 줄 테니 잘 먹이라고 했다.

혹여 지금의 여러 증상들이 다른 병으로 의심할 수도 있냐는 말에는 아닐 거라며 우선 지켜보자고 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근무하는 곳은 특유의 응대 온도가 있다.

잘 모르는 손님이 느낄 때는 막연히 불안하고 심지어 최악의 경우를 쉬이 생각하며 걱정하나,

잘 아는 직원은 평안하게 대꾸한다. 때로는 번거로운 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결과를 툭 던져주며.


병원 역시 마찬가지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업무처리 특성의 차이다.

조금이라도 다정하고 친절하게 모르는 부분을 설명 들으며 걱정을 덜고 싶어 하는 환자와

정해진 시간 내 진료를 하며 맡은 일을 확인하여 이상 없이 처리한 의사의 간극.

매일 흔히 보는 병을 확인하고 적절한 약물을 선택해 치료하는 건 의료진에겐 숨 쉬듯 익숙한 일이다.

병을 일로서 다루기 때문에. 하지만 환자들은 살면서 가끔씩 겪는 고통이기에 그 무게가 다르다. 

게다가 말도 하지 못하고 막힌 코를 스스로 풀지도 못하는, 작고 여린 아기에 아프다면..

부모의 속은 더욱 애가 탄다.


'만약 감기가 아니면 어떡하지.'

나는 1-2주 동안 면밀하게 아기의 이상 증상을 확인하며 검색하고 의심하며 가능한 질병의 경우의 수를 따졌다. 그리고 꼼꼼히 메모하고 촬영도 해두었다.

보통 병원은 아프면 증상을 말하면 되지만, 말을 못 하는 아기는 그 증상의 발현을 의사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사진이나 비디오로 촬영을 해가서 보여주면 도움이 된다.

쌕쌕 대는 숨소리와 부르르 떨리는 다리, 간혹 숨 쉬며 명치가 쑥쑥 들어가는 모양을 찍어두었고 

의사에게 보여줄 때마다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아직은 미숙한 아기의 신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왜 신은 아기에게 완전한 장기를 주지 않아서 이 고생을 하는지'

막힌 제 코를 풀지 못하는 아기의 콧구멍을 뚫어주며 나는 생각했다.


다행히 아기는 더 심해지지 않고 감기로 끝났다.

언젠가 아기가 아플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아플 줄 몰랐다.

아파서 힘들어하며 우는 아기를 보자,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아기는 매일매일 커가며 성장하고, 우리 역시 이런 경험들을 통해 매일 함께 배워간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부모로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예민하고 꼼꼼하게 아기를 파악해야 함을 배웠다.

신생아기는 이유 있는 울음이 더 많기에, 불편해한다면 그 이유를 파악해봐야 하고

함께 생활하는 한, 한 명이 아프면 전부 아프다는 걸 잊지 말고 공동 건강을 신경 쓰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지되 긍정을 잃지 말고 아기를 살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아기는 크면서 계속 아플 것이다. 여전히 미숙하고 계속해서 발달하는 중이기에.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성장하고, 때로는 넘어지고 아프면서 성장할 것이니.

아기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나이가 되기 전까지 부모는 아기의 불편을 해결해주는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

내 아기 한정 척척박사가 되어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적절한 응대를 할 줄 아는 부모가 될 수밖에.!

이전 09화 걱정을 사서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