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과다 분비 추격전

by 작가미상

혼잣말의 빈도가 점점 늘어나더니, 두어 달 지켜본 결과 꽤 위중한 ‘잡생각 과다 분비’가 찾아온 듯하다. 지금 자세는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로 꼬아 얹은 상태인데, 다리를 내리면 심하게 저릴 것이 뻔하다는 걸 짐작했는지, 괜히 두려워 그대로 두고 있다.

아마 모자만 썼다면, 암암리에 존재하는 험상궂으나 정작 실력은 없는 탐정쯤으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이왕 탐정 자태가 났으니, 검은 볼펜을 인중에 끼워 입술을 삐죽 올리고는 '잡생각 과다 분비'의 근본 원인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치이익,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도넛 모양 연기를 뻐끔 내뱉는다. 이어 인중에 낑겨 있던 볼펜을 집어 들어 잡생각의 이유를 끄적여본다. 사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저 자욱한 연기로 가득한 방이 깊은 고뇌를 증명하는 듯해 감정 이입을 해본 것뿐이다. 상황만 본다면 아마 두 보루는 태웠겠다 싶다.

한 손 크기 공책을 펼쳐 중앙 상단에 제목을 적는다.

-잡생각 과다 분비 추격전-

추격에 앞서, 잡생각 과다 분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어떤 문제점이 생겨나는지 알아야 한다. 문제점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분비를 촉진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점 파악 일지

1. 말을 잘하지 못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다른 사람이 건네는 질문에 대답할 때 나의 말이 그 사람의 고질적 문제의 방향을 어림잡아주는 듯한 부담을 느끼는 것이 싫었다. 세상을 구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질문의 한 단어가 지나갈 때마다 수천 개의 생각을 하고, 질문이 끝나자마자 서너 개의 후보 대답을 확정해두지만, 부담 때문에 꺼낸 적은 없다.

결국 “잘 모르겠네요, 허허” 하며 선을 그어버리곤 한다. 그러면 질문자는 ‘관심이 없구나, 귀찮구나’ 하고, 나는 또 괜히 눈치가 빨라 단번에 그 반응을 알아채버린다. 그러곤 서너 개의 후보 대답을 하나하나 꺼내 그것을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더 나았을까 상상하며 다시 생각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점에는 잡생각 분비가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확실히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나는 소심하기보다 조심스러움이 지나치다는 사실이다. 다만 주변에서는 이 조심스러움을 종종 소심함으로 오해하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풀이를 해버렸다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2. 우울함을 묻어 버린다.


잡생각의 속성을 비율로 따져보면, 우울 74.5퍼센트, 긍정과 불안 25.5퍼센트 정도다. 우울의 비율이 80퍼센트에는 못 미치지만, 74.5퍼센트라는 밀도는 이미 100퍼센트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파일을 압축해 용량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에 꽉 찬 상태랄까.

거슬러 올라가면 19년 전, 다섯 살 무렵의 일이다. 나는 엄마 옆에서 잘 때마다 찡찡 울곤 했다고 한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괜히 무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꼭 붙어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털어놓았다.

“죽음이 뭐야?”, “나 한 번 죽고 싶어.” 아마 현실세상을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게임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그 말을 들은 엄마는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의아함보다도, 고작 다섯 살의 어린아이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훨씬 더 놀랐던 모양이다.

결국 “그런 생각 하지 마”라는 호통을 자주 듣게 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곧 압축의 과정이었다. 우울한 생각은 혼난 덕에 줄어든 듯 보였지만, 겉모습만 가벼워졌을 뿐 실제 용량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겁게 압축된 채 남아 있었다. 나날이 불어나는 뱃살이 그 용량을 대신 증명한다. (물론 변명이다.)

결과적으로, 우울함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 압축되고, 다양한 이유로 표출하지 못한다는 것이 잡생각 과다 분비의 원인임을 확인했다. 이제 그 원인을 맞닥뜨렸을 때, 현실적으로 내가 하는 행위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잡생각 과다 분비를 촉진시키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매개체 탐색매개체 탐색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술이었다.

주변보다 조금 잘 마시는 편이었던 탓에, 과하게 마시는 행동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도 조금만 마셔도 은근히 몸이 어지럽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만) 한다.

이런 몸뚱이를 가진 덕에, 힘들 때마다 술을 마시게 되는 것 같다. 몽롱한 기운이 잡생각을 잠시 줄여준다는 민간요법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그간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기다렸다는 듯 머리를 띵띵 치고, 다시 술을 마시게 되고, 띵띵 치고, 벌컥벌컥, 띵띵, 상상, 흡연, 띵띵, 벌컥… 이 반복이 노래를 만들었다.

아마 노래 이름은 ‘위스키 양만 줄일게요’라고 지을 것이다. 아직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그래도 위스키를 마셔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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