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찰나의 순간 안에 들어갈 예정
가끔은 충동이 필요하다.
감수성이 풍부한 탓일 수도 있고, 아직은 미숙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충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1. 첫 숟갈, 그리고 오아시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요아정을
한입 뜨는 순간, 문득 음악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졌다.
시간을 되돌리면 2022년 2월쯤,
나는 인디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올드락 특히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에 빠져 있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듣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달 동안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으니 어느 순간 악기들이 각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베이스의 덤덤한 존재감, 드럼의 잔잔한 센스, 무엇보다 일렉기타의 솔로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 순간, 나만의 ‘1인 밴드’가 탄생했고, 갑작스러운 열정에 이끌려 헤드셋을 쓰고 다시 노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나를, 집 근처 실용음악 학원까지 이끌었다.
“일렉기타를 배우고 싶어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하지만 등록 후에 문득 고민이 밀려왔다.
‘이제 뭘 하지?’
계획은 없었다.
주변 친구들도 나의 이런 충동적인 행동에 익숙해져 무덤덤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승부욕에 불타 쿠팡을 열고 기타와 앰프를 구매했다. 헥스 200, 5만 원짜리 스피커. 총 35만 원. 당시엔 꽤 큰 지출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타 장비에 150만 원을 쓴 시작일 뿐이었다.
두 달 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다.
기초 크로메틱 연습부터 BPM을 늘려가며 하루 5시간씩. 선생님에게 "재능 있다"는 말을 들으면 손에 물집이 터져도 기뻤다. 그러나 그 열정은 입대와 함께 멈췄다.
기타 대신 귀가 열린 군생활 입대 전,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연인을 다시 찾는다.
나는 기타에 빠져 있었다. 그것도 일종의 사랑이라면 가끔은 충동이 필요하다.
감수성이 풍부한 탓일 수도 있고, 아직은 미숙한 탓일 수도 있다.하지만 분명한 건, 그 충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1. 첫 숟갈, 그리고 오아시스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요아정을 한입 뜨는 순간, 문득 음악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졌다.시간을 되돌리면 2022년 2월쯤, 나는 인디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올드락 특히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에 빠져 있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듣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달 동안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으니 어느 순간 악기들이 각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베이스의 덤덤한 존재감, 드럼의 잔잔한 센스, 무엇보다 일렉기타의 솔로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 순간, 나만의 ‘1인 밴드’가 탄생했고, 갑작스러운 열정에 이끌려 헤드셋을 쓰고 다시 노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나를, 집 근처 실용음악 학원까지 이끌었다.“일렉기타를 배우고 싶어요.”망설임 없이 말했다.
하지만 등록 후에 문득 고민이 밀려왔다.‘이제 뭘 하지?’계획은 없었다. 주변 친구들도 나의 이런 충동적인 행동에 익숙해져 무덤덤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승부욕에 불타 쿠팡을 열고 기타와 앰프를 구매했다. 헥스 200, 5만 원짜리 스피커. 총 35만 원. 당시엔 꽤 큰 지출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타 장비에 150만 원을 쓴 시작일 뿐이었다.
두 달 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다.기초 크로메틱 연습부터 BPM을 늘려가며 하루 5시간씩. 선생님에게 "재능 있다"는 말을 들으면 손에 물집이 터져도 기뻤다. 그러나 그 열정은 입대와 함께 멈췄다.기타 대신 귀가 열린 군생활 입대 전,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연인을 다시 찾는다.
나는 기타에 빠져 있었다. 그것도 일종의 사랑이라면 사랑이었다. 군대에서 기타는 사치였다.강도 높은 일과 후엔 샤워하고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 사랑이었다. 군대에서 기타는 사치였다.
강도 높은 일과 후엔 샤워하고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 전부였다. 입대 두 달 반 만에 17kg이 빠졌을 만큼 혹독한 생활. 그 속에서 유일한 위안은 음악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샤워하며 들은 노래가 ‘이준형 – 꽃밭’이었다.
이준형의 기타 실력, 감성, 작곡 능력은 그날 이후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전역 전까지 ‘꽃밭’, ‘태양’, ‘happy end’
이 세 곡만 7개월 동안 들었다. 군대 일과 중 ‘이준형 공연 영상 보기’는
내 하루의 마무리였다.
2. 다시 충동, 그리고 다시 시작
전역 후에도 변함없이 공연 영상을 보던 어느 날,
마음속에서 무언가 다시 피어났다.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다.’
다시 바지와 패딩을 입고, 도보 10분 거리의 실용음악 학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충동적으로 말했다.
“일렉기타를 배우고 싶어요.”
18개월간 방치된 헥스 기타는 이미 녹슬고 망가져 있었다. 엘릭서 009 줄로 교체하고, 넥에 오일을 발라 회춘시켜 보았지만, 결국 이별했다. 그리고 새로 만난 기타, 에피폰 SG 커스텀.
이준형이 사용하는 SG 모델이기도 했기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검은 바디에 금빛 하드웨어는 지금도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목표는 오직 하나.
‘밴드부 오디션에서 이준형의 꽃밭을 연주하자.’
결말은 오디션에서 합격했다. 기본기가 가장 탄탄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지금은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필을 좋아하는 나는, 최형준 작가의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사랑은 말했다.
하트가 구가 될 때까지 끌어안을 거야.”
하트가 깎여 구가 되는 그 과정, 그 조각들이 서로의 몸에 붙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
그게 운명이다.
운명은 한 점이 아니다.
내가 기타 학원에 등록했던 순간,
군대에서 기타를 못 친 덕분에 귀가 트였던 경험,
그리고 이준형을 만나게 된 일들.
그 모든 점들이 이어져 하나의 곡선을 만든다.
곡선이 어디로 나아갈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곡선은 예쁘게 휘어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