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했던 E
E는 한때 연예인이었다. 한때는 비연예인이었다. 몇 년 후 그는 다시 연예인이 됐다. 연예계 활동을 잠시 쉬기로 했다거나 기나긴 공백기를 가진 게 아니라, 잠정적으로 은퇴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에 E는 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고 누구도 그런 그가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지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는 연예계에 다시 발 들일 의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어느 날 갑자기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도 연예계 활동을 쭉 이어가는 중이다.
E가 활발히 활동했던 20세기 말. 나 또한 그를 좋아했다. 어쩌면 맨 앞에 언급했던 A가 내 덕질 인생의 문을 열기도 전에, 그 문에 걸려있던 자물쇠를 먼저 풀고 도망간 사람이 E였는지도 모른다. 그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으므로 그를 ‘덕질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고, 태어나서 처음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했던 이성이 바로 E였다. 어떻게 보면 나의 첫 번째 최애는 E인 셈이다. 혹시 내가 E 외에 다른 연예인을 E보다 먼저 좋아했을까 싶어 가족에게 확인받은 결과, 내 기억이 맞았다. 그에게 애칭을 직접 만들어 부를 만큼 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단발이었던 그의 머리스타일이 네모 모양으로 보여서 ‘네모오빠’라 불렀다고. 미취학 아동다운 발상이었다.
E가 몇 년 만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0.00001만큼도 관심 없었다. 언니가 나에게 그가 복귀한다는 기사 링크를 보내주었을 때도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옛날 옛적 순수하고 어린 마음으로 아주 잠깐 좋아했던 사람인지라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잘 기억나지도 않을뿐더러, 중요한 사실은 그때 나는 이미 D를 열렬히 덕질 중이었다는 것이다.
몇 주에 걸쳐 방영된 E가 출연한 회차들은 방송이 다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회자될 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는 등의 긍정적인 평이 압도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었길래 이 난리들인가 한번 보자, 하고 호기롭게 모든 회차들을 다운로드 받아 몰아봤다가… 마지막 회가 끝날 때 나는 사람 눈에서 눈물이 세 줄기로 흐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서사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영상을 10번도 넘게 되돌려 보면서 나도 모르게 E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E는 D와는 다르게 입덕부정기가 길었다. 설마 내가 E를 덕질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한 데다, E가 앞으로 연예계 활동을 이어갈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E가 한 소속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했다는 기사가 뜬 날, 나의 입덕부정기는 끝났다.
만약 현실에서 누군가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나 양다리 걸치고 있다’하고 소리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람들은 그를 향해 혀를 찰 것이며 가까운 지인들마저도 쓴소리 할 것이다. 그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규정된, 질타받아 마땅한 비도덕적 행위이므로.
하지만 덕질판에서 누군가 같은 말을 한다면? 그를 향해 혀를 내두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곳에선 양다리든, 삼다리든, 문어 다리든 몇 다리를 걸쳐도 상관없는 일이기에 마음껏 능력껏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해도 된다. 그러한 룰에 따라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 없이 D와 E 모두를 최애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겸덕은 얼마 안 갔다. D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개편되면서 DJ가 다른 가수로 바뀐 데다 새로운 음반 작업 기간을 가지게 된 건지 D의 활동이 뜸해졌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제 막 활동을 재개한 E는 그간 연예계 생활을 접었던 게 한이라도 맺혔던 양 쉼 없이 활동을 이어갔다. 음반도 내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팬미팅에 콘서트에, 개인 SNS까지 시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활동이란 활동은 전부 다 했지 싶다. E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위태로웠던 D의 자리를 냉큼 빼앗아버렸다.
E와 마찬가지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덕질을 했다. 쏟아지는 떡밥에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해질 때쯤 운 좋게 취업에도 성공했다. 직장인이 되어 지갑이 두둑해지니 덕질의 판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씀씀이도 헤퍼졌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굿즈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아본 적도 없었고, 올콘을 뛰어본 적도, 생일 광고 서포트에 돈을 보낸 적도, 겨우 10분가량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왕복 10시간이나 걸리는 다른 지역까지 간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덕질을 할 때 늘 솔플을 추구했던 내게 처음으로 덕메도 생겼다. 그 애는 부산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 민영이다. 민영이는 일하다 우연히 알게 된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E가 속한 그룹의 팬이던 것이다.
민영이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져 시시각각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콘서트와 팬미팅 등의 이벤트들도 함께하며 추억을 공유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누군가를 응원하며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왜 사람들이 SNS에서 굳이 덕메를 구하려 애쓰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슬픈 일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쁜 일은 나누면 배(倍)가 된다는 말처럼, 덕질도 함께 할 때 더 즐거운 것이었다.
E가 나의 마지막 최애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열정을 쏟아부었다. 내 인생의 기나긴 덕질사에서 그때만큼 상태가 심각한 적은 없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만 그의 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하게 되면 설렘보다 더 큰 고통이 따라붙듯, 나의 마음은 조금씩 불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팬과 연예인 사이를 넘어 연인이 되는 상상은 수천 번도 더 했다. 아래는 내가 그를 덕질했던 당시에 블로그 비공개 게시판에 썼던 일기 중 일부다.
작년 봄부터 E를 연예인으로서, 남자로서 좋아하고 사랑해왔지만 요즘 들어 그 마음이 자꾸 커져서 이젠 무서울 정도다. 되도록 먼 미래였으면 좋겠는 그 언젠간 E를 더 이상 볼 수 없다거나 팬 생활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때 나는 아마도 불행할 거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길 바란다.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데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나에게 E가 중요한 사람이 되었나 보다.
하지만 E가 덕질‘사’에 언급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나에게 이젠 과거형이다. 그를 덕질하는 동안 행복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보다 맘고생을 했던 시간이 더 길었다. 인터넷에 주기적으로 끝없이 터지는 E의 인성에 관한 논란들 때문이었다. 이 논란이 잠잠해질 때쯤 저 논란이 터지고, 저 논란이 끝났나 싶으면 또 다른 논란이 생기고. 꼬리잡기 하듯 E의 기사는 줄줄이 이어졌다.
팬으로서 그가 욕먹는 것을 지켜보는 건, 마치 내가 잘못해서 천벌을 받는 것과 같은 수준의 아픔이었다. 그런 댓글들을 보면 E가 아니라 나를 욕하는 것처럼 느껴져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다.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의 심정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어느 날은 인터넷을 보며 울다 지쳐 일기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마음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누굴 덕질하면서 이렇게 속상했던 적이 있었나. 사람들이 E를 욕하고 제멋대로 판단하는 말들에 휘둘리는 나 자신도 무섭지만 가장 두려운 건, E가 내가 여태 알던 E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건 참혹한 일이다. 도대체 연예인과 팬의 관계가 뭐길래 이토록 나를 무너지게 만드는 걸까.
끝없이 터지는 그의 논란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루머인지 하나하나 따지는 것도, 피의 쉴드를 치는 것도 몇 개월 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쳐서, 결국 팬 생활을 접게 됐다.
누군가의 팬으로 지내며 그만큼 오랜 기간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B로 인해 맘고생했던 시간의 몇 배도 아닌, 몇 제곱만큼의 날들을 E 때문에 울었다. E를 오래도록 마음에 붙잡았던 탓에 상처는 곪다 못해 흉터로 남았다. 조금만 더 일찍 그만뒀더라면 치료 가능한 수준의 상처만이 남았을 텐데 말이다.
그를 탈덕하며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는 혹자의 주장에 강한 힘을 실어주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