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신주의의 탄생!
나에게는 먼 사람 같은 느낌이었지만, 배울 점이 있다며 부모님과 함께 두어 번 얼굴만 마주했던 친척의 결혼식에 갔다. 고작 대학교 밴드부를 했다고, 신랑의 축가에 박자와 음정을 따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직 다 컸다고 하기엔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혼식은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다. 신랑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와 입꼬리의 위치만 봐도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다짐이 느껴졌다. 그들의 진심은 하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많은 축하와 응원 속에 퍼지는 ‘축하합니다’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함축적이었다.
‘예뻐요, 잘생겼어요, 잘 어울려요’ 같은 뻔한 말은 봉투에 넣어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하는 현실적인 조언은 잠시 미뤄둔다. 대신 그저 마음을 담아 건네는 ‘축하합니다’라는 한마디에 모든 진심을 실어 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관계의 밀도였다.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각기 다른 음정을 내는 손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마다 ‘축하합니다’의 밀도는 달랐지만, 진심 어린 박수는 이 결혼식을 벅차도록 축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객들의 수는 곧 그들이 쌓아온 사회적 관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밴드부 형 J는 내게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지만, 그들과의 추억이 있지 않냐”라고 종종 말했다. 나는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끊곤 했고, 그는 늘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몇 번의 만남으로 쌓인 얕은 추억은 결국 흩어질 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관계를 잘라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갑작스레 죽을 수도 있다는 지병을 앓았고, 그 경험 이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크게 신경 쓰지 말자’는 세모신주의 마인드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생각은 점차 내 삶의 큰 중심축이 되었고,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야기를 더 깊게 풀어내자면 길어지겠지만, 그건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다시 말해, 몇 마디 대화로 몇 달씩 추억이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관계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새로운 만남 자체를 귀찮아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인간관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리’라는 루틴을 거친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그 루틴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이해해 줬지만, 다른 이들은 불편해했고 좋지 않은 말들이 내 귀에 들어왔다. 공통점은 그들과 나는 그리 친하지도, 깊이 정을 나눈 사이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굳이 억지로 관계를 붙잡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에 빠진다. 결국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맞는 사람이었는지를 따지며, 마지막에는 ‘다시 만나도 웃으며 안부를 건넬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그런 상상을 촬영 장면처럼 떠올린다.
‘큐!’ 사인과 함께 오랜만에 만난 A가 “자… 잘… 지냈어?”라며 더듬는 순간 ‘컷’이 난다.
다른 배우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장면은 늘 같은 결론으로 끝난다. 나는 감독이고, 관계의 편집권은 내게 있다.
잘려나간 이들은 화내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갈 사이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소한의 자괴감도 사라졌다. 남은 건 말을 더듬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단순한 기대뿐이었다.
짝짝짝짝.
신랑 신부가 마지막 행진을 하며 힘찬 박수 소리를 앞뒤양옆으로 퍼뜨렸다. 어림잡아 백 명이 넘는 하객이 각각의 밀도를 보탰고, 곧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친척과 가족들이 먼저 불려 나오고, 이어 하객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양옆으로 균형 있게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말을 더듬는 사람들조차 품을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애초에 말을 더듬지 않는 이들이 곁에 남은걸까. 아마도 전자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 순간 내 결혼식에는 누가 와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스쳤다. 소수의 안도를 주는 관계만으로 충분할지, 아니면 더 많은 인연을 가꾸어야 할지. 짝짝짝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에 그 답을 내리기엔, 아직은 이른 것 같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